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토폴 포위전 (1941년 ~ 19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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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바스토폴 포위전 (동부 전선의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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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소련 겨울 공세 때 전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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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짜 | 1941년 10월 30일 - 1942년 7월 4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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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 | 소비에트 연방 세바스토폴 | ||
| 결과 | 추축국의 승리 | ||
| 교전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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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휘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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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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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 규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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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토폴 포위전은 제2차 세계 대전 독소 전쟁 초기 독일군이 소비에트 연방 크림 반도의 세바스토폴을 10개월에 걸쳐 공격해 점령한 전투이다.
목차 |
전투 계획 [편집]
독일은 키예프와 스탈린그라드를 점령한 후,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아직도 점령하지 못한 크림 반도의 세바스토폴은 그야말로 발 앞의 가시였기 때문에, 독일은 이를 제거하고자 하였다. 그 이유는 세바스토플은 독일군 점령영토의 한 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에, 점령하지 못하면 남부집단군을 반으로 쪼개 전진해야 하고, 흑해의 중요한 해군기지였다.
독일군은 루마니아군을 동원해 총 350,000명을 모았지만, 그에 비해 소련의 병력은 106,000명이였고, 독일에게 고립되어 지원 물자도 받을 수 없어 처음부터 무리인 상황이었다.[1]
경과 [편집]
첫번째 작전 [편집]
독일과 루마니아는 전투 시작 전 10월 초부터 세바스토폴에 대한 전 화력을 동원한 포격을 하고 있었다. 무차별 공격을 통해 민간인도 사망자가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10월 30일, 포격 이후 잠잠해진 도시로 전진을 시작한 군은 도시에 진입하자 마자 살아 남은 소련 병력들이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만슈타인이 이끄는 11군과 30군은 북동쪽으로 포위하고, 남쪽으로도 포위하려고 했으나 소련군의 저항으로 실패하였다.
해상과 지상 모두 고립된 세바스토폴은 독일 수뇌부가 포격과 고립으로 매우 약했졌다고 확신하고 공격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소련 해군의 지원과 게릴라 전으로 점령에 실패하고 후퇴하자 소련군도 공격을 중지하였다.
두번째 작전 [편집]
독일군은 궂은 날씨에도 공격을 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독일 군대는 충원되어 다시 공격을 시작하였다.
12월 26일, 도시를 공격하기 시작한 독일군은 세바스토폴을 궂은 날씨와 추위로 점령에 실패하였고, 다시 봄이 되자 총공세를 시작한 독일군은 세바스토폴의 전 도시를 점령하였다. 그리고 남아 있는 모든 소련군은 포로가 되거나 사망하게 되었다.
결과 [편집]
결국 독일은 세바스토폴을 점령하기는 하였으나 10개월이나 걸린 공격, 추위로 인해 양 쪽다 피해를 보았고 독일은 25,000명이 사망하고, 소련군은 도시에 있었던 전 병력이 무너졌다.
그러나 세바스토폴의 전투는 영웅적인 것이었다.[2]
주석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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