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오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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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오스틴

스티븐 오스틴(Stephen F. Austin, 1793년 11월 3일~1836년 12월 27일)은 흔히 "텍사스의 아버지(the father of Texas)"으로 잘 알려져 있다.

1800년대 초, 텍사스미국 이주민들 300가구가 처음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왔고, 나중에 더 많은 이주민들이 모이자, 이들과 함께 텍사스 독립의 기초를 닦은 사람이다. 텍사스의 주도 이름인 오스틴도 이 사람으로 부터 딴 것이며, 지금도 텍사스에서는 "오스틴"이라는 이름이 많이 쓰인다.

생애[편집]

청년기[편집]

스티븐 F. 오스틴은 미국 남서부 버지니아 주 리치몬드 남쪽 250km에 위치한 와이즈 카운티의 납광산 마을에서 아버지 모세와 어머니 마리아 사이에서 장남이자 둘째 아이로 태어났다. 첫 아이 엘리자는 태어난 지 한 달만에 죽는다.

1798년 6월 8일, 그가 5살 때 스트로보 미시시피 강 40 마일 서쪽 (현재 미주리)의 납광산 마을에 가족과 함께 이사를 갔다. 여기서 그의 아버지는 스페인인 주지사였던 제논 트루의 허가를 얻어 "브레튼 광산(Mine a Breton)"을 매입했다. 또한 1813년 의회에 제의를 하여 새로운 카운티(워싱턴 카운티)을 만들고, 카운티 소재지를 두는데 성공한다. (현재 미주리 주 워싱턴 카운티 포토시). 도시의 이름 "포토시(Potosi)"는 당시 볼리비아에 있는 세계 최대의 광산 도시였던 포토시를 딴 것이다. 스티븐이 10세가 되었을 때, 코네티컷 주 베이컨 아카데미에 진학했고, 켄터키 주 렉싱턴트란실바니아 대학을 진학하여 1810년 졸업한다.

켄터키에서 포토시로 돌아온 직후, 스티븐은 가족이 경영하는 잡화점에 근무했지만, 결국은 아버지에게서 가족 광산사업 대부분의 관리를 양도 받았다. 1813년 5월 24일에는 미주리 민병대 기수로 임명되었고, 9월 말에는 알렉산더 마쿠네아 대령이 이끄는 부대의 신병으로 입대했다. 1813년 10월 21일에는 보급 장교 부관으로 제대하였다. 1815년 미시시피 강 서쪽에서 처음 여관이다 미주리 주 세인트 제누비에부에 있는 루이지애나 제 109 결사 프리메이슨이 되었다. 1815년부터 1819년까지 미주리 지역의 대의원을 맡았고, 세인트 루이스 은행의 위기 구제 때에는 그 영향력을 행사했다.

주석[편집]

바깥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