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 드 마르스의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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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코르틀리에 클럽에서 국민위병대에게 발포를 명령한 라파예트

샹 드 마르스의 학살(영어: Champ de Mars Massacre, 프랑스어: Fusillade du Champ - de - Mars)은 1791년 7월 17일 파리의 연병장에 평화시위를 위해 모인 5만 군중에게 해산을 명령한 국민위병대가 발포한 사건이다. 그때까지 프랑스 혁명을 지도하는 입장이었던 사령관 라파예트의 인기가 급락한 사건이기도 하며, 또한 파리 시장 장 실뱅 바이이가 처형된 이유가 되었다.

개요[편집]

루이 16세 일가가 도주를 시도한 바렌느 사건은 입헌 왕정을 궁지에 빠뜨렸다. 앙투안 바르나브는 국왕이 납치피해자였다고 조작하려 했지만, 국왕을 재판해야 한다는 비판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고, 공화국 수립 요구는 높아질 뿐이었다. 이 혁명 운동은 7월 14일 두 번째 연맹 축제를 향해 점차 열기를 더해 갔다.

7월 15일, 자코뱅 클럽에서 루이 16세의 폐위 청원 운동이 결정되었고, 입헌군주제를 지지하는 다수파는 이에 분노하여 자코뱅 클럽에서 탈퇴하여, 다음날 푀양파로 분리되었다. 텅빈 협회에 의원 자격을 가진 사람은 5 ~ 6명 밖에 없었지만, 청원문이 채택되어 샹 드 마르스 연병장에 보내져 주권자인 대중에게 서명을 받으려 했다. 그 내용이 직접 공화국 수립을 요구한 것은 아니지만 (국왕 대신) 새로운 행정 권력과 (현재 의원 대신) 새 헌법 제정 회의의 소집을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오를레앙파의 새로운 국왕 교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코르들리에 클럽은 그 애매함을 비난했다. 그러나 지역 민중이 빠짐없이 모여 생 탄트와느 문에서 연병장까지 행진을 하며, 평화 시위를 벌였다.

7월 17일, 파리는 아침부터 괴이한 긴장 상태에 놓였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