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교
시크교(펀자브어: ਸਿੱਖੀ)는 나나크가 힌두교와 이슬람교를 합쳐서 창시한 종교이다. 종교의 지도자를 구루, 따르는 제자들을 시크라고 불렀기 때문에 시크교로 불리게 되었다. 신자수는 2300만 명에 이르고, 주로 펀자브 지방에 있다. 현재 인도의 총리 만모한 싱이 시크교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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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편집]
개조(開祖) 나나크(1469∼1539)는 라호르 근처에서 출생했으며, 하급 카스트의 카트리 출신이다. 30세 경에 신의 계시를 받아 전도생활에 들어가 널리 인도 각지를 순회하면서 힌두, 이슬람 설교자들과 종교 문답을 벌이고, 또 메카를 순례하고 만년에는 고향에 정주하여 포교활동에 전심하였다.
그의 교의(敎義)는 이슬람의 알라에 가까운 유일신에 귀의하여 신에 대한 사랑과 현세의 선행(善行)으로만 인간은 구제된다고 믿는 것이다.
힌두교의 번잡한 카스트, 미신, 종교 의식을 배격하고, 인간의 절대 평등을 주장하였기 때문에 신도 중에는 하급 카스트 출신이 많고 개창자의 지위는 구루의 칭호를 갖고 후계자에게 계승되었다.
그 경전(經典)은 그란트라 불리는데, 개조 나나크를 비롯하여 구루들의 언행록을 집성한 것이다.
제6대 구루 무렵부터 무굴 제국의 지배에 대한 저항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여, 교단은 민족주의자, 불평분자, 비적(匪賊)들을 흡수하여 군사적 집단의 양상을 띠고 항시 무굴 황제와 충돌하였다.
초기의 평화로운 자세를 잃고 점차 전투적 색채를 짙게 띠어 이슬람교와는 멀어져 18세기 중엽에는 불법단체로 몰려 소멸의 위기까지 처했으나 곧 세력을 회복하고, 란지트 싱을 수장(首長)으로 받들어 교단의 재통일에 성공하였다.
펀자브 지방을 근거지로 하여 서유럽식 군대를 편성하여 영국세력과 항쟁하였고, 1845년 시크 전쟁이 발발되기도 하였으나, 1849년 영국의 지배에 굴복하였다.
교리 [편집]
시크교는 카스트제를 부정하여 인간평등을 내세우며, 제례와 같은 형식을 거부하면서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을 주장하였다.
풍습 [편집]
시크교도 남성들은 머리에 둘러쓴 터번과 얼굴에 자라있는 수염의 모습으로 알아볼 수 있다. 시크교의 남성들은 5가지 k를 입는다 - kes(케스 - 깎지 않은 머리털), kangha (캉가 - 작은 머리빗), kara (카라 - 둥근 팔찌), kirpan (키르판 - 단검), kaccha (카차 - 특별한 속옷). 대부분의 남성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머리털과 수염을 절대 깎지 않는다. 이런 신앙심이 깊은 남성들은 머리털을 위로 올려 머리빗으로 꽂은 후에 터번으로 둘러쓰는 편이다. (머리털과 수염을 깎는 남성들도 물론 있지만, 그런 남성들은 회당에 갈때 작은 머리수건으로 가려야 한다)
남성들은 이름과 성 사이에 Singh (싱 - "사자"의 뜻), 여성들은 Kaur (카우르 - "암사자"의 뜻)이란 단어를 넣은다.
시크교도들은 채식주의자들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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