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의 대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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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본문은 세르비아의 대외 관계에 대한 설명이다.

각국과의 대외 관계[편집]

국기 수교 관계
대한민국 대한민국

유고슬라비아 연방시절에는 북한 단독수교국으로 1950년 한국전쟁 때는 친소(親蘇) 노선 국가로 UN의 대한(對韓)지원에 UN 비상임이사국으로서 기권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 1989년에 대한민국과 공식수교하였다. 그러나 1993년 유고사태 악화로 관계가 소원해져 주유고 한국대사관이 철수 및 폐쇄하여 주루마니아 한국대사관이 겸임하였다가 2002년 주세르비아-몬테네그로 한국대사관을 재설치하였다. 세르비아도 한국에서 주한대사관을 철수 및 폐쇄하고 주일본대사관이 겸임하였다가 2004년 주한국대사관을 재설치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971년에 수교하였다.

터키 터키

1389년 코소보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세르비아 제국을 물리쳐, 세르비아 제국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일본 일본

세르비아-일본 관계는 18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세르비아는 19세기 초에 일본과 관계는 중립 상태였고, 제1차 세계대전때는 같은 연합국으로서 동맹국과 맞서 싸웠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때 일본추축국으로 들어서자 적대적 사이가 되었다. 공산주의 정권이 끝난뒤에야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세르비아는 노력하였다. 오늘날, 일본과 세르비아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나 일본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자 세르비아는 이로 인한 갈등을 겪었다. 최근에 세르비아는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일본 대지진에 대한 격려를 일본 국기에 메시지를 적어주는 상황이 생겼다.

러시아 러시아 세르비아가 오스만의 지배에서 독립할 수 있었던 이유는 러시아가 오스만을 군사적으로 격파하면서 오스만의 국력이 쇠약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따라서 세르비아는 러시아와 매우 친밀한 관계에 있었으며, 러시아를 가리켜 같은 정교회를 믿는 슬라브족 형제라고 생각할 만큼 각별했다. 제1차 세계대전때에도 러시아 제국의 차르인 니콜라스 2세가 영국과 프랑스 등 연합국에게 세르비아를 돕지 않으면 러시아는 참전하지 않겠다고 할만큼, 러시아와 세르비아 두 나라 사이는 좋았던 사이였다. 소련군의 지원 아래에 1943년에 영토를 수복, 유고슬라비아 왕국이 지배하던 땅에 연방이 세워졌다(유고슬라비아 연방). 두 나라의 관계가 유고 연방이 공산주의 시절에는 소련과 대립되어 있던 상태였다. 현재에서의 관계는 조금씩 풀려가고 있다.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19세기 말에서의 관계는 나쁜 외교 상태였고,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 사건 당시 세르비아인 가브릴로 프린치프오스트리아-헝가리의 황태자를 암살함에 따라 한 달 후에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를 하였다. 그러나 1916년 2월에 세르비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에게 점령되었다. 현재 오스트리아와의 관계는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1920년에 세르비아를 포함하여 건국된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1941년,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당했으며 나치에 협력한 크로아티아인에 의해 세르비아인에 대한 학살이 이루어졌다.
몬테네그로 몬테네그로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와 연방을 이루었던 국가로, 2006년 이후에는 조금씩 긴장 관계에서 서있기도 하였으나, 몬테네그로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자 두나라의 사이는 관계가 악화되었다.
헝가리 헝가리 헝가리와 세르비아는 특별히 국제적인 감정같은 것은 없다. 국제 사회에서도 헝가리와 세르비아의 관계는 그나마 좋은 사이다. 헝가리는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이었고, 전쟁의 책임을 마무리하는 교섭이 진행되어, 연합국과 헝가리간의 트리아농 조약(1920년 6월 4일)에 따라 유고슬라비아 왕국에 영토를 할양하였다. 헝가리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잃은 땅을 회복하기 위해 또한 나치 독일의 압박을 받아, 추축국에 가담하여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공격해 현재의 슬로베니아 일부 지역과 세르비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전역을 합병, 대국이 되었다.

주석 및 인용[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