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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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음다도.
산승보납도.

심사정(沈師正: 1707년~1769년)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이숙(頤叔), 호는 현재(玄齋)와 묵선(墨禪). 영의정을 지낸 심지원(沈之源)의 증손이자 심익창(沈益昌)의 손자이며 포도를 잘 그렸던 심정주(沈廷胄)의 아들이다. 포도와 인물을 잘 그렸던 정유승(鄭維升)의 외손자이기도 하다. 명문 사대부 출신이면서도 과거나 관직에 오르지 못하고 일생 동안 화업(畵業)에 정진하였다.

가계[편집]

영의정 심지원의 증손이고, 성천부사 심익창(효종의 부마 청평도위 심익현의 동생)의 손자이며, 묵포도의 대가 심정주(沈廷胄)의 차남이다. 또한, 사간원 사간을 지낸 명화가 정유점(하동 정씨)의 외손자이다.

  • 증조부 : 심지원(沈之源) - 영의정
    • 조부 : 심익창(沈益昌) - 성천부사 - 효종의 부마 청평도위 심익현(沈益顯)의 동생
      • 부 : 심정주(沈廷胄) - 묵포도의 대가
      • 모 : 하동 정씨 - 사간 정유점(鄭維漸)의 딸
        • 형 : 심사순(沈師淳)
        • 형수 : 전주 이씨
        • 부인 : 백천 조씨

생애[편집]

일찍부터 정선의 문하에서 그림을 공부하여 중국의 남화와 북화를 종합한 새로운 화풍을 이루어 김홍도(金弘道)와 함께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가가 되었다. 1748년(영조 24년)에 왕의 어진을 그리는 모사중수도감(摸寫重修都監)의 감동(監董)이 되었으나 얼마 안되어 박탈되었다.[1] 특히 화훼(花卉), 초충(草蟲)을 비롯하여 영모(翎毛)와 산수화에 뛰어났다. 화적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강상야박도(江上夜泊圖)> <파교심매도 灞橋尋梅圖> <맹호도(猛虎圖)> <화수초충도(花樹草蟲圖)>,<선인도해도>(仙人渡海圖), 덕수궁 미술관 소장의 <추포도(秋圃圖)> <화항관어도(花港觀漁圖)> <계산고거도(溪山高居圖)> <운룡도(雲龍圖)> 간송미술관 소장의 <촉잔도(蜀棧圖)>,<하마선인도>(蝦蟆仙人圖) 그리고 개인 소장의 <전가악사도(田家樂士圖)>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 <시문월색도(柴門月色圖)> 외에 다수가 있다.

평가[편집]

표암 강세황의 화평(畵評)에 의하면, 화훼 초충을 가장 잘 하였고, 영모·산수 순으로 잘 그렸다고 한다.

각주[편집]

  1. 《영조실록》 권67, 영조 24년(1748년) 1월 20일(을사) 2번째 기사; 1월 25일(경술) 4번째 기사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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