아방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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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원요의 아방궁도

아방궁(중국어 간체: 阿房宫, 병음: Ēfánggōng)은 진나라시황제가 세운 궁전이다. 함양위수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다. 유적은 섬서성 서안 시 서쪽 13km의 아방촌(阿房村)에 남아 있다. 시황제의 사후에도 공사가 계속 되었지만, 진나라의 멸망으로 미완성으로 끝났다. 명칭이 없었던 것을 세인이 지명을 따서 아방궁으로 지었다. 1961년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은 아방궁 유적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하였다.

목차

[편집] 개요

시황제가 즉위 하면서, 효공이 세운 함양 궁전은 협소하다고 하여, 황하 지류의 남쪽에 해당하는 상림원(上林苑)에 새로운 궁전을 지을 계획을 세웠다. 아방(阿房)의 땅에 궁전을 만들려고 했지만, 시황제의 생전에 완성하지 못했다.

[편집] 규모

사기》에 의하면, 궁전 건축물의 규모는 동서로 5백보(3000척), 남북으로 50장(500척)라고 한다.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동서로 약 600~800m, 남북으로 113-150m에 이른다.

그 궁전 위에는 10,000명이 앉을 수 있으며, 전하에는 높이 5장의 기를 세울 수 있었다. 전 외에는 책목(柵木)을 세우고 복도를 만들어, 이곳으로 남산에 이를 수 있고 복도를 만들어 아방에서 위수를 건너 함양의 궁전에 연결되었다.

그 건축에 동원된 인력의 수는 70여 만에 달했다. 더욱 더 여러 궁을 만들어 관중에 300, 관외에 400여개, 함양 부근 100리 내에 세운 궁전은 270 여개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민가 30,000호를 여읍(驪邑)에, 50,000호를 운양(雲陽)에 각각 이주 하게 했다. 각 6국의 궁전을 모방하여 6국에서 데려온 비빈을 모두 이곳으로 배치하였고, 진나라 궁전을 만들어 진나라의 미인들을 그곳에 배치했다. 거기서, 조나라(趙)의 비(肥), 연나라의 수(痩), 오나라의 희(姫), 월나라의 여(女) 등 각각의 미를 겨루어 조가야현(朝歌夜絃), ‘삼십육궁혼의 봄’이라는 광경을 이곳에서 출현하게 했다. 두목의 ‘아방궁부’(阿房宮賦)에 노래한 것이 반드시 과장은 아니다.

《사기》에 기술된 진나라 멸망 부분에 기록된 “아방궁은 초나라 항우에 의해 불태워졌다”(3개월간, 불이 꺼지지 않았다고 한다)는 것이 현대까지의 정설이었다. 하지만 “항우에 의해서 불탄 것은 함양궁이며, 아방궁은 불타지 않았다”라는 설이 2003년에 제기되었다.

[편집] 테마 파크

또한 현재, 유적의 부근에 아방궁을 재현한 테마파크가 만들어져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편집] 주석

[편집] 바깥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