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비오 10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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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비오 10세회(Society of St. Pius X)[1]로마 가톨릭교회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반대하여 프랑스의 르페브르 대주교에 의해 1970년 스위스에서 창설된 기독교 단체이다. 영어 약칭은 SSPX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전례개혁과 교리에 부정적인 가톨릭 전통주의자 단체이다. 교리에 있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교리를 고수하고 있으며, 전례에 있어서도 라틴어로 진행하는 트리엔트 전례만을 사용한다.

1970년, 프랑스 출신의 대주교인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와 그의 주장을 지지하는 사제들에 의해 스위스에서 창립되었다.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는 회를 창립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회의 첫 신학교를 스위스 에콘에 설립했다. 이 단체는 교회당국으로부터 인준받았지만 1975년 인준이 취소되었다.

1988년 교황청의 허락 없이 회에 소속된 네 명의 사제를 주교로 성성했다.[2]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와 성성받은 네 명의 주교 그리고 주교 성성식에 참석한 안토니오 드 카스트로 마이어주교 6명이 파문당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들의 행동은 교회분리의 파문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파문과 거의 동시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 비오10세회를 포함해 가톨릭 전통주의자들과의 대화와 일치를 위해 에클레시아 데이라는 기구를 교황청 산하에 만들었다. 성 비오 10세회는 별도의 독립 교회를 주장하지 않으며, 또한 로마 가톨릭과의 분리를 주장하고 있지 않다. 카스트리온 요오스 추기경은 성 비오 10세회에 대해 엄밀한 의미에서의 열교는 아니라고 언급하기도 했다.[3]

성 비오 10세회에 속하였던 사제들 일부는 파문 직후 성 비오 10세회와 단절하고 교황청과의 일치를 선언하였으며 성 비오 10세회와 단절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성 베드로 사제 형제회FSSP가 창립되었다. 성 바오로 사제 형제회FSSP는 교황청의 인준을 받았다.

2005년 즉위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성비오10세회와의 화해 노력의 일환으로, 즉위 첫 해에 성비오10세회 총장 베르나르 필레 주교를 교황의 여름 별장 카스텔 간돌포에서 접견하였으며, 2007년에는 트리엔트 미사 거행을 자유화하였다. 2009년 1월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자의교서를 통해, 르페브르 대주교에 의해 성성된 4명의 주교에 대한 자동파문을 철회하였다. 하지만 성비오10세회는 아직 가톨릭교회 내에서 교회법적인 지위를 갖고 있지 못하다. 완전한 일치를 위해 대화가 계속되어 왔으며 특히 2009년 파문철회 이후 공식적으로 대화가 시작되었으나, 2012년 이후 교황청과 성 비오 10세회와의 대화는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한편 교황청과의 성 비오 10세회의 대화 과정에서 대화에 부정적인 리처드 윌리엄슨 주교와 소수 사제들이 회에서 제명되거나 탈퇴했다. 성 비오 10세회에서 이탈한 리처드 윌리엄슨 주교와 소수 사제들은 성 비오 10세회-마리아의 군단이라는 새로운 가톨릭 전통주의자 단체를 조직해 활동하고 있다.

성 비오10세회에는 전세계에 700여곳이 넘는 미사센터와 여섯 곳의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3명의 주교와 500명이 넘는 사제와 100명이 넘는 수사와 100명이 넘는 수녀가 소속되어 있다. 그 밖에도 회의 영적 지도를 받는 수도회들과 수녀회들이 있다. 한국에서는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1697-12번지 중추빌딩 5층에 성모무염시태성당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인 사제는 없으며 일본인 사제가 와서 한 달에 1~2차례 트리엔트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르페브르 대주교 사망후 비오10세회는 차츰 얀세니즘(Jansenism), 갈리카니즘(Gallicanism)의 성향을 띠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컬트로 비판받기도 하다.[4]

주석 및 참고자료[편집]

  1. 성 비오 10세회 홈페이지 http://www.fsspx.org
  2. 베르나르 필레 주교, 티씨에 드 말르레 주교, 알폰소 데 갈라레타 주교, 리처드 윌리엄슨 주교
  3. http://www.unavoce-ve.it/11-05-93.htm
  4. SSPX Over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