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대왕 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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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대왕신종
대한민국국보
BellofKingSeongdeok.jpg
지정번호 국보 제29호
(1962년 12월 20일 지정)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76
국립경주박물관
제작시기 신라시대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은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현존하는 한국 최대의 종이다. 설화에 따라 에밀레종으로 부르거나 봉덕사에 걸려 있던 종이라 하여 봉덕사종이라 부르기도 한다.

742년부터 신라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1], 손자 혜공왕771년에 완성했다. 봉덕사에 달았다가 조선시대인 1460년 수해로 봉덕사가 없어지자 영묘사로 옮겼으며, 다시 봉황대(鳳凰臺) 아래에 종각을 짓고 보존하였다

평가[편집]

현존하는 한국에서 가장 큰 종으로, 독특한 미술적 가치를 지닌 신라 극성기의 걸작품이다. 그리고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현존하는 한국 최대의 종이다. (최고(最古)의 종은 46년 앞서 만들어진 상원사 동종이다.)

타종과 보존[편집]

1992년 제야(除夜)에 서른세 번 종을 친 뒤 한동안 타종(打鐘)을 중단하였다가, 1996년 학술조사를 위해 시험으로 타종(打鐘)하였다. 그 뒤 2001년 10월 9일, 2002년 10월 3일, 2003년 10월 3일에 타종 행사를 열었으나, 이후로는 보존을 위해 타종(打鐘)을 중단하였다.

에밀레 종[편집]

성덕대왕신종에 '에밀레 종'이라는 별명이 붙은 시기는 일제 강점기이다. 일제 강점기 이전의 어떠한 문헌에서도 성덕대왕신종을 에밀레종이라고 한 자료는 없다. 따라서 계획적이고 의도를 알 수 있는 단서는 1925년 8월 5일조선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창작문예란에 렴근수라는 무명인의 이름으로 《어밀네 종》 동화가 올라있다. 얼마 후 친일 극작가 함세득이 많은 살을 붙인 희곡을 써서 현대극장에 올린다. 성덕대왕신종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단순한 동화처럼 씌었던 렴근수의 단편 동화 《어밀네 종》은 에밀레 종 이야기가 최초로 나타난 자료이며, ‘어밀네’를 처음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2]

그러나 이 어밀네 종이 성덕 대왕 신종을 가리키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조선에 선교사로 왔던 헐버트의 글을 보면

"...the legend of the casting of the great bell that hangs in the centre of Seoul....(중략)....The Koreans hear in the dull thud of the wooden beam against the bell a faroff resemblance to the word 'em-mi', which means 'Mother'. Hence the legend."[3]

라는 글이 있다. 이는 '에미'(엄마)라고 부르는 종이 서울 중심에 있다는 것인데, 이는 보신각 종으로 보인다.

한편, 에밀레종 전설을 연구한 황인덕 [4]에 의하면 중국 감숙성 무위시 대운사(大云寺)에 있는 종에도 비슷한 전설이 전해진다고 한다. 이 종은 당 또는 오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하며, 종이 울릴 때 "낭아娘呀, 낭娘"또는 "응당應當, 응당應當"하는 소리가 난다는 전설이 있다. 이 낭이라는 말이 어머니를 가리킨다는 설이다.[4]

주석[편집]

  1. 문화재지식정보센터.
  2. 문화재청 뉴스.
  3. H. B. Hulbert, "The Korean Legend on the 'Sprit of the Bell'", The Korean Review, 1901
  4. 에밀레종 전설의 근원과 전래, 황인덕, 어문연구 제56권 (2008년 4월) pp.289-322, 어문연구학회, 2008

바깥 고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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