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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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송(宋)씨의 유래[편집]

송(宋)씨 시조는 상(商)나라(殷 은나라) 30대 왕 제을(帝乙)의 장자(長子) 미자계(微子啓)인데, 왕위를 동생 신(辛)에게 빼앗겼다. 동생 신이 바로 상(商)나라의 마지막 왕이자 폭군인 주왕(紂王)이다. 주(周) 무왕(武王)이 난을 일으켜 상(商)나라를 멸망시키자 미자계는 상나라 백성을 살려 달라고 간청했다. 이에 주(周) 무왕이 폭군 주왕의 상(商)나라 수도 호경에 식읍을 주어 유민들을 관리케 하였다. 미자계가 제후로 봉해진 나라가 바로 송(宋)나라였으며, 이후 700여년간 존속하다가 기원전 286년경에 제(濟), 위(魏), 초(楚)의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였다. 이후 송나라 유민들이 상(商)나라의 옛 도읍인 허난성(河南省)일대에 자리잡고 송(宋)씨를 성으로 쓰면서 송씨가 생겨났다

중국의 송씨[편집]

(宋, 嵩, 병음 : , 광둥어 : )씨는 중국 성씨 순위 23위으로, 6~7가지 계통이 있다. 제(濟)나라 멸망 이후 제나라 사람들이 송나라에 유입되었고 송나라 멸망후엔 일부 유민들이 노(魯)나라로 유입되었다 공자(孔子)는 노나라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조상은 상(商)(은나라) 최후의 임금 주왕(紂王)의 맏형이자 현자(賢者)로 알려진 미자계(微子啓)에 이르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공자의 계보는 이처럼 상나라의 왕들을 거슬러 탕(湯)임금에 이르고,송(宋)나라의 왕실로 다시 이어져 줄곧 왕실의 적자로 내려오고 있는데, 불보하(弗父何)에 이르러서는 왕계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는 불보하가 임금의 자리를 다투지 아니하고 스스로 물러나 은둔 생활을 했기 때문이었다. 왕계로부터 갈라진 불보하의 후손은 그의 아들인 공보가(孔父嘉)에 이르게 되는데, 공보가는 그 무렵 송나라 사마(司馬) 벼슬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는데 어느날 권신 화보독(華父督)이 공보가의 부인을 보고는 반해 버려 음모를 꾸민 뒤에 군대를 동원하여 공보가를 죽이고 부인을 빼앗아 버렸던 것이다. 이로 인해 화보독이 보복을 두려워하여 계속 박해를 하자 할 수 없이 그의 아들 자목금보(子木金父)는 송나라를 떠나 노나라로 도망쳐 살게 되었으니 이때부터 아버지의 자(字)인 공보(孔父)에서 공(孔) 자만을 따서 정식으로 공씨(孔氏) 성을 삼았던 것이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서도 공자를 가리켜 ‘그의 선조는 송나라 사람으로서 공방숙(孔防叔)'이라 하였다. 노자(老子) 역시 상(商)(은나라)의 후손으로 추정된다. 상나라의 옛 도읍이자 초나라 고현(苦縣)인 하남성(河南省) 녹읍에서 출생한 노자는 주(周) 왕실의 도서관장직을 맡고 있다가, 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윤희라는 관령(關令)에게 도(道), 덕(德)의 의미를 밝힌 글을 남기고 주나라를 떠나 그이후 영원히 종적을 감추었다고 한다. 중국에 송씨는 크게 씨와 씨가 있다. 중국은 대륙이 넓어 지역마다 발음이 다른데, 고대 부터 랴오닝성 압록강 인근에 만주 성씨 숭가(嵩佳)씨가 단성으로 줄이면서 역시 송(宋, 嵩)씨가 되었다고 한다. 묘족, 토가족이 또한 송씨를 사용하는데, 이들은 모계 사회이므로 어미니을 성을 따른다. 따라서 이들 성씨는 부계로 이어지는 연속성이 없다. 중국 민요 가수 가운데 묘족(苗族), 토가족(土家族) 송씨들이 많이 있다.

한국의 송씨[편집]

(宋, Song)씨는 한국 성씨 순위 18위 63만명이다. 고대 문헌에 172본이 전하였는데 현재 대부분 여산, 은진, 진천으로 합본되었다. 토착 사족 성본으로 전하는 황해도 연안 송씨는 서기 50년 무렵애 송지겸(宋之兼)을 원조로 고려 개국 공신 송위(宋瑋)가 시조로서, 한국 송씨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으며 토착계의 원조이다. 경상도 문경 송씨는 토착 송씨로 송신경(宋臣敬)이 고려가 망하자 관직을 버리고 문경에 정착했다고 한다.

선조는 전하지 않는 성본, 청주 송씨는 고려 후기 예부상서를 지낸 송춘(宋椿)으로, 아들 송유충(宋有忠)이 이성계을 도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청원군(淸原君)에 봉해졌다. 이후 세보가 실전되어 조선 후기 성균관대사성을 지낸 송승은(宋承殷)을 중시조로 하였다. 진천 송씨의 시조는 신라 말기 대아찬을 지낸 송순공(宋舜恭)인데, 이후 340년간 세계가 실전되었고 송인(宋仁)을 중시조로 하였다. 야성 송씨는 고려 목종조 송맹영(宋孟英)이 야성군에 봉해졌다.

남양 송씨는 당나라 한림학사로 신라에 들어와 이부상서를 지낸 송규(宋奎)로, 신라가 망하자 경기도 남양(南陽,)에 은거하였다. 그 후 계보가 분영하지 않은데 고려시대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송경화(宋景華)가 가세를 일으키고 자손들이 남양을 관향으로 하였다. 1세조는 고려 공민왕조 출사한 송세보(宋世輔)라고 한다.


여산 송씨는 고려 때 진사(進士)을 지낸 송유익(宋惟翊)을 시조로 하며, 4대손 송송례(宋松禮)가 반원 세력을 제거하는 공을 세우고 몽골에 다녀온 후 여산부원군에 봉해져 관향으로 삼았다. 분파 은진 송씨는 송유익(宋惟翊)의 형제로 전하는 송천익(宋天翊)이 시조이며, 분파 홍주, 신평 송씨는 송유익(宋有翊)의 12세손 송말선(宋末善) 후손 송계(宋桂)가 이성계(李成桂)의 조선 건국에 반대하다가 홍주에서 생을 마치고, 자손들이 관향을 홍주과 신평으로 하였다. 분파 양주 송씨는 송유익 후손 송도성(宋道成)을 시조로 한다고 전한다. 여산의 세보는 당나라에서 온 호부상서 송주은(宋柱殷)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국내 송씨의 도시조인 셈이다.그의 7세손인 송순공(宋舜恭)이 송성용(宋成龍), 송흥용(宋興龍), 송인용(宋仁龍), 송복용(宋福龍) 4형제를 두었는데, 송인용의 후손이 진천송씨가 되고, 송복용의 후손이 홍주송씨가 되었다. 또, 장자인 송성용의 둘째아들 송정열(宋正烈)의 후손은 신평송씨가 되었고, 송성용의 장자인 송흥렬에서 야성송씨(둘째 송맹영의 후손), 김해송씨(셋째 송계영의 후손)가 갈라져 나갔다.

그 송흥렬의 장자가 송주은의 10세손인 송자영(宋自英)이며, 그가 송유익(宋惟翊), 송천익(宋天翊), 송문익(宋文翊) 3형제를 두어 이들이 각각 여산송씨, 은진송씨, 서산송씨로 갈라져 나갔다고 한다. 그래서 송씨끼리는 본관이 달라도 서로 통혼하지 않는 것이 관습이다.

문헌 기록에는 본관이 172본이나 기록되어 있으나, 현존하는 본관은 여산(礪山), 은진(恩津), 진천(鎭川), 연안(延安), 야성(冶城), 청주(淸州), 신평(新平), 김해(金海), 남양(南陽) 등 10여 본이다. 그중 대부분은 여산송씨, 은진송씨, 진천송씨이다.

신라 대아찬(大阿飡) 송순공(舜恭) 고려시대에 상장군(上將軍) 송송례(松禮) 조선시대에 왕비 정순왕후(定順王后) 영의정 송질(帙), 중종(中宗)의 부마(駙馬 ) 송인(寅)과 임진왜란 당시 혁혁한 공을 세워 임난공신(壬亂功臣)에 오른 송희립(希立) 송대립(大立) 송정립(正立) 세형제. 문묘(文廟)에 배향된 거유(巨儒) 송시열(時烈) 송준길(俊吉). 조선8대문장가중 한 사람인 송익필(翼弼)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