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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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 시대의 도성에 관한 것입니다. 한성에 대해서는 한성 (동음이의) 글을 참조하십시오.
서울성곽(서울城郭)
대한민국사적
지정번호 사적 10호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누상동 산 1-3번지 외
제작시기 조선 초기
1963년 1월 21일 지정

서울 성곽(-城郭)은 조선 시대 서울을 둘러쌌던 도성(都城)이며, 조선 시대에는 한성(漢城)으로 불렸다.

목차

[편집] 축성

1395년(태조 4) 서울을 방위하기 위한 도성을 쌓으려고 도성축조도감(都城築造都監)을 설치하고 정도전에게 명하여 성터의 조사 측정을 실시하였다.

1396년(태조 5) 음력 1월 9일 기공식을 올리고 춘추 2회에 걸쳐 전국에서 징발한 장정 19만 7천 4백여 명을 동원, 전후 98일 만에 북악산·낙산·남산·인왕산을 따라 성의 축조를 완료하였다. 성의 길이는 9천 9백 70보(步 : 1보는 6자)이며 높이는 40자 2치로서 성을 97구(區)로 나누어 구마다 천자문에 따른 번호를 하늘 천(天) 자부터 조상할 조(弔) 자까지 붙였다.

성이 낙성된 후에는 배수지(排水地)로 5칸 수문(五間水門)·2칸 수문 등을 만드는 한편 성곽의 관문(關門)으로 숙청문(肅淸門 : 북대문)·흥인문(興仁門 : 동대문)·돈의문(敦義門 : 서대문)·숭례문(崇禮文 : 남대문)의 4대문과 홍화문(弘化門 : 동소문)·광희문(光熙門 : 수구문)·창의문(彰義門)·소덕문(昭德門 : 서소문) 4소문을 합해 8문을 완성하였다.

[편집] 개수

1422년(세종 4년)에 흙으로 쌓은 곳을 모두 돌로 다시 쌓는 등 봉족(奉足)과 잡색(雜色) 32만 2천 4백 명을 동원하여 38일 만에 대대적으로 성곽을 고쳤다. 1451년(문종 1년)에도 성을 고쳤지만 임진왜란 때 일부가 부서졌다. 1616년(광해군 8년)에 개수하였으나 병자호란 때 다시 부서졌다. 1704년(숙종 30년) 이조판서 이유(李儒)의 주장으로 5군문(五軍門)의 장정을 동원하여 1711년(숙종 37)까지 수축하였으며, 1743년(영조 19년)에 다시 고쳤다. 그밖에도 효종·현종·영조·순조 시대에 부분적인 개수를 행했으나 현재 남아 있는 서울의 성곽은 대체로 태조·세조·숙종 때의 것이다.

한편 일제 강점기의 도시계획과 한국 전쟁으로 성문과 성벽이 많이 부서졌다. 지금은 삼청동·성북동·장충동 일대에 성벽이 남아 있고, 흥인지문·숭례문·숙정문·홍화문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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