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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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山神)은 산령대신(山靈大神)이라고도 하며, 무속의 신령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신이다. 산지가 많은 한반도에서 산신은 한민족의 중요한 신앙의 대상이었고, 상고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국가는 큰 산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그 산에 제사(산신제)를 거행했다. 산사의 「산신도」에서 주로 호랑이와 동자를 데리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1]

유래[편집]

조선시대에는 〈삼신(samsin)〉 또는 〈삼신 할머니(samsinhalmŏni)〉라고 한다. 〈삼신(三神)〉이라고 쓰기도 하는데, 〈산신(産神)〉 또는 태를 의미하는 〈삼(sam)〉이라고도 생각된다. 백지로 신위를 만들어서 벽에 붙이기도 하는데, 막연히 산모와 갓난아이를 보호하는 신으로 생각된다. 삼신에게는 흰밥과 고기가 들지 않는 미역국을 바친다. 한국무속에서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 산신신앙은 수렵문화 단계에 이미 출현했다. 이때 산신은 산의 일체를 관장하는 자연의 주인(master of nature)이다. 신체(神體)는 호랑이였는데, 동예의 호랑이신 숭배는 이러한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단군신화》에서 단군이 마지막에 아사달 산신으로 좌정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고조선 시대에도 산신신앙이 유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산신신앙은 신라에서 특히 성행했고, 신라 국가제사의대상 대부분이 산신이었다. 이는 산신이 국가를 수호한다는 믿음에 기초한 것이었고, 그래서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산신이 나타나 이를 경고하기도 했다.

신라 49대 헌강왕이 포석정이나 북악에 행차했을 때 3산 5악의 신들이 나타나 춤을 추면서 다가올 위기를 경고했다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반영한다. 고려시대에는 산신들에 대해 수시로 봉작을 내려 산신의 가호를 빌기도 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중요 산악들을 국가의 제사대상으로 삼아 정기적으로 제사했다.

한편 불교가 수용되면서 전통신앙과 불교의 혼합이 이루어지고, 이에 따라 산신은 사찰의 수호신으로 자리 잡는다. 그래서 사찰마다 산신각을 지어 산신을 모시게 되는데, 그 시기는 대략 조선 후기로 짐작된다. [1]

변화[편집]

한민족의 시조 이야기인 《단군신화》의 주인공은 곰이었다. 그러나 《단군신화》 이후로 곰에 대한 이야기는 자취를 감추다시피 되지만 호랑이는 한반도 산악의 생태적 혹은 상징적동물로서 한 민족의 삶에 가장 깊은 영향을 준 동물이 되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예조에서는 “항상 10월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밤낮으로 술 마시고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 이를 무천(舞天)이라 한다. 또 호랑이를 신으로 여겨 제사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호랑이를 “산군(山君)이라 하여 무당이 진산에서 도당제를 올렸다”고 한다. 오늘날의 산신도에서 흔히 볼 수있듯이 호랑이를 산신과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호랑이를 지칭하는 명칭도 산신(山神), 산령(山靈), 산군(山君), 산신할매, 산중호걸 등 산과 관련시켜 부르고 있어 산의 주인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호랑이의 영험성은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나타나고 있다. 산악지대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지닌 호랑이라면 능히 벽사를 할 수 있다고 믿어졌다. 이 때문에 시집갈 때 신부의 가마 위에 호피를 씌워 재액을 방지했고, 신랑은 호랑이 발톱을 허리에 찼다. 호랑이의 위력이 잡귀나 액을 물리쳐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관리들은 호피를 가지고 있으면 잡귀가 범접하지 못하기 때문에 벼슬자리를 보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벽사의 염원은 호랑이 삼재부적에서도 잘 나타난다. 호랑이가 삼재부에 나타나는 것은 맹수로서의 용맹성이 부적 속에 들어가서 삼재를 막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의 반영이다. 즉 한반도 산악을 지배하는 호랑이의 위력으로 재액을 족히 물리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렇듯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과 그 강력한 힘에 대한 외경심은 호랑이를 마침내 신성한 존재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산악 지대에서는 산신 또는 산신을 보좌하는 영물로 인식되어 마을의 수호신으로서 신앙의 대상이 된 것이다.

호랑이 14마리가 그려져 있는 울산 대곡리 바위그림은 고대부터 한반도 전역에 호랑이의 개체 수가 많았음을 말해준다. 『증헌문헌비고』, 『오주연문장전산고』,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호환(虎患)이나 호랑이 사냥 등의 기록이 많이 나타난다.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범에게 물려 죽은 영혼을 위로하고 호환을 방지하기 위하여 범굿이나 호탈굿을 하였다. 이는 그만큼 호랑이가 많았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아직도 산악을 숭배하고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은 전국 곳곳에 남아 있다. 산신의 신체(神體)는 주로 호랑이 또는 신선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최남선은 중국의 용, 인도의 코끼리, 이집트의 사자, 로마의 이리처럼 조선에서 신성한 동물의 으뜸은 호랑이라고 하였다. 그는 “호랑이는 조선 최대의 동물이며 조선인의 생활에 끼친 영향이 크니 그중 신화, 전설, 동화를 통하여 나타난 호랑이 이야기들은 설화세계 최고이며 호랑이 및 호랑이 설화에 대한 민족적 숭앙 또는 기호는 어느새인지 다른 모든 이야기를 밀어내 버렸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조선을 호담국(虎談國)이라 할 만큼 범 이야기와 특수한 인연을 가진 곳이 되었고 이 때문에 세계로 향하여 설화의 조선색을 강렬히 나타내 보인 것이 다행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1]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종교학대사전》, 산신, 한국사전연구사(1998년)

참고 자료[편집]

  • 《한국민속신앙사전》, 마을신앙 편, 국립민속박물관(2009년판)
  • 「한국민간신앙과 문학연구」, 불교의례의 토착화와 민중의 문학, 오출세 저, 동국대학교출판부(2002년, 15~19p, 186~189p)
  • 「나는 산으로 간다」, 산신은 주먹 부처는 법, 조용헌 저, 푸른숲(1999년, 67~79P, 231~23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