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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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훈
센터
개인 정보
출생 1974년 6월 3일(1974-06-03) (39세)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207cm
선수 경력
클럽 경력
청주 SK 나이츠 (1998~2001)
서울 SK 나이츠 (2001~2002)
서울 삼성 썬더스 (2002~2007)
전주 KCC 이지스 (2007~2008)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2008~2011)
창원 LG 세이커스 (2011~2012)
부산 KT 소닉붐 (2012~2013)
청주 SK 나이츠 (1998~2001)
서울 SK 나이츠 (2001~2002)
서울 삼성 썬더스 (2002~2007)
전주 KCC 이지스 (2007~2008)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2008~2011)
창원 LG 세이커스 (2011~2012)
부산 KT 소닉붐 (2012~2013)

서장훈(徐章勳, 1974년 6월 3일 ~ )은 서울특별시 출신의 대한민국의 전 농구 선수이다.[1][2] 키 207cm, 몸무게 115kg로 하승진이 나오기 전까지 대한민국 농구 최장신 선수였다. 종교는 개신교이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1998년SK 나이츠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고 서울 삼성 썬더스를 거쳐 2007년 6월 전주 KCC 이지스와 계약했으나 허재 감독과의 불화설 등으로 인해 2008년 12월 19일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로 이적, 그리고 2011년 5월 창원 LG 세이커스로 이적, 그리고 2012년 5월 부산 KT 소닉붐으로 이적했다. 별명은 국보급 센터[3]이다.

에피소드[편집]

  • 초등학교 시절에는 야구부 소속으로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고 한다. 이 후 선린중학교 야구부에 진학했으나 키가 너무 자란 나머지 야구 대신 농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때 같이 야구를 한 동기생이 한화 이글스 야구단의 이도형, 이영우이다.
  • 농구를 처음 시작한 중학교 시절만 해도 동기생 윤제한에 밀린 185cm(농구화를 신었을 때 기준)의 백업 센터였으나,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키가 15cm나 자라면서 뒤늦게 주전으로 발탁되었다고 한다. [4]
  • 3점슛 성공률이 높은 센터로도 유명한데, 처음 3점슛을 시도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고 한다. 그가 후배 현주엽에게 골밑을 맡기고 3점슛을 쏘는 것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은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지만, 휘문고등학교 코치였던 김원호는 "내가 가르친 제자 중에 장훈이의 슛터치가 가장 뛰어나다"라고 옹호했다고 한다.[4]
  • 본인이 말하기를 원핸드 덩크슛보다 3점슛을 성공시켰을 때가 더 통쾌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4]
  • 농구대잔치 시절 득점, 리바운드, 블록으로 트리플 더블을 작성한 적이 있다. 하지만 언론이 트리플더블의 기준을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가 두자릿수인 것"으로 정의한 탓에 그의 트리플 더블 기록은 비공식기록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 그가 삼성의 재계약을 뿌리치고 KCC로 이적한 것은 대학 2년 선배인 이상민과 한솥밥을 먹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상민은 KCC의 보호대상 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어 그의 보상 선수로 삼성에 가게 되었다.
  • 등번호는 KCC 시절을 제외하고 11번을 달았다. KCC에 있을 당시에는 11번을 달았던 이상민을 예의 차원으로 7번을 달고 뛰었다.

대한민국 농구 역사상 최초로 10,000득점 달성[편집]

2008년 11월 서장훈은 대한민국 농구 역사상 대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그는 2008년 11월 19일 전주 실내체육관에서 창원 LG 세이커스전에서 드디어 대한민국 농구 선수로서 최초로 개인 통산 10,000득점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룩한다.[6]이에 진풍경이 벌어졌는데 서장훈이 몸담고 있는 KCC 선수들은 물론 상대팀인 창원 LG 세이커스의 선수들마저 서장훈의 이 대기록을 열렬히 축하해줬다. 특히 서장훈의 상대편 선수이자 휘문고등학교 후배인 현주엽선수는 서장훈 선수의 대기록을 도와주기 위해 수비를 하지 않고 2점을 공짜로 내줬다고 한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농구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순간이었다. 이에 대한농구협회(KBL)에서는 서장훈 선수에게 순금40돈(24K)으로 된 시가 500만원 상당의 황금 농구공을 선물로 줬고 KCC 구단 측에서도 시가 600만 원에 달하는 크리스탈 감사패를 증정하였다. 또한 이 경기 내내 전광판에서는 서장훈 선수의 농구 인생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가 방송되었다.

서장훈은 꾸준한 골과 기복없는 플레이를 시종일관 유지한 점, 그리고 센터라는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 덩크슛과 3점슛, 레이업 슛등 슛이란 슛은 모두 가리지 않고 시도한 덕택에 한국 농구 선수로서는 유일하게 10,000점을 달성했는데 이는 2위인 문경은의 8,865점, 3위인 추승균의 8,033점과도 큰 격차로 앞선 기록이었다.

서장훈이 10,000득점을 달성할 때 사용되었던 농구공은 영구소장된다.

2013년 3월19일 경기를 끝으로 은퇴한 서장훈의 최종 기록은 통산 688경기, 1만3231점, 5235 리바운드다. 득점, 리바운드는 단연 프로농구 통산 1위 기록이다. 득점에서는 1998-1999 시즌에 데뷔해 15시즌동안 평균 19.2점을 넣어 이뤄낸 것이었다. 2위인 추승균(은퇴·KCC 코치)의 1만19점과 무려 3179점이나 차이가 나는데다 김주성(동부)이 8076점을 기록중이어서 당분간 이 기록은 깨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리바운드 기록은 더 독보적이다. 그 뒤를 잇는 김주성이 3363개를 기록하고 있지만 어느덧 30대 중반이 된 만큼 따라잡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서장훈은 2만2834분동안 뛰어 경기당 평균 33분11초를 뛰었다. 특히 2001-2002 시즌에는 54경기에 모두 출장해 2120분(평균 39분20초)을 뛰었다.

학력[편집]

약력[편집]

주석[편집]

  1. 네이버 인물 정보
  2. 네이트 인물 정보
  3. 조선닷컴 포커스
  4. 전창. "[스타탐구­|프로농구 부동의 MVP 서장훈]", 《신동아》, 2000년 5월 1일 작성. 2008년 4월 9일 확인.
  5. '파경' 오정연, 서장훈과 이혼소송에 "죄송합니다" 공식 입장
  6. 네이버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