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기천
승기천 | |
承基川 | |
(지리 유형: 강) | |
나라 | 대한민국 |
---|---|
지방 | 인천광역시 |
도시 | 미추홀구 · 남동구 · 연수구 |
발원지 | 수봉산 |
- 위치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 |
기타 발원지 | |
- 위치 | 인천광역시 남동구 구월동 838-46 |
하구 | 남동공단유수지 |
- 위치 | 인천광역시 연수구 동춘동 |
길이 | 10.33 km (6 mi)[1] |
면적 | 33.58 km2 (13 sq mi)[1] |
승기천(承基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 수봉산에서 발원하여 연수구 동춘동 남동공단 유수지에서 황해로 흘러드는 하천이다.[2] 남동구 구월동 838-46에서 남동공단 유수지까지 6.20 km 구간은 대한민국의 지방하천으로 관리된다.[1] 중상류는 도시화 과정에서 대부분 복개되었으며, 지금은 하수종말처리장에서 정화한 물을 지방하천의 기점인 구월농축산물도매시장 인근에서 유입시킴으로써 하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2]
이름[편집]
승기천의 이름은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따 온 것으로,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도로 생겨났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는데 확실하지 않다.[3][4] 또한 ‘승기천’이라는 명칭은 《삼국사기》부터 〈대동여지도〉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는 점으로 볼 때, 후대의 누군가 창작한 이름으로 보인다.[5] 다만 유일하게 조선 철종 때의 〈동여도〉에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6][7]
1911년경의 《조선지지자료》에는 경기도 인천부 구읍면 관청리, 향교리(이상 현 관교동), 산성리, 학산리(이상 현 문학동)를 흐르는 하천으로 ‘관산ᄂᆡ(官山川)’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8], 이는 지리상 승기천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추정된다.
역사[편집]
1910년대의 지도에는 수봉산 동쪽 사충리(士忠里, 현재의 주안동 신기마을 일대)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지금의 승기사거리(옛 동양장사거리) 부근에서 남쪽으로 흐르기 시작하여 도장리(道章里, 현재의 선학동 북쪽)에서 바다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그려져 있다.[3][9] 수봉산에서 승기사거리 사이 구간은 지금의 주안2동과 4동을 동서로 통과하였다.[6] 도장리 남쪽 구간은 바다의 갯골로서 지금의 선학동, 남촌동, 논현동 부근을 흘러 나가다가[3], 대원례도와 소원례도의 동쪽으로 이어졌다.[9]
그러다가 지금의 연수구와 남동구 사이의 바다에 남동염전을 조성한 뒤부터는, 갯골은 남동염전 동쪽으로 흘러 옛 수인선 남동역 동쪽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으며, 유로는 이전과 같았다. 남동염전은 인천 지역에 주안염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진 근대식 염전으로, 1921년에 건설되었다.[10] 조선총독부의 제3기 염전 건설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남동염전은 1920년 9월부터 축조가 시작되어 1921년 12월에 준공하였는데, 척전리(尺前里, 지금의 동춘동 청량산과 봉재산 사이[11])의 1구 염전(105정보), 승기천 하구를 가로막아 만든 2구 염전(105정보), 논현리의 3구 염전(90정보)으로 구성되었다.[12]
1985년에 남동공단 건설을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부지를 조성하면서[13]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지금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황해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다.[3][14] 한편, 미추홀구 일대의 승기천 중상류는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다.[6] 어느 용현동 토박이의 증언에 의하면, 승기천 상류는 폭이 좁고 물이 맑았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지금의 주안7동 쪽)에서 합쳐져 이루어진다고 한다.[15]
지류[편집]
승기천의 가장 긴 지류는 문학산과 승학산 사이에서 발원하는 하천으로[9][2], 관교동의 여러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소하천들을 모아 동쪽으로 흘러 승기천 본류로 합류하였다.[16]
동춘동 방향, 연수동 방향, 남촌동 방향, 고잔동 방향으로 이어지는 네 갈래의 작은 갯골도 승기천 갯골로 흘러들었다.[3][17] 인천광역시 연수구 청학동 문학산 기슭에 있던 수영장인 ‘청학풀장’은 이 갯골로 흘러드는 지류의 물을 사용하였다.[16] 문학산에서 나와 청량산 동쪽을 지나 대원례도와 소원례도의 서쪽을 통과하는 지류는 조선 시대 인천군 먼우금면(遠又邇面)의 동쪽 경계를 이루기도 하였다.[18]
사진[편집]
각주[편집]
- ↑ 가 나 다 한강홍수통제소 하천정보센터 (2015). 《한국하천일람 2014》 (PDF). 세종: 국토교통부. 114-115쪽. 2019년 8월 11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2019년 9월 1일에 확인함.
- ↑ 가 나 다 장정구 (2018년 11월 9일). “인주로 주간선으로 복개된 본류, 발원지 마져 유실”. 인천in. 2019년 9월 2일에 확인함.
- ↑ 가 나 다 라 마 박정환 (2007년 7월 22일). “인천의 하천을 찾아서-(9)승기천 발원지와 물길”. 인천신문. 2019년 9월 2일에 확인함.
- ↑ 임동윤 2017, 28쪽.
- ↑ 최혜은 2013, 20쪽.
- ↑ 가 나 다 이창열 (2019년 5월 2일). “물이 많아 물이 흘렀던 미추홀구…승기천 본류 찾기”. 인천in. 2019년 9월 8일에 확인함.
- ↑ “동천(東川) / 인천광역시”. 《한국학자료포털》. 2019년 9월 15일에 확인함.
- ↑ 朝鮮総督府臨時土地調査局 (1911?). 《朝鮮地誌資料 京畿道 7》. 京城: 朝鮮総督府. 278쪽.
- ↑ 가 나 다 임동윤 2017, 23쪽 .
- ↑ 김학준 (2006년 7월 20일). “[인천이 원조] (15) 근대식 염전”. 서울신문. 2019년 9월 8일에 확인함.
- ↑ 유창호 2014, 14쪽.
- ↑ 유창호 2014, 30쪽.
- ↑ 박정환 (2009년 8월 4일). “[땅과 사람들](12)인천의 마지막 남은 송도 갯벌”. 경향신문. 2019년 9월 15일에 확인함.
- ↑ 문상범 외 2005, 22쪽.
- ↑ 오인영 (2019년 6월 14일). “내가 기억하는 승기천[1] - 오인영”. 《학산문화예술@TV》. 2019년 9월 15일에 확인함.
- ↑ 가 나 문상범 외 2005, 85쪽 .
- ↑ 최혜은 2013, 21쪽.
- ↑ 유창호 2014, 13쪽.
참고 문헌[편집]
- 문상범 외 (2005). 《인천의 산과 하천》. 인천: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역사문화연구실.
- 유창호 (2014). “일제강점기 ‘송도’ 연안의 개발과 어촌주민들의 삶”. 《인천학연구》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1 (21): 7-44. 2019년 9월 8일에 확인함.
- 임동윤 (2017). “인천의 생활공간 변화와 지명의 특징”. 《기전문화연구》 (경인교육대학교 기전문화연구소) 38 (1): 17-40. 2019년 9월 2일에 확인함.
- 최혜은 (2013). “승기천의 역사와 문화” (PDF). 《하천과 문화》. 9권 2호 (서울: 한국하천협회). 20-25쪽. 2019년 9월 8일에 확인함.[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