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혁 (19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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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혁

출생 1982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 개천시
국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한민국 대한민국
직업 인권 운동가

신동혁 (申東赫, 출생시 이름: 신인근, 1982년 ~ )[1]개천 정치범수용소를 탈출한 북한이탈주민 출신의 북한인권 운동가이다. 신동혁은 14호 관리소에서의 생활과 탈출 경험을 외부 세계에 증언하였고, 이는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실상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2] 그는 수용소에서 태어나 삼엄한 경비를 뚫고 탈출에 성공한 유일한 탈북자로서[1], 2012년에는 그의 경험을 토대로한 영문판 수기가 출판되었다.

생애[편집]

수용소 생활[편집]

신동혁은 1982년 개천 정치범수용소 내에서 출생했다.[3][4] 그의 부모는 수용소 규칙을 충실히 따르는 대가로 주어지는 "표창결혼"으로 신동혁을 낳았고[5][3][4], 수용소의 다른 구역에 거주하는 아버지를 거의 만날수 없었다. 어머니와의 관계도 순탄하지 않아서 그는 어머니를 단순히 "먹을 것을 위한 경쟁자"로만 보았고, 신동혁의 어머니는 그를 심하게 때리기도 했다.[3][4]

14살이 되었을때, 신동혁은 어머니와 형의 수용소 탈출 계획을 엳듣게 되고 이를 몰래 수용소 간수에게 알렸다.[3][4] 가족을 밀고한 대가로 포상을 기대했던 그에게 수용소 간수들은 정보를 얻기위한 심문과 고문을 자행했다.[3][4] 고문과정에서 신동혁을 뜨거운 불위에 매달려 졌고 간수들은 그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꼬챙이로 배를 찔렀다.[6]고문의 후유증으로 그는 등에 심한 화상을 입었고 많은 흉터를 얻었다.[7] 1996년 11월 29일, 신동혁의 형과 어머니는 수용소 탈출을 시도한 이유로 공개 처형되었고 그는 이것을 직접 목격했다.[8][9][4] 가족의 탈출 계획으로 고초를 겪은 신동혁은 그들에 대한 반감으로 처형을 지켜보면서도 슬퍼하지 않았지만, 이때의 기억은 탈출 이후 그에게 짐이 되었다.[3][4][5]

탈출[편집]

수용소내의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 신동혁은 평양에서 14호 관리소로 끌려오게된 40대의 박씨 성을 가진 수감자를 알게되고, 그와 친해진다.[3] 박은 신동혁에게 관리소 밖의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고, 신동혁은 특히 그가 경험에 보지 못한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로 만든 음식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3] 수용소 내의 음식은 옥수수, 배추, 소금으로 만든 죽과 때때로 잡히는 들쥐와 곤충등이 전부였다. 원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수 있다는 기대에 신동혁은 박과 수용소를 탈출하기로 결심한다.[3] 이들의 당초 계획은 신동혁이 수용소를 빠져나갈 길을 안내하고, 북한을 벗어나게 되면 박이 안내를 하는 것이었다. 2005년 1월 2일, 신동혁과 박은 수용소 철책 부근의 작업에 함께 투입되었다. 간수들의 순찰간격이 길다는 것을 눈치챈 둘은 간수들이 멀어지기를 기다렸다가 탈출을 감행했다.[1][10] 박이 먼저 철책 밑을 통과하려고 시도했지만,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책에 몸이 닿아 그자리에서 즉사한다. 신동혁은 박의 시신을 방패로 삼아 철조망을 통과할 수는 있었지만, 다리가 걸리는 바람에 심한 화상을 입게 된다.[1] 수용소에서 태어나고 자란 신동혁은 돈에 대한 개념이 없었지만, 탈출후 민가에서 훔친 쌀 한가마니를 팔아 돈을 마련하고 이것으로 간식과 담배를 샀다.[3] 중국과의 국경에 도달한 신동혁은 담배와 훔친 음식으로 비대원을 매수하고, 두만강을 건너 북한을 탈출하는데 성공한다.[3] 중국을 떠돌며 노동일을 하던 신동혁은 상하이의 한 음식점에서 한 기자와 우연히 만난다. 신동혁의 탈북 경험이 가진 가치를 알아본 기자는 주중 한국 대사관에 보호를 요청하고, 신동혁은 곧 한국으로 보내지게 된다. 신원 확인을 위한 한국 정부의 심사를 거친 신동혁은 그의 경험을 토대로한 수기를 작성하고, 그의 이야기가 언론에 알려진다. 후원자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한 신동혁은 그곳에서 신인근이라는 그의 본래 이름에서 신동혁으로 개명하고,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의 현실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했다.[1][5] 이후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신동혁은 북한 수용소 철폐를 위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2013년 6월 6일 신동혁은 국제인권상을 수상하였다.[11]

14호 수용소로부터의 탈출[편집]

워싱턴 포스트의 동아시아 특파원을 지낸 블레인 하든은 신동혁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2012년 "14호 수용소로부터의 탈출: 북한에서 자유 세계로 탈출한 한 탈북인의 놀라운 여정"을 출판했다. 자신의 자서전 성격의 이 책에서 신동혁은 어머니와 형의 처형 과정에서 그가 숨겨왔던 밀고 사실을 처음으로 밝혔다.[12][13]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Harden, Blaine, "How one man escaped from a North Korean prison camp", 16 March 2012 작성. 29 March 2012 확인.
  2. I was a Political Prisoner at Birth in North Korea. Life Funds for North Korean Refugees (NGO).
  3. Harden, Blaine (29 March 2012). 《Escape from Camp 14: One Man's Remarkable Odyssey from North Korea to Freedom in the West》, 224쪽. ISBN 9781101561263
  4. Blaine Harden discussed his historical narrative Escape From Camp 14: One Man's Remarkable Odyssey from North Korea to Freedom in the West. Q&A with Blaine Harden, April 11, 2012. C-SPAN video library.
  5. 최영해. "北 정치범수용소서 태어난 신동혁 씨, 美의회서 인권유린 실태 증언", 16 November 2011 작성. 30 May 2012 확인.
  6. Born and Raised in a North Korean Prison Camps. 《ABC News》 (30 October 2007). 26 March 2012에 확인.
  7. Medical Report and History of Shin Dong-hyuk. 《Life Funds for North Korean Refugees》 (9 July 2007). 26 March 2012에 확인.
  8. Choe Sang-Hun. "Born and raised in a North Korean gulag", 9 July 2007 작성. 29 March 2012 확인.
  9. Escapee Tells of Horrors in North Korean Prison Camp. Washington Post (11 December 2008).
  10. Escape from 'Total Control Zone' - North Korea's Papillon. The Daily NK (11 May 2007).
  11. Hinson, Tamara, "I thought the outside world was paradise, says the only North Korean to escape from prison camp", 30 April 2012 작성. 1 May 2012 확인.
  12. Review of Escape from Camp 14. The New York Times (11 April 2012).
  13. 김신영. "北 인권 적극 연구해야 할 사람은 한국인", 2 April 2012 작성. 30 May 2012 확인.

자서전[편집]

  • Harden, Blaine (29 March 2012). 《Escape from Camp 14: One Man's Remarkable Odyssey from North Korea to Freedom in the West》 (English), 224쪽. ISBN 9780670023325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