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비오 10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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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10세회는 로마 가톨릭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에 반발하여 프랑스 가톨릭 교회의 르페브르 대주교에 의해 창설된 가톨릭 계열의 수도회이다. 미사 전례에 있어 라틴어로 된 트라이덴틴 전례만 사용하며 각 국가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거부한다.
1988년 로마 교황청의 금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으로 주교 4명을 임명하여 자동처벌의 파문에 해당되어 로마 가톨릭과 분리되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들의 행동은 교회분리의 파문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비오10세회는 별도의 독립 교회를 주장하고 있지는 않고, 또한 로마 가톨릭과의 분리를 주장하고 있지 않다. 로마 가톨릭과 친교를 회복하기 위한 대화는 계속되고 있다. 2005년 9월 1일 비오 10세회를 이끌고 있는 주교 베르나르드 펠라이는 교황 베네딕도 16세를 방문하여 트라이덴틴 라틴 양식의 미사를 전 가톨릭 사제가 드릴 수 있도록 허용을 요청하였다.
비오10세회에 속하였던 사제들 일부와 수도회는 프랑스 극우전선에 대한 지원, 남녀 차별, 바티칸 공의회 부정 등으로 차츰 극우 성향을 띠게 된 비오10세회와 단절하고 로마 가톨릭으로 복귀를 선언하기도 하였다.
르페브르 대주교 사망후 비오10세회는 차츰 얀세니즘(Jansenism), 갈리카니즘(Gallicanism)의 성향을 띠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컬트로 비판받기도 하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