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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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에 만들어진 독일 쇠뇌.

쇠뇌(crossbow)는 을 나무 막대 위에 올려 몇 가지 장치를 통해 일반 활보다 사정거리가 길고 관통력이 강하게 개량한 무기이다. 활보다 장전하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세 시대 동안 주요 원거리 공격 무기로 쓰였으나, 후에 개발된 화승총에 밀려났다. 그러나 현대에도 사냥용으로 쓰이며, 무기의 소음이 적어야 하는 특수부대의 무기로도 쓰인다.

쇠뇌를 ‘석궁’(石弓)이라고 칭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이나 덩이를 쏘는 서양의 탄궁이 쇠뇌와 구조가 유사하여 생긴 오류이다. 쇠뇌는 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1]

역사[편집]

크로스 보우의 기원은 오래전 고대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올라간다. 그 옛날 알렉산드리아의 헤론이 기록한 ‘가스트라페테스(gastraphetes)’가 그 기원이라고도 한다. 이 활에는 꼬리 부분에 둥근 대가 달려 있어서 끝을 지면 등의 딱딱한 곳에 댄 뒤 구부러진 대를 배에 대고 조정하는 사람의 무게로 현을 당기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가스트라페테스, 즉 ‘배에 대는 기구’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하지만 이것이 나중에 크로스 보우로 사용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이처럼 유럽의 크로스 보우의 기원은 여러 가지 설이 있다. 4세기경에는 사냥에 사용되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7세기가 흐른 1066년에 노르만족그레이트브리튼 섬을 침공했을 때 그들이 사용했다는 것은 사실이며 그 이후에 많은 기록이 남겨져 있다. 노르만족은 크로스 보우를 군사뿐 아니라 스포츠에도 사용했지만 전쟁이 끊이지 않고 계속된 그 시대에 크로스 보우의 위력은 절대적이었다.[2]

그러나 이 크로스 보우의 위력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잔혹한 무기로 여겨져 교황 인노첸시오 2세는 사용을 금지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신성로마제국콘라트 3세는 자신이 통치했던 시대(1138년~1152년)에 크로스 보우를 정식 무기로 채택했다. 크로스 보우를 소지한 병사가 실전에 임한 것은 제3차 십자군 원정 때인데 사자심왕 리처드 1세가 이끄는 군대는 무슬림 전사들을 쏘기 위해 이 무기를 소지했다. 리처드 1세가 죽고 난 후 크로스 보우는 롱 보우의 등장과 더불어 잉글랜드에서는 공성무기가 되었으며 다른 유럽의 나라에 적잖이 전파되었다.

무기로서의 크로스 보우의 수명은 15세기경까지였는데 그후에는 사냥과 스포츠에서 사용되었다. 16세기 이후 사냥과 스포츠에 사용된 크로스 보우는 그다지 클 필요가 없어 경량화되어 더욱 다루기 쉽게 변해갔다.[3]

종류[편집]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민승기 (2004년 9월 30일). 《조선의 무기와 갑옷》, 조선사회사 총서 22. 가람기획, 104쪽
  2. 이치카와 사다하루 (2000년 11월 15일). 《《무기와 방어구 / 서양편》》. 서울시: 도서출판 들녘, 215쪽쪽
  3. 같은 책, 216쪽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