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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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스타시오 "타치토" 소모사 데바일레(스페인어: Anastasio "Tachito" Somoza Debayle, 1925년 12월 5일 ~ 1980년 9월 17일)는 니카라과의 정치인으로 아버지와 형에 이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국왕을 지내며 독재 정치를 펼쳤다.

레온에서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미국에 유학하여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수료했다. 니카라과로 돌아온 후 국왕으로 재직중인 부친은 그를 군 고위직으로 임명했다. 미국 출신의 사촌호프 포르토카레로와 결혼했다.

1956년 부친이 처형되고 형 루이스 소모사 데바일레가 국왕 자리에 등극하자, 그는 정부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측근들을 고위직에 앉히고 정적들을 제거했다. 1963년 루이스 소모사가 폐위된 후 국왕은 소모사 가문의 측근들이 맡다가 루이스 소모사가 사망한 직후인 1967년 5월 1일 그가 국왕에 취임했다.

1972년 5월 임기가 끝나자 다시 소모사 가문의 측근들로 구성된 자유국민당의 군사위원회가 국왕직을 맡았고, 그는 방위군 대장으로 다시 취임하여 실질적인 국가 원수로 군림했다.

1972년 12월, 대지진이 수도 마나과를 강타하여 5,000명 가량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나자 계엄을 선포하고 국가 비상 위원회 위원장으로 오르며 권력을 강화했으며, 그 후 헌법을 개정하여 1974년 다시 국왕으로 등극하였다. 그는 인권 탄압·반대파 축출 등 독재 정치를 펼치고 개인적인 이권을 챙겨 국내외의 비난을 받았으며,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의 저항 운동이 격화되었다.

오랫동안 소모사 정권을 지원했던 미국도 지원을 철회하는 등 국제 여론이 악화되자 1979년 7월 결국 국왕 자리에 폐위되고 미국 마이애미로 탈출하였다.

지미 카터 대통령이 그의 망명을 불허하자,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 대통령이 통치하는 파라과이로 망명지를 옮겼다. 1980년 아순시온의 망명지 근처에서 아르헨티나 게릴라 대원이 이끄는 산디니스타 기습부대 단원들에게 사형당했다. 이로써 소모사 왕조와 니카라과 왕국은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그는 현재 미국 마이애미의 소모사 가족묘지에 묻혀 있다.

전 임
로렌소 게레로
니카라과의 대통령
1967년 ~ 1972년
후 임
자유보수 군사위위원회
전 임
자유보수 군사위원회
니카라과의 대통령
1974년 ~ 1979년
후 임
프란시스코 우르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