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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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 松, 訟)씨는 한국과 중국의 성씨이다.

송나라 송 (宋)[편집]

중국의 송씨[편집]

(宋, 嵩, 병음 : , 광둥어 : )씨는 중국 성씨 순위 23위으로, 6~7가지 계통이 있다. 일반적으로 송(宋)씨는 송나라 국호와 같으므로 송나라에서 계출되었다고 믿어 지지만 득성 시조는 전하지 않는다. 송나라 멸망 이후 제나라 사람들이 유입되었고 지역 명을 성으로 삼기도 하였다. 중국에서는 송씨는 크게 씨와 씨가 있다. 중국은 대륙이 넓어 지역마다 발음이 다른데, 고대 부터 랴오닝성 압록강 인근에 만주 성씨 숭가(嵩佳)씨가 단성으로 줄이면서 송(宋, 嵩)씨가 되었다고 한다.

다른 송씨로는 서초(西楚)에 초 의제을 옹립한 송의(宋義)가 있었는데, 출신은 알려져 있지 않다. 묘족, 토가족이 송씨을 사용하는데, 이들은 모계 사회이므로 어미니을 성을 따른다. 따라서 이들 성씨는 부계로 이어지는 연속성이 없다. 중국 민요 가수 가운데 묘족, 토가족 송씨들이 많이 있다. 손문의 부인으로 유명한 송경령(쑹칭링)의 아버지는 본래 이름이 (韓)씨로 외삼촌의 성을 취하여 숭(宋 Soong)씨로 창성했다고 한다.

한국의 송씨[편집]

(宋, Song)씨는 한국 성씨 순위 18위 63만명이다. 고대 문헌에 172본이 전하였는데 현재 대부분 여산, 은진, 진천으로 합본되었다. 토착 사족 성본으로 전하는 황해도 연안 송씨는 서기 50년 무렵애 송지겸(宋之兼)을 원조로 고려 개국 공신 송위(宋瑋)가 시조로서, 한국 송씨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으며 토착계의 원조이다. 경상도 문경 송씨는 토착 송씨로 송신경(宋臣敬)이 고려가 망하자 관직을 버리고 문경에 정착했다고 한다.

여산 송씨는 고려 때 진사(進士)을 지낸 송유익(宋惟翊)을 시조로 하며, 4대손 송송례(宋松禮)가 반원 세력을 제거하는 공을 세우고 몽골에 다녀온 후 여산부원군에 봉해져 관향으로 삼았다. 분파 은진 송씨는 송유익(宋惟翊)의 형제로 전하는 송천익(宋天翊)이 시조이며, 을사조약을 맺은 관리 송병준의 본관으로 알려져 있다. 분파 홍주, 신평 송씨는 송유익(宋有翊)의 12세손 송말선(宋末善) 후손 송계(宋桂)가 이성계(李成桂)의 조선 건국에 반대하다가 홍주에서 생을 마치고, 자손들이 관향을 홍주과 신평으로 하였다. 분파 양주 송씨는 송유익 후손 송도성(宋道成)을 시조로 한다고 전한다. 이들 성본은 선조는 당나라 이부 성서 송주은(宋柱殷)의 후손 송자영(宋自英)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들의 귀화 시기와 이후 행적, 자손의 세보는 전하지 않는다고 한다.

선조는 전하지 않는 성본, 청주 송씨는 고려 후기 예부상서를 지낸 송춘(宋椿)으로, 아들 송유충(宋有忠)이 이성계을 도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청원군(淸原君)에 봉해졌다. 이후 세보가 실전되어 조선 후기 성균관대사성을 지낸 송승은(宋承殷)을 중시조로 하였다. 진천 송씨의 시조는 신라 말기 대아찬을 지낸 송순공(宋舜恭)인데, 이후 340년간 세계가 실전되었고 송인(宋仁)을 중시조로 하였다. 야성 송씨는 고려 목종조 송맹영(宋孟英)이 야성군에 봉해졌다.

남양 송씨는 당나라 한림학사로 신라에 들어와 이부상서를 지낸 송규(宋奎)로, 신라가 망하자 경기도 남양(南陽,)에 은거하였다. 그 후 계보가 분영하지 않은데 고려시대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송경화(宋景華)가 가세를 일으키고 자손들이 남양을 관향으로 하였다. 1세조는 고려 공민왕조 출사한 송세보(宋世輔)라고 한다.

소나무 송 (松)[편집]

송(松)씨는 연원을 전하지 않는데, 고구려 초기 송양(松讓)이 있었다. 송(松)씨는 역사가 오래 되었는데, 인구수는 적다. 1985년에는 29가구가 나타났다. 본관은 화순 송씨 1본으로 송본(松本)씨 였는데 송(松)씨로 바꾸었다고 한다.

송사할 송 (訟)[편집]

강릉 성씨는 송사할 송(訟)씨에서 성(成)씨로 개성한 성본이다. 시조 송척(訟戚)은 고려 목종 이름 (訟)을 피하여, 그의 할머니 성씨을 따라 (成)씨로 개성하여, 성척(成戚)으로 개명하였다. 송(訟)씨의 선조에 대해서는 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