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쇄원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담양 소쇄원
(潭陽瀟灑園)
대한민국 대한민국명승
Korea-Damyang-Soswaewon-01.jpg
지정번호 명승 제40호
(2008년 5월 2일 지정)
소재지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 123
담양소쇄원
(潭陽瀟灑園)
대한민국 대한민국사적
지정번호 사적 제304호
(1983년 7월 20일 지정)
(2008년 5월 2일 해지)

소쇄원(瀟灑園)은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원이다. 조선 중종 때의 학자 양산보(梁山甫,1503~1557)가 기묘사화로 스승인 조광조(趙光祖)가 화를 입자 시골로 은거하러 내려가 지은 별서정원(別墅庭園)으로, 자연미와 구도 면에서 조선시대 정원 중에서도 첫손으로 꼽힌다. 1983년 7월 20일에 사적 제304호로 지정되었고, 2008년 5월 2일에 명승 제40호로 변경되었다. 당시의 건물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으나 다시 복원, 중수하여 현재 2동이 남아 있다. 소쇄원은 조성중기 호남 사림문화를 이끈 인물의 교류처 역할을 하였다. 면앙 송순, 석천 임억령, 하서 김인후, 사촌 김윤제, 제봉 고경명, 송강 정철, 등이 드나들면서 정치, 학문, 사상 등을 논하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역사[편집]

건물[편집]

소쇄원은 크게 내원과 내원으로 구분하는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쇄원은 내원을 말한다.

  • 제월당
  • 광풍각
  • 매대

정원[편집]

문학[편집]

연대표[편집]

  • 1503 (중종38) 소쇄원 작정자이자 소유주 양산보, 부친 창암 양사원의 3남중 장남으로 태어나다.
  • 1517 (연산군9) 양산보, 15세에 상경하여 정암 조광조(1482~1519)의 가르침을 받다.
  • 1519 (중종14) 양산보, 17세에 과거(현량과)에 합격했으나 합격자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등용되지 못하다.
    • 기묘사화로 양산보의 스승 조광조가 능주로 유배되어 사약을 받고 죽다.
  • 1520 (중종15) 양산보, 스승 조광조의 죽음을 계기로 고향 지석동 창암촌으로 낙향하다.
  • 1530 (중종25) 양산보, 소쇄원 조경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다.[주 1]
  • 1534 (중종29) 소쇄원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 등장하다.[주 2]
  • 1548 (명종3) 하서 김인후가 소쇄원48영을 짓다.
  • 1557 (명종12) 양산보, 55세에 사망하다.
  • 1592 (선조25) 정유재란 중에 건물이 불에 타다.
  • 1614 (광해군6) 양산보의 손자 천운(1568~1637)이 재건하다.
  • 1755 (영조31) 판화로 소쇄원도가 만들어지다.[주 3]
  • 1973 소쇄원이 최초로 학술논문에서 다뤄지다.[1]
  • 1979 소쇄원을 다룬 단행본 서적(사진집)이 최초로 출간되다.[2]
  • 1981 국가 사적 304호로 지정되어 문화재로 인정받다.
  • 1983 소쇄원 보존을 다룬 정부 당국 보고서가 출간되다.[3]
  • 1991 양씨 종중이 소쇄원 관리비 마련을 위해 입장권 유료화를 추진하자 담양군이 이를 ‘불법 징수’라며 반대하여 실현되지 못하다.
  • 1993 유홍준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에 '담양 소쇄원: 자연과 인공의 행복한 조화'라는 한 장으로 소개되어 전국적인 유명세을 얻다.[4][주 4]
  • 1995 소쇄원을 다룬 석사학위 논문이 최초로 출간되다.[5]
  • 2005 소쇄원 입장료(어른 기준 : 천원)를 받기 시작하다.
    • 양씨 종중이 문화재청을 상대로 ‘명승지정 및 관리단체 지정취소’ 소송을 제기하다.
  • 2008 명승 제40호로 지정되다(국가 사적 제304호 지정 해제).
    • 소쇄원을 다룬 박사학위 논문이 최초로 출간되다.[6]
  • 2010 담양군이 양씨 종중에 현지 관리인 추천권을 주고 종중 총회에서 의결한 종중사업에 대해 수익금 일부(입장료의 40%)를 보조금으로 지급하는 타협안을 제시해 합의하다.
  • 2014 양산보의 15대손 양재영(52)이 관리하고 있다.
    • 소쇄원을 다룬 가장 최근 단행본 서적이 출간되다.[7]
    • 소쇄원을 다룬 가장 최근 박사학위 논문이 출간되다.[8]
    • 소쇄원 알기 모임(1차)이 개최 예정이다[주 5]

함께 보기[편집]

주석[편집]

내용주
  1. 조선시대 작정된 정원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민간정원은 경북 경주시에 위치한 양동 서백당으로 1484년(성종15)에 만들어졌다.
  2. 소쇄원초정에 관하여 제일 이른 기록으로 면앙집1권에 수록된 시가(외제양언진소쇄정사수가정갑오外弟梁彦鎭瀟灑亭四首嘉靖甲午)
  3. 1983년 소쇄원판이 종가에 보관되어 있다는 언론 보도 이후 도난당해 현재 탁본 한 장이 겨우 남아 있다.
  4. 이후 전문가나 지역주민에게만 알려져있던 소쇄원이 문화유적 면적당 관람객 수 1위를 차지하게 된다.
  5. 일시 : 2014년 10월 11일(둘째 주 토요일) 오후 2시, 장소 : 한국가사문학관 강당(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319), 주최 : 소쇄원 알기 모임 및 전남대 건축역사연구실
참조주
  1. 정동오, 양산보의 소쇄원에 대하여, 한국조경학회지 제3집, 1973
  2. 임응식, 한국의 고정원 소쇄원, 광장, 1979
  3. 문화재관리국, 심경구 외, 담양소쇄원 보존정비계획 및 설계, 1983
  4.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 창비, 1993
  5. 장수영, 별서 소쇄원에서의 공간구조상의 조직체계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대학원, 1995
  6. 권수용, 소쇄원의 역사와 인문활동 연구, 전남대학교, 2008
  7. 이기동, 천국을 거닐다, 소쇄원: 김인후와 유토피아, 사람의무늬, 2014
  8. 장익식, 소쇄원 오곡문 담장 구조형태 해석에 관한 연구 : 담장 축석(築石)을 중심으로, 상명대학교, 2014

참고 자료[편집]

바깥 고리[편집]

Heckert GNU white.svgCc.logo.circle.svg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다음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