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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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의 씨름도

씨름한국 고유의 운동으로, 두 사람이 샅바나 바지 허리춤을 잡고 힘과 슬기를 겨루어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경기이다. 씨름과 비슷한 경기는 몽골, 일본, 중화권, 베트남 등 세계 각지에 분포해 있으며, 씨름이 시작된 시기와 형성 과정은 솔직하게 알 수는 없으나, 외부에서 자신을 보호하고자 사용했던 기술이 체계화 되면서 하나의 경기가 된 것으로, 이미 고대시대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본다. 조선 헌종 때 쓰인 책 《오주연문장전산고 五州衍文長箋散稿》에서는 진 무왕 때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자로 상박(相撲)이라 하며, 중국인들은 고려기(高麗技) 또는 요교(僚狡)라고도 하였다. 주로 단오 때에 행하여지며, 매년 설날에도 씨름대회가 벌어진다. 우승자는 황소를 상으로 받았다.

현대의 씨름은 1912년, 단성사에서 최초로 열렸다. 비록, 일제치하 때 이루어졌지만 끊임없이 유지되었고, 1980년대에는 전성기를 맞는다. 그러나 최근 씨름의 인기가 급속도로 떨어져 프로 씨름경기는 더이상 개최되지 않고 대학씨름대회를 비롯한 전국, 지방 단위의 씨름대회가 설날이나 단오 때 주로 열려 지상파를 통해 방영된다.

씨름은 상대방의 허리와 다리에 감은 샅바를 잡고, 경기가 시작되면 발을 제외한 몸의 일부가 땅에 먼저 닿은 사람이 진다. 경기 규칙은 복잡하진 않지만, 몸 전체의 근육과 기술을 고루 사용할 줄 알아야 하며, 순발력, 근력, 정신력, 지구력, 체력 등 다양한 요소를 요하는 경기이다. 공식적인 경기에서는 주심 1명과 부심 2명이 심판을 보며, 경기장 지름은 8m에, 수평이어야 하고, 실외 경기장의 모래장 높이 는 30cm-70cm 이상이며, 경기장 밖의 보조 경기장의 넓이는 2m 이상, 모래장의 높이 는 20-10cm 이내로 해야 한다.

역사[편집]

각저총의 씨름 벽화

씨름은 이미 상고시대부터 시작된 운동 경기로, 형성 과정은 알 수 없으나 각종 기록을 통해 역사를 대강 알 수 있다. 씨름은 그 긴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이름이 있는데, 주로 각저(角抵)·각희(角戱)·상박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다 15세기 이후로 '실훔'에서 '실홈'을 거쳐 '씨름'이 되었다.

상고시대 때 씨름에 대한 자료는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후한서》에서는 오늘날 중국의 한나라 왕이 부여왕이 오자 축하하는 의미에서 피리를 불고 오늘날 씨름과 유사한 각저희를 행하였다고 전한다. 또한, 1957년 중국과학원 고고학연구소에서 발굴한 개성장 4호 무덤에서 씨름하는 장면이 투각된 동패로 두 개가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상고시대에도 이미 씨름과 비슷한 경기가 시행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4세기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는 만주고구려 고분 각저총과 5세기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보는 장천 1호 무덤에는 씨름을 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 있다. 따라서, 이미 고구려 때 씨름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본다. 공식적으로 쓰여진 씨름에 관한 기록은 조선 세종 때 제작된 《고려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려사》에는 충혜왕이 환관들과 씨름을 즐겼다고 전한다. 또한, 세종 때는 씨름을 장려했다고 전하며, 무예의 종목에 포함되기도 했다.

1419년 6월 15일에는 태종세종이 각력희를 강변에 보았다고 전한다. 1430년 12월에는 상총이라는 스님이 씨름을 하다가 상대방이 죽게 되었는데, 나라에서는 관대하게 죄를 묻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1664년 5월에는 씨름 경기에서 이기지 못하여 상대방을 칼로 찔러 죽였다는 기록도 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도 씨름을 하거나 구경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기산의 풍속도와 같은 씨름에 관한 그림도 많다. 특히, 조선시대 단원 김홍도가 그린 씨름도이 유명한데, 격렬하게 씨름을 하는 두 남자와 구경꾼이 둘러싼 그림이다. 김홍도의 씨름도는 당시 조선에서는 씨름이 매우 대중적인 경기였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씨름은 때론 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하여, 한 때 씨름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개요[편집]

씨름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규칙이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한국에서 공식적인 씨름 경기는 왼씨름을 채택한다. 씨름의 기술은 크게 손기술, 발기술, 허리 기술이 있으며, 실제 경기 할 때에는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대개 기술에는 상황에 따라 되치기를 사용할 수 있으며, 되치기를 통해 오히려 상대방을 넘어뜨릴 수 있다.

발기술[편집]

씨름에서 발기술에는 안다리 걸기, 밭다리 걸기(바깥다리 걸기), 밭다리 후리기(바깥다리 후리기), 밭다리 감아 돌리기, 오금 걸이, 호미 걸이, 낚시 걸이, 뒷발목 걸이, 뒤축걸어 밀기, 발목 걸어 틀기, 앞다리 차기, 모둠 앞무릎 차기, 무릎 대어 돌리기, 연장 걸이, 빗장 걸이, 무릎 틀기, 덧걸이 등이 있다. 특히 바깥다리걸기와 안다리걸기는 유도에도 존재하는 발기술로서 유도와 씨름은 부분적으로 일치한다. 때문에 씨름을 잘하는 사람은 유도 역시 잘하게 되어 있으며 공격자세만 약간 다를 뿐 그 원리는 동일하다.

  • 안다리 걸기: 상대방의 왼쪽 다리가 자신의 발 앞으로 왔을 때 샅바를 당기고 오른 다리를 상대방 왼쪽 오금에 걸어서 넘어뜨린다. 상대방이 안다리 걸기를 풀면 되치기가 가능하다.
  • 밭다리 걸기: 다리가 길거나 키가 클 때 유리하며, 샅바를 당기고 오른 다리를 상대방 다리에 걸어 밀면서 넘어뜨린다.

허리 기술[편집]

씨름에서 허리 기술에는 배지기, 오른 배지기, 맞배지기, 엉덩 배지기, 돌림 배지기, 들배지기, 들어 놓기, 돌려 뿌리기, 공중 던지기, 허리 꺾기, 밀어 던지기, 차 돌리기, 잡채기, 들어 잡채기, 옆채기, 업어 던지기, 어깨 넘어 던지기, 자반 뒤지기 등이 있다.

  • 배지기: 씨름 기술 중에서 매우 기본적인 기술로, 대표적인 공격 기술이기도 하다.
  • 들배지기: 상대를 들어서 넘기는 기술로, 본인이 상대적으로 덩치가 클 때 사용한다. 호미걸이로 되치기가 가능하다.
  • 엉덩배지기: 상대가 무거워 배지기로 넘기지 못할 때, 상대방을 들면서 엉덩이에 밀착시켜 넘겨 버린다.
  • 자반 뒤지기: "씨름의 꽃" 이라고도 불리는, 정교하고 멋진 기술이다.

승부[편집]

먼저 땅에 무릎이나 상체가 닿는 사람이 진다. 누가 먼저 땅에 닿았는지 판정하지 못한 경기를 개판이라고 부른다.

스포츠[편집]

아마추어 씨름[편집]

아마추어씨름은 1927년에 창립된 '조선씨름협회(현 대한씨름협회)'가 전조선씨름대회(1927년)와 전조선씨름선수권대회(1936년)등의 대회를 개최하면서 근대 스포츠로 발전했다. 1947년 조선씨름협회는 '대한씨름협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1942년부터 중단되었던 전조선씨름선수권대회를 1947년부터 재개하였으며 대통령기 대회(1964년 신설)와 회장기대회(1971년 신설), 증평인삼배대회(2000년 신설), 학산김성률배대회(2004년 신설) 등의 대회를 개최하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프로씨름[편집]

프로씨름은 1981년 11월 30일 프로씨름 대회의 개최를 위해 창립된 '한국민속씨름협회(현 한국씨름연맹)'가 1983년 4월 14일 한국방송공사(KBS)와 공동 주최로 제1회 천하장사씨름대회를 개최하며 우리나라 제2호 프로스포츠로 출범하였다.

한국민속씨름협회는 이후 1983년 9월 5일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대한씨름협회와 통합하여 한국민속씨름협회의 허완구 회장이 통합회장을 맡아 대한씨름협회를 운영하고 프로씨름은 ‘민속씨름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대회를 개최하였다. 그러던 중 1990년 9월 29일 사단법인 한국민속씨름협회로 분리, 독립하였으며 1996년 2월 7일 현재의 명칭인 사단법인 한국씨름연맹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씨름연맹은 ‘천하장사씨름대회’, ‘설날장사씨름대회’, ‘추석장사씨름대회’, ‘지역장사씨름대회’ 등의 프로씨름대회를 개최하며 ‘천하장사’, ‘백두장사’, ‘한라장사’, ‘금강장사’, ‘태백장사’ 등을 선발한다.

아마추어 씨름대회는 대한씨름협회에서 개최하며 경장급, 소장급, 청장급, 용장급, 용사급, 역사급, 장사급의 체급을 운용하여 선수를 선발하고 프로씨름대회는 한국씨름연맹에서 개최하며 태백급, 금강급, 한라급, 백두급의 체급을 운용하여 선수를 선발한다.

한국씨름연맹이 사용하는 ‘백두’, ‘한라’, ‘금강’, ‘태백’이라는 체급명칭은 한국씨름연맹이 프로씨름대회의 출범을 앞둔 1983년 3월 19일부터 31일까지 신문과 방송 광고를 통해 전국민을 대상으로 체급명칭을 공모하여 전국 각지에서 응모한 수백통의 응모작 중에 강남구 삼성동에 거주하는 ‘오제하’씨가 응모한 ‘백두장사’, ‘한라장사’, ‘금강장사’, ‘태백장사’ 라는 명칭을 당선작(당선상금 100만원)으로 선정하여 사용되기 시작한 명칭이다.

주요 씨름 선수 출신 인물[편집]

타 종목에 진출한 인물[편집]

대한민국 역대 장사[편집]

천하장사[편집]

백두장사[편집]

한라장사[편집]

기타 정보[편집]

세계의 씨름[편집]

세계의 각 나라별로, 씨름과 유사하게 육체만을 사용하여 상대를 제압하는 방식의 경기 형식이 존재하고 있다.

같이 읽기[편집]

참고문헌[편집]

  • 임동권, 《한국세시풍속연구》, 집문당, 1993
  • 김광언, 《동아시아의 놀이》, 민속원, 2004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