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베이 회의
물리학과 화학을 위한 국제 솔베이 기구(International Solvay Institutes for Physics and Chemistry)는 벨기에의 기업가인 어네스트 솔베이가 1912년 브뤼셀에서 세웠다. 이 기구는 1911년 솔베이 회의(Conseil Solvay)의 성공에 힘입어 세워졌다. 솔베이 회의는 세계 최초의 물리학 학회이며 초청자로만 구성되었다. 이 기구는 학회와 워크숍, 세미나, 콜로키엄을 주관한다.
솔베이 회의(Conseils Solvay)는 물리학과 화학의 중요한 미해결 문제를 위해 1911년 개최되었다. 이 학회는 3년마다 열린다. 제 23회 국제 물리학 솔베이 학회는 2005년 12월 1일~3일 브뤼셀에서 열렸으며 주제는 "The Quantum Structure of Space and Time"이었다.[1]
목차 |
[편집] 첫 번째 회의
1911년 가을 브뤼셀에서 열린 첫 번째 솔베이 회의는 헨드릭 안톤 로런츠가 의장을 맡았다. 첫 번째 주제는 "방사능과 양자(Radiation and the Quanta)"였다.
이 회의는 고전 물리학과 양자 역학의 두 가지 문제에 착수한 것처럼 보였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가장 어린 물리학도 참석자였다. 솔베이 학술회에는 퀴리 부인이나 앙리 푸앵카레와 같은 유명한 회원들이 참석하였다.
[편집] 다섯 번째 회의
가장 유명한 솔베이 회의는 1927년 8월 브뤼셀에서 열린 전자와 광자에 대한 다섯 번째 솔베이 국제 회의일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을만한 이 물리학 토론은 양자 역학에 대한 토대를 명확히 하였으며, 이 토론에서 주축이 된 인물은 아인슈타인과 보어였다.
아인슈타인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큰 반대를 하였고,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God does not play dice.)"는 말을 남겼다. 이에 대해 보어는 "아인슈타인, 신에게 명령 하지 말게나.(Einstein, stop telling God what to do.)"는 말로 답하였다.
다섯 번째 솔베이 회의 참석자 29명중의 17명은 노벨 상을 받았으며, 마리 퀴리는 이들 중 유일하게 두 가지 부문에서 수상하였다.
[편집] 국제 물리학 솔베이 학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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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vay 1961.jpg
열두 번째 국제 물리학 솔베이 학회, 브뤼셀, 1961.
[편집] 주석
- ↑ Annual Report 1999 (pdf) 30. Institute for Theoretical Physics - Faculty of Science - Universiteit van Amster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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