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바라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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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의 난
(에도 시대의 일부)
하라 성
하라 성
날짜 1637년 12월 11일-1638년 4월 12일
장소 일본 하라 성(지금의 나가사키 현 미나미시마바라 시)
결과 막부군이 고전 끝에 승리
교전국
에도 막부군 반란군
지휘관
마쓰다이라 노부쓰나
이타쿠라 시게마사
아마쿠사 시로
병력
125,800 37,000(여러설이 있음)
피해 규모
1,900 전원 옥쇄
야마다 에몬사쿠가 유일한 생존자


시마바라의 난(일본어: 島原の亂)은 1637년 일본 규슈 북부의 시마바라에서 기독교를 믿는 (기리시단) 농민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농민항쟁이다.

설명[편집]

개요[편집]

농민항쟁의 중심인물은 아마쿠사 시로라는 16세의 소년으로, 하느님의 대리인으로서 여러가지 신통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하지만 12만명의 진압군에 의해서, 농민 4만 명이 가담한 대형농민항쟁인 시마바라의 난은 4개월 만에 진압되었으며, 기독교 신자에 대한 탄압이 더욱 가혹해졌다.

성격[편집]

시마바라의 난은 종교적 성격과 민중저항적인 성격을 모두 갖고 있다. 그 이유는 농민항쟁의 원인이 기독교 탄압이라는 종교적 성격과 세금 착취라는 민중들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가 모두 포함되기 때문이었다.그래서 에도 막부에서는 청동으로 제작한 성화상을 밟지 못하는 이들은 기독교 신자로 규정하여 처형하는 등 도쿠가와 막부의 기독교에 대한 탄압은 더욱 극심해진다.

배경[편집]

착취[편집]

시마바라의 난은 마쓰쿠라 가쓰이에 (松倉勝家)가 영주로 있던 히젠시마바라 반도의 시마바라 번과 데라자와 가타타카 (寺沢堅高)가 영주로 있던 가라쓰 번의 주민들이 백성들의 혹사와 과중한 연공 (해마다 현물로 바치는 공납으로 수입의 약 50%를 쌀로 납부) 부담, 거기에 더해 번에 의한 기독교도 박해, 기근에 의한 피해까지 더해 두 번에 반발이 일어났다. 여기에 참가한 백성들은 곤궁한 생활에 빠져있던 농민뿐 아니라 예속민을 포함한 농업, 어업, 수공업, 상업등의 거의 모든 산업 종사자들들도 크고 넒게 포함되었다.

기독교 탄압[편집]

시마바라는 기독교를 믿는 다이묘아리마 하루보누(有馬晴信)의 영지로서 주민들 중에 기독교 신자들이 늘어났지만 케이쵸 19년 (1614년)에 아리마 가문이 영지를 옮기게 되고 그대신으로 들어오게 된 마츠쿠라 시게마사 (松倉重政)가 에도성 개축 작업을 떠맡게 되면서 독자적으로 루손 섬 원정계획을 세워 선발대를 파견하고 시마바라성을 개축하기도 했다. 성 개축비용을 만들기 위해 주민들로 부터 연공을 과도하게 거둬들였다. 게다가 기독교 신자들을 가혹하게 탄압하기 시작했으며, 연공을 내지못하는 농민들과 배교를 거부한 기독교도들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처형한 일이 네덜란드의 상관장(商館長)인 니콜라스 쿠케바겔과 포르투갈 선장의 항해기록에 남아있다. (그 잔혹함은 로마 가톨릭에 반대하는 개신교 신자들인 네덜란드 사람들조차도 질리게 할 정도였다.) 시게마사의 뒤를 이은 가쓰이에 역시 기독교도에 대해 시게마사와 같은 정책을 취했다.

아마쿠사[편집]

'아마쿠사'는 원래 기독교 다이묘였던 고니시 유키나가 (小西行長)의 영지로, 세키가라하 전투이후에 데라자와 가타타카에게 넘어갔으며 기독교도에 대한 대한 탄압도 계속 이어졌다. 호소카와 가기(細川家記)와 아마쿠시지마경 등 동시대 기록은 반란의 원인을 연공의 가혹한 수취때문이라고 적고 있으며 시마바라 번주인 마쓰쿠라 가문은 스스로 실정을 인정하지 않고 반란세력의 기독교 신앙이 결속의 핵이라고 보고 이 반란을 기독교도의 폭동이라고 주장했다. 에도막부 또한 시마바라의 난을 기독교 탄압의 구실로 이용해기 위해 '시마바라의 난 = 기독교인 반란(종교전쟁)'이라는 도식으로 정착시켰다. 하지만 실제로 이 반란에는 아리마 가문과 코니시 가문에 속해있던 료진들과 기존의 토착 영주였던 아마쿠사 가문과 시키 가문이 가세했고 일반적으로 말하는 '기독교도의 종교전쟁과 순교이야기'라는 이미지는 반란의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 덧붙이자면 위에 기술된 종교전쟁 이외의 측면이 존재한다고 했지만, 반란군에 참전했던 기독교도들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순교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문화속의 시마바라의 난[편집]

참고로 시마바라의 난은 만화소년탐정 김전일》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주)SNK에서 개발한 사무라이 스피릿츠라는 게임의 마지막 보스인 야마쿠사 시로 도키사다는 그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