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가야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한국의 역사
한국의 역사 (연표)
v  d  e  h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




|



|


  고조선
단군조선
위만조선
진국









 
고구려
 
신 라
 
발 해



고 려
고려의 역대 국왕
고려-거란 전쟁
무신정권, 최씨정권
고려-몽골 전쟁
조 선
조선의 역대 국왕
세종대왕한글 창제
임진왜란
병자호란·정묘호란
갑신정변·동학운동
대한제국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 임시 정부)
군정기
미군정 소련군정

대한민국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아라가야(阿羅伽倻),안라(安羅)는 가야연맹의 주요국 중의 하나이다.

이름[편집]

안라(安羅),또는 안야(安邪)국이 스스로 사용한 이름으로 보인다. 독음(讀音)은 "아라"이고 그외에 아시량국(阿尸良國) 으로도 전해졌다.아나가야(阿那加耶), 아야가야(阿耶伽耶), 등 OO가야라고 불린 것은 고려시대 이후의 일이다.[1]

역사[편집]

아라가야는 42년부터 559년까지, 517년 동안 지속되었던 나라다.

변한시대[편집]

안라국은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후한서 건무(建武)20년(서기44년)조에 염사(廉斯)라는 나라이름이 나오는 바 이 염사국이 안라국일 거라는 설도 있다. 확인된 유적이나 유물로 미루어 이미 가야초기부터 변한지역의 주요 유력국으로 성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전기 가야연맹과 후기 가야연맹[편집]

전기 가야연맹구야국를 중심으로 42년부터 400년까지 형성된 연합 집단이다. 209년 포상팔국이 쳐들어 오자 신라에 도움을 청하고 물계자 장군의 공으로 물리쳤다. 하지만 400년 가야 연맹이 신라를 침공했다가 신라의 구원요청을 받은 광개토왕고구려의 역습으로 패망하여 해체되고 후기 가야연맹- 대가야반파국을 중심으로 5세기 후반에 형성되었는데, 안라국은 대가야의 남부 중심세력으로 자리잡았다.대가야가 신라에 굴욕적인 태도를 보이자 남가야는 대가야를 무시하고 안라국을 중심으로 자구책을 도모하게 되었다. 이때 안라국은 백제·신라·의 사신을 초청하여 회의를 열었지만 통합의 움직임은 실패로 돌아갔다.

안라국의 멸망[편집]

안라국은 540년에 가야의 중심세력이 되어 외교적으로 신라·백제와 접촉하면서 안전을 요구하였으나 백제 때문에 실패하였다. 이에 안라국은 고구려와 밀통하여 548년에 고구려·백제간의 독산성전투를 유발하였으나 이 전투에서 고구려가 패함으로써 안라국를 비롯한 가야지역은 다시 백제의 세력 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 뒤 신라가 550년대에 한강유역 전투에서 백제를 물리치고 그 여세를 몰아 가야지역에 대한 병합에 착수하자, 안라국은 559년에 신라에 항복하여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

국왕, 정치[편집]

구야국·반파국과 함께 가야 연맹 중 제일 강한 세 나라였던 안라국은 다른 두 나라가 왕이 일부분 알려진 것에 비하면 그 국왕이 한 명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가실왕이 안라국의 왕 중 한 명이라는 설도 있다.[2]

경제[편집]

안라국의 경제는 남강연안의 평야지대를 기반으로 풍부한 농업생산력이 1차 기반이 되었다. 가야연맹의 중심이자 당시 동아시아 해상무역의 허브였던 구야국의 배후에서 가야내륙의 교역을 중계하기도 하고 마산 진동일대를 영역하에 넣고 중국이나 일본등으로 직접 교역을 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공업은 군북일대에 직접 철광과 동광(銅鑛)을 운영하면서 제철산업을 발전시켰다.

주석[편집]

  1. 아라가야 [阿羅伽倻]”. 두산백과사전. 네이버. 2008년 7월 25일에 읽어봄.
  2. 가실왕 [嘉悉王/嘉實王, ?~?]”. 두산백과사전. 네이버. 2008년 7월 25일에 읽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