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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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 辛, 愼)씨는 한국의 성씨이다.

납 신 申[편집]

신(申)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698,171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13위이다.

평산 신씨[편집]

평산 신씨의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이다. 그는 전라도 곡성현 출신으로 원래 이름은 삼능산(三能山)이었으나 평산(현재의 황해도 평산군)에서 왕건에게 신(申)씨 성을 사성받았다. 그는 태봉국의 기장이 되었으며, 궁예을 제거하고 왕건을 왕으로 옹립하여 고려의 개국공신이 되었다. 시조의 묘는 강원도 춘천시에 있다. 평산 신씨 인물로는 신립, 신사임당, 정치가 신익희, 시인 신동엽, 국회의원 신낙균, 신영수 등이 있다. 2000년 인구는 154,612가구, 496,874명이다.

  • 아주 신씨(鵝洲 申氏)의 시조 신익휴신숭겸의 12세손이며, 고려 말에 금자광록대부 문하시랑(金紫光祿大夫 門下侍郞)을 지내고 아주군(鵝洲君)에 봉해졌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9명을 배출 하였다. 2000년 인구는 8,807가구, 27,843명이다.

고령 신씨[편집]

고령 신씨(高靈 申氏)의 시조는 고려 원종(재위, 1259∼1274) 때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지낸 신성용(申成用)이다. 그의 선조는 고령에 살면서 대대로 호장(戶長)을 지내왔다고 한다. 인물로는 신숙주, 신윤복, 신채호, 신규식 등이 있다. 2000년 인구는 116,966명이다.

매울 신 辛[편집]

한국[편집]

신(辛)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67,621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46위이다.

  • 영산 신씨(靈山 辛氏)의 시조 신경(辛鏡)은 고려 인종 16년(1138년) 문과에 급제하여 금자광록대부(金紫光錄大夫)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고, 정의(貞懿)라는 시호(諡號)를 받았다. 그는 지금의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에 있는 영취산(靈鷲山) 아래에 뿌리를 내렸다. 9세손에 영월 신씨(寧越 辛氏)가 분관하였다. 영산 신씨의 역사 인물로는 고려 공민왕 때 여종의 아들로 태어난 혁명가이자 요승인 신돈(辛旽)이 있다. 2000년 인구는 영산 신씨 83,798명, 영월 신씨 67,489명이다. 현대 인물로는 롯데그룹 회장 신격호(辛格浩), 배우 신애라가 있다.

중국[편집]

중국 신씨(辛, 사성음 : Xin)는 3가지 계통이 있다.

  • 하나라 하우씨 자손이 성으로 삼았다.
  • 초나라 선조 축융에서 파생된 계통이 있다.
  • 오대십국 후주 때 항씨(주나라와 초나라 2가지 계통)에서 신씨로 득성한 계통이 있다.

삼갈 신 愼[편집]

신(愼)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45,764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68위이다.

  • 거창 신씨(居昌 愼氏)의 시조 신수(愼修)는 고려 문종송나라 사신으로 와서 고려에 정착하였다. 그는 문과에 급제하여 수사도(守司徒)와 좌복야(左僕射)와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역임하였으며, 1101년 사망하자 고려 숙종이 공헌(恭獻)의 시호를 내렸다. 6세손 신집평(愼執平)이 강화도 천도 기간 중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으로 몽골에 항전하였고, 1258년(고종 45)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로 화주지역(지금의 함경도)의 항몽전쟁을 지휘하던 중 조휘(趙暉)‧탁청(卓靑)의 반란으로 순직하였다. 그의 아들 신성(愼成)은 군기감사(軍器監司)를 역임하였으며 아버지가 사망하자 거창에 내려가 살면서 거창 신씨의 시원이 되었다.[1] 거창 신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35명을 배출하였다. 인물로는 연산군 정비 폐비 신씨의 아버지 신승선, 단경왕후의 아버지로 이조판서를 지낸 신수근, 학자 신후담 등이 있다. 2000년 인구는 43,890명이다.

주석[편집]

  1. 거창신씨 -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