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다카시 (야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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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다카시
斎藤 隆

Takashi Saito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No.44
Saito takashi.jpg

사이토 다카시
(2013년 5월 12일, QVC 마린필드)

기본 정보
국적 일본 일본
생년월일 1970년 2월 14일(1970-02-14) (45세)
출신지 미야기 현 센다이 시
신장 188 cm
체중 90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좌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1991년
드래프트 순위 1순위
첫 출장 NPB / 1992년 4월 7일
MLB / 2006년 4월 9일
마지막 경기 MLB / 2012년
연봉 6,000만 엔(2015년)
경력


사이토 다카시
일본어식 한자 표기: 斎藤 隆
가나 표기: さいとう たかし
국립국어원 표준 표기: 사이토 다카시
통용 표기: 사이토우 타카시
로마자: Takashi Saito

사이토 다카시(일본어: 斎藤 隆 (さいとう たかし)[1], 1970년 2월 14일 ~ )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이며, 현재 퍼시픽 리그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소속 선수(투수)이다.

메이저 리그 시절의 별명은 ‘Sammy’(새미).

인물[편집]

프로 입단 전[편집]

도호쿠 고등학교 시절에는 2년 선배이자 훗날 대학·프로에서 같은 팀 동료가 되는 사사키 가즈히로한신 타이거스에서 활약한 가사이 미노루가 있었다. 3학년 때에는 1루수로서 제69회 전국 고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다. 고교 졸업 후 도호쿠 복지대학에 진학하여 대학 진학 후에도 야수로서 활약하고 있었는데 2학년 때인 연습 중에 심심풀이로 투수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을 감독이 주목한 것이 계기가 되면서 그대로 본격적으로 투수로 전향했다. 미일 야구 대회의 일본 대표팀 선발에 뽑힐 정도의 선수로 성장했다.

1991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주니치 드래곤스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았고 추첨 결과 다이요가 지명권을 획득, 추정 계약금 1억 엔과 연봉 900만 엔으로 입단했다. 사이토의 팀 동기는 미우라 다이스케, 나가이케 야스오 등이 있다.

다이요·요코하마 시절[편집]

입단 초기 ~ 1998년[편집]

신인 시절이던 1992년에 즉시 전력감으로 기대를 받아 프로 첫 등판을 이뤘지만 단 한 번도 승리 투수가 되지 못한 채 시즌을 마쳤다. 이듬해인 1993년에 개막 로테이션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곧바로 선발 로테이션에 정착해서 규정 투구 이닝을 채웠다. 신인왕 유자격자 중 최다인 8승을 올렸지만 같은 신인왕 후보에 올랐던 이토 도모히토(야쿠르트 스왈로스)가 차지하면서 신인왕을 놓쳤다.

1994년에는 개막 이후부터 91과 2/3이닝 연속 무피홈런을 기록하는 등 좋은 성적을 남겼고 그해 올스타전에 첫 출전했다. 하지만 실력은 있으면서도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안타를 맞는 등 패전 수가 앞섰으며 로테이션에 들어간 1993년부터 1995년까지 3년 간은 좀처럼 두 자릿수 승리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1996년에는 선발 투수로서 독립시키려고 시도한 신임 감독 오야 아키히코의 배려에 의해 11차례 완투를 했고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리(10승)를 기록했다. 그러나 패전 수도 시즌 승수와 같은 10패를 기록했다. 게다가 206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면서 프로 데뷔 후 첫 타이틀인 최다 탈삼진 타이틀을 획득했고 그해 4월에는 자신의 첫 월간 MVP도 수상했다. 그런 한편으로 31개의 피홈런을 기록했는데 그 중에서도 요미우리 자이언츠마쓰이 히데키에게서 7개의 홈런을 허용했다.

1997년, 춘계 스프링 캠프 도중에 오른쪽 팔꿈치에 유리 연골이 발견돼 제거 수술을 받았다. 시즌 종반에는 2군에서의 등판 복귀가 이뤄졌지만 부상과 팀이 대약진을 하고 있었던 점도 있어 단 한 번도 1군 등판을 하지 못한 채 시즌을 마쳤다. 이듬해 1998년 4월 5일에 중간 계투로서 복귀 등판했고 4월 29일에는 583일 만에 승리 투수가 됐다. 중반 이후 선발로 나와 복귀를 이뤘고 그해 13승 5패 1세이브의 좋은 성적으로 38년 만의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세이부 라이온스와 맞대결을 펼친 일본 시리즈에서는 역대 9번째인 첫 등판·첫 완봉을 동시에 거두는 등의 활약으로 우수 선수로 선정됐고 센트럴 리그컴백상을 수상했다.

1999년 ~ 2005년[편집]

1999년에는 개인 최고 성적인 14승을 기록했고 패전 수도 3패에 불과했으며 8할 2푼 4리라는 높은 승률을 기록했는데도 불구하고 3년 전을 웃도는 32개의 피홈런을 기록했다. 그해 시즌 종료 후 팀내 부동의 구원 에이스 투수였던 사사키 가즈히로가 자유 계약 선수로 미국 메이저 리그 팀인 시애틀 매리너스에 이적한 이후 팀에 확고한 마무리 투수가 없었기 때문에 2001년에 부임한 모리 마사아키 신임 감독은 ‘나는 너와 같이간다’라고 말하면서 애당초 마무리 투수 전향에 난색을 드러냈던 사이토를 마무리 투수로 전향시켰다. 모리 감독의 마무리 투수 기용 전략은 성공했고 성적도 7승 1패 27세이브, 평균 자책점 1.67이라는 좋은 성적을 남겼다. 사이토 자신은 이 때의 경험이 훗날 선발, 그리고 메이저 리그에서의 생활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2002년에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마무리 투수로서 활약하는 등 1승 2패 20세이브를 기록했고 시즌 종료 후에는 FA 자격을 얻었다. 메이저 리그로의 이적을 모색했지만 결국 요코하마와 3년 총액에 7억 3,000만 엔의 재계약을 맺고 그대로 잔류했다. 그해 시즌 종료 후 감독으로 취임한 야마시타 다이스케의 의향에 따라 이듬해 2003년부터는 선발로 복귀했지만 뚜렷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거듭되는 부진 등도 있어 본래의 투구 기능이 상실되자, 2005년까지 3년 간 도합 11승에 그쳤다.

2005년 시즌 종료 후 사이토는 자신의 가족들에게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메이저 리그에서 뛰고 싶다”며 설득했고 재차 메이저 리그 도전을 목표로 해서 자유 계약 선수가 됐고 미국인 대리인과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36세가 되는 고령인 점이나 최근 수 년 간의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사이토에게 관심을 나타내는 메이저 리그 구단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절[편집]

2006년[편집]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절의 사이토(2007년)

2월 7일에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맺고 스프링 트레이닝에 초대 선수로서 참가했다. 7경기에 등판하여 평균 자책점 4.09, WHIP 1.27의 성적으로 마감하고 3월 23일에 트리플 A팀인 라스베가스로 이동하라는 통보를 받고 팀의 개막전은 관중석에서 관전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규 시즌 개막 직후에 마무리 투수를 맡고 있던 에릭 가니에가 오른쪽 팔꿈치 통증으로 부상자 명단에 들어갔기 때문에 가니에와의 교체로 4월 7일에 메이저 리그에 승격됐다. 같은 달 9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경기에서 메이저 리그 진출 이후 첫 등판을 이뤘고 18일의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 첫 승리를 장식하는 등 팀 동료인 샌디 알로마 주니어로부터 ‘Welcome to the Big League!’(웰컴 투 더 빅 리그)라는 축하를 받았다고 한다.

당초에는 중간 계투로서 기용됐지만 등판 8경기째까지 무실점, 4월에는 12경기에 등판하여 13이닝을 7피안타 1실점 15탈삼진의 좋은 성적을 남겼다. 5월에는 가니에의 대역을 맡고 있었던 대니스 바에즈를 대신해서 마무리 투수로 지명돼 5월 15일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경기에서 메이저 리그 진출 이후 첫 세이브를 올렸다. 6월 2일에 가니에가 복귀하면서 한동안 중간 계투로 돌아왔지만 가니에의 오른쪽 팔꿈치 통증 재발에 의해서 또다시 마무리 투수로 지명됐고 7월 5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경기까지 15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9월 18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에서는 플레이오프 진출을 향해서 팀으로서는 절대로 패하면 안되는 경기였는데 9회초에 1점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랐지만 제구력 난조로 안타를 맞는 등 점수차이를 4점으로 벌려 놓았다. 벤치에 돌아와서는 고개를 떨궈 아래를 계속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팀 동료로부터 ‘시선을 위로 향하라’, ‘네가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우리가 점수를 만들어 줄테니까 지켜 보고 있어달라’며 격려를 받았다고 한다. 이어지는 9회말에 분발한 다저스 타선이 반격에 나서며 4번 타자인 제프 켄트를 필두로 4자 연속으로 솔로 홈런을 치는 등 동점을 따라 잡았다.[2] 이후 10회초에 다시 1점을 내줬지만 사이토를 가장 격려해줬다는 노마 가르시아파라가 역전 끝내기 2점 홈런을 좌익수 방향으로 때려내며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2] ‘노마와는 운명적인 것을 느낀다’라고 울면서 가르시아파라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3] 가르시아파라는 같은 달 24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경기에서도 끝내기 만루 홈런을 날리면서 사이토에 승리를 안겼다. 같은 달 30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구단 신인 기록에 해당되는 24세이브째를 올렸다.

그 해에는 팀내 최다인 72경기에 등판하여 평균 자책점 2.07, 구원 투수 가운데 리그 1위인 WHIP 0.91, 같이 양대 리그 최다가 되는 107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는 등 좋은 성적을 올렸고 사이 영 상의 선출 투표에서 8위로 랭크됐다.[4] 훗날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계약하는 구와타 마스미는 이러한 사이토의 성공이 자신에게 메이저 리그 도전을 결단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포스트 시즌으로는 뉴욕 메츠와의 디비전 시리즈에서 2경기에 등판하여 2와 2/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리드한 상황에서의 등판 기회는 없어서 팀은 3연패를 당했다. 시즌 오프에는 1년 간 100만 달러(약 1억 1500만 엔), 성과급 지급 30만 달러로 계약을 갱신했다.

2007년[편집]

그해에는 마무리 투수로서 기용돼 시즌 개막 이후부터 순조롭게 세이브를 올렸다. 6월에는 패배가 계속되고 있던 팀의 침체된 분위기를 지우기 위해 경기 후 로스앤젤레스의 가게에서 사무라이 의상을 구입, 다음 경기를 앞두고 사무라이의 모습으로 로커룸을 돌아다녀 팀 동료들을 웃겼다(이튿날의 경기 전에도 사무라이 모습으로 등장했는데 평상시에는 거의 웃지않는 것으로 유명한 제프 켄트도 호평했다고 한다). 또한 본인의 블로그에 의하면 대전 상대인 뉴욕 메츠의 선수에게도 큰 호평을 받아 팀의 침체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게 만들었다고 한다.

다저스 투수진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누비는 사이토(맨 오른쪽, 2008년)

26일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경기에서 일본인 메이저 리그 최고 구속이 되는 99mph(약 159km/h)를 기록했다.[5] 이것은 정규 시즌 중에 일본인 선수가 측정한 구속으로서는 이라부 히데키, 이가라시 료타, 야마구치 가즈오를 제치고 역대 최고 속도가 됐다(2010년에 요시노리가 161km/h를 기록하여 경신). 이 경기에서는 98mph(약 158km/h)도 측정했는데 사이토 본인에 의하면 일본에서의 자기 최고 속도가 153km/h였기 때문에 ‘올해에 99마일이라니 어찌된 건가’라고 본인도 반신반의했지만 구장 내의 표시와 TV 중계에서의 표시는 모두 같은 숫자를 보여주고 있었다.[5] 더욱이 이 날에 기록한 세이브에 의해 메이저 리그 진출 이래 48차례의 세이브 기회에서 45차례의 성공을 거둬 첫 세이브 기회부터의 구원 성공률로 44/48인 가니에를 누르고 메이저 리그 신기록을 수립했다. 전반기에서만 23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변함없는 안정감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아 7월 11일에 열린 올스타전에 감독 추천으로 첫 출전했다. 최고 속도 97mph(약 156km/h)을 측정해 1이닝을 삼자범퇴로 막았다.

8월에도 뛰어난 안정감을 보여주면서 월간 MVP 후보에도 올랐지만 일본인 투수로서는 최초로 DHL Delivery Man of the Year Award를 수상했다. 시즌에서도 점입가경이 된 9월 19일에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1점 리드한 9회말에 등판했다. 치열한 와일드카드 경쟁 속에서 맞이한 이 일전에서 역전 끝내기 2점 홈런을 맞고 시즌 첫 패배를 당했다. 결과적으로 콜로라도 로키스는 이 승리를 계기로 무서운 기세를 펼쳤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제압하여 와일드카드를 획득했다. 다저스는 컨디션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와일드카드 경쟁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사이토는 이해 내셔널 리그 3위인 39세이브, 내셔널 리그 구원 투수 중에서 가장 낮은 평균 자책점 1.40과 WHIP 0.72를 기록(메이저 리그 전체에서는 J. J. 퍼츠의 평균 자책점 1.38, WHIP 0.70에 이은 2위)하는 등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오프에는 연봉 200만 달러(약 2억 1600만 엔)+성과급 지급 20만 달러로 다저스와 재계약을 맺었고 또한 매년 오프에 발표되는 미국의 스포츠 통계 전문 회사인 ‘일라이어스 스포츠 뷰로’에 의한 현역 메이저 리그 랭킹에서 내셔널 리그의 구원 투수 부문 1위라는 평가를 받았다(일본인 메이저 리거로서는 최초인 랭크 1위). 이 랭킹은 FA 보상의 공식 자료로 인정받고 있어서 투수의 경우에는 등판 횟수, 평균 자책점 등 모든 성적에서 독자적인 계산식으로 득점화하고 있다. 보상에 관해서는 과거 2년 분의 성적이 대상으로 삼고 있다. 2년 간 통산 성적에서 63세이브는 리그 7번째(최다 기록은 트레버 호프먼에 의한 88세이브)였지만 2년 간 통산으로 각각 리그 1위인 평균 자책점 1.77, WHIP 0.82, 피타율 1할 6푼 6리, 탈삼진률 11.67으로 평가받았다.

2008년[편집]

작년과 마찬가지로 마무리 투수로서 기용됐고 전반기에는 평균 자책점 2.18, WHIP 1.06의 성적을 남기며 호투를 이어갔지만 7월 12일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경기에서 오른쪽 팔꿈치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입어 부상자 명단에 들어갔다. 9월 15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경기에서 복귀했지만 복귀 후에는 평균 자책점 4.76, WHIP 1.92라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남겼고 포스트 시즌인 시카고 컵스와의 디비전 시리즈에서도 3연타를 맞고 강판됐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최종 명단에서 제외됐다.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편집]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의 사이토(2009년)

2009년 1월 10일에 보스턴 레드삭스와 1년 150만 달러+성과급 지급 600만 달러로 계약을 맺었다(2년째는 구단 옵션).[6][7][8] 보스턴 레드삭스에서는 매니 델카멘, 오카지마 히데키 등과 함께 마무리 투수로서 기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돼[6] 계약에서는 ‘8회와 조너선 파펠본의 휴양일 마무리’라고 전해졌다고 보도됐다.[9] 6월 11일에 미일 통산 100승째를 올리면서 미일 통산 100승과 100세이브를 동시에 달성했다. 이튿날에도 승리 투수가 되면서 일본인 메이저 리거로서는 최초로 2경기(2일) 연속 승리 투수가 됐다.[10]

전반기는 평균 자책점 3.52, WHIP 1.37로 본래의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최종적으로 탈삼진률, 볼넷 허용률, WHIP 모두 본인으로서는 최악의 성적으로 끝났지만 후반기에는 평균 자책점 1.08, WHIP 0.92로 호투하면서 메이저 리그 진출 이래 4년 연속으로 평균 자책점 2.50 미만을 기록했다. 다음 시즌의 계약 옵션은 구단측이 갖고 있었지만 2010년 연봉이 되는 ‘2009년의 연봉+인센티브’가 600만 달러로, 마무리 투수로서는 이례적으로 높은 액수가 돼버렸기 때문에 옵션을 행사하지 않고 웨이버 공시됐다. 12월 4일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1년 계약을 맺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시절[편집]

2010년에는 마무리 투수인 빌리 와그너에 이은 마무리 투수로서 기용돼 내셔널 리그 9위인 FIP 2.43, 내셔널 리그 6위인 11.50의 탈삼진률을 기록하는 등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기여했다.[11] 이 해에는 특히 직구가 효과를 발휘해서 직구의 스탠딩 삼진률은 양대 리그 1위인 33.5%를 기록했다.[12] 5월 30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경기에서 첫 승리를 거뒀고 동시에 일본인 투수로서는 최초로 40대에서의 승리를 달성했다. 8월 8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는 3점 리드한 9회 1사에서 2루타를 맞은 것 외에는 3자 헛스윙 삼진으로 막아내 일본인 투수로서는 최초로 40대에서의 세이브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뤘다. 7월 31일에는 일본인 투수로서는 하세가와 시게토시 이래 5년 연속 40경기 등판을 달성했다. 8월 29일에는 브라이언 맥캔의 메이저 리그 최초의 비디오 판정에 의한 끝내기 홈런으로 시즌 2승째를 기록했다.

그 후에도 9월 16일까지 6경기 연속 무안타와 무실점 호투를 이어갔지만 9월 17일 뉴욕 메츠와의 경기에서 8회에 2자 연속 삼진을 빼앗은 후 3번째 타자에게 2구째를 던진 후 오른쪽 어깨 통증을 호소하며 강판됐다.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놓고 경쟁이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약이나 주사를 맞고도 돌아오고 싶다”고 말했다.[13] 검사 결과 오른쪽 어깨 건염이라는 진단이 내려졌지만 부상자 명단에는 들어가지 않았고 10월 2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경기에서 5점 뒤진 9회에 등판하여 복귀했다. 그러나 타자 6명을 상대로 피안타 2개와 볼넷 3개를 기록했고 1사 1, 2루 상황에서 적시 2루타를 허용한 것 외에도 만루 상황에서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하는 등 원 아웃 상태에서 강판돼 정규 시즌을 마쳤다.

포스트 시즌에서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디비전 시리즈의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의 복귀를 목표로 플로리다에서 치르는 교육 리그에서의 조정을 명령받고 있었지만 디비전 시리즈 2차전에서 왼쪽 옆구리를 다친 빌리 와그너를 대신해 3차전에서 엔트리에 포함됐다. 그러나 등판없이 팀은 4차전에서 패했다.

밀워키 브루어스 시절[편집]

2011년 1월 5일에 밀워키 브루어스와 1년 계약을 맺었다.[14] 4월 4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경기 도중 왼쪽 허벅지 통증으로 부상자 명단에 들어갔으며 28일에는 트리플 A팀인 내슈빌 사운즈에서 조정 등판했지만 왼쪽 옆구리 통증으로 강판됐다. 6월 15일에 다시 트리플 A팀에서 조정 등판했지만 그 후 또다시 왼쪽 옆구리 통증을 일으켰다. 7월 2일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메이저 리그에 복귀했고 7월 20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경기에서는 메이저 리그 통산 300경기 등판을 달성했다. 8월 14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경기에서 최고 속도 94mph(약 151km/h)를 기록하는 투구로 시즌 3승째를 올렸다. 8월 16일에는 동점을 맞이한 9회초에 등판해서 삼자범퇴로 막아냈고 9회말에 팀이 끝내기 승리를 거둔 것에 의해서 시즌 4승째를 올렸다(2014년 현재, 41세 183일에서의 승리는 일본인 메이저 리거 최고령 승리 기록으로 남아 있다). 후반기에는 25경기에 등판하여 3승 1패 8홀드, 평균 자책점 1.66, WHIP 1.06으로 호투를 계속하여 팀의 29년 만에 지구 우승에 기여했고 마쓰이 히데키를 제치고 일본인 메이저 리거 사상 최다인 5번째의 포스트 시즌 출전을 이뤘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디비전 시리즈 2차전에서 6회에 등판해 최고 속도 93mph(약 150km/h)을 기록하는 투구로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 포스트 시즌 첫 승리를 기록했고[15] 팀의 29년 만에 디비전 시리즈 돌파에 기여했다.[16]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앨버트 푸홀스를 2타수 무안타로 막아내 ‘푸홀스가 나오면 등판’이라는 지시도 받았고[17] 6차전에서 사사키 가즈히로에 이은 일본인 메이저 리거 최장 타이 기록인 포스트 시즌 통산 7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는[18] 등 플레이오프에서 총 6경기 7이닝을 무득점으로 막아내는 호투를 보였지만 이 경기에서 팀은 패했다. 사이토는 눈물로 인해 눈이 벌겋게 충혈되면서 “정상을 맛보고 센다이에 돌아가고 싶었다”고 말했다.[19] 부시 스타디움에서 열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텍사스 레인저스월드 시리즈에서는 NHK의 TV 중계로 미국 현지에서 게스트 해설을 맡았다.

시즌 종료 후에는 플레이오프에서의 안정감과 과거의 업적, 풍부한 경험을 평가받아 6개 구단 이상으로부터 관심을 보여서 FA랭크는 일본인 선수로서 유일한 A판정을 받았고 사이토의 대리인이 “그는 와인과 같은 선수다. 해를 거듭할수록 좋아지고 있다”라고 말했다.[20]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시절[편집]

2011년 12월 14일에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1년 175만 달러(약 1억 3,600만 엔)로 계약을 맺었는데[21] 이 구단에 일본인 선수가 소속되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듬해 2012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오른쪽 장딴지 부분에 통증을 일으켜 부상자 명단에 들어간 상태에서 시즌 개막을 맞이했다.[22] 그 후 마이너 리그로 내려가면서 조정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20일에 또다시 오른쪽 장딴지 부분에 통증을 일으켰다. 6월부터 마이너 리그에서의 재활 등판을 시작했지만 6월 30일에 오른쪽 어깨 통증을 일으켰고[23] 루키 리그에서 재활 등판을 한 후 7월 21일에 부상자 명단에서 복귀했다. 그러나 10경기에 등판한 후 8월 14일에 왼쪽 허벅지 뒷부분에 통증을 일으켜 다시 부상자 명단에 들어갔고[24] 9월 1일에 복귀했다. 직구의 평균 구속이 작년과 같은 90.7mph(약 146km/h), 최고 속도 93mph(약 150km/h)을 기록했지만 12이닝을 던져 4개의 홈런을 맞는 등 16경기에 등판하여 평균 자책점 6.76, WHIP 1.83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남겼다. 팀도 포스트 시즌 진출에는 실패했고 시즌 종료 후에는 “올해도 전력을 다할 작정이었지만 예년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올해 만큼 컨디션 관리의 어려움을 느꼈던 적은 없다”고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25]

라쿠텐 시절[편집]

2012년 12월 29일에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 1년 계약에 합의한 것이 발표되면서[26] 요코하마 시절인 2005년 이후 8년 만에 일본 야구계로 복귀하게 됐다. 이듬해 2013년 1월 9일에 입단 기자회견을 가졌다.[27]

2013년[편집]

5월 6일 오릭스 버펄로스와의 경기(K스타 미야기)에서 일본 야구계 복귀 후 첫 등판했다. 이 경기에서 사이토는 8회초에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이어지는 8회말의 라쿠텐의 공격에서 팀 타선이 역전했기 때문에 일본 야구계에서는 2,768일 만에 승리 투수가 됐다.[28][29] 8월 24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경기(K스타 미야기)에서는 9회말 원 아웃 상황에서 대럴 래스너의 부상에 의한 긴급 등판에서 타자 3명을 1피안타(무자책점)로 막아내 일본 야구계에서는 2002년 9월 25일 히로시마전 이래 3,986일 만에 세이브를 기록,[30] 43세 6개월에서의 세이브 기록은 일본 프로 야구 역대 두 번째의 연장자 기록이 됐다.[31] 지바 롯데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 4차전에서 팀의 4번째 투수로 등판해 2/3이닝을 막아내 승리 투수가 되면서 포스트 시즌 사상 최고령 승리 투수가 됐다.[32]

2014년[편집]

7월 2일 오릭스와의 경기(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9회에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44세 4개월에 세이브를 기록했다. 전 지바 롯데 마린스 투수였던 고미야마 사토루가 갖고 있던 44세 0개월의 일본 프로 야구 최고령 세이브 기록을 경신했다.[33] 7월 11일 지바 롯데와의 경기(코보스타 미야기)에서도 9회에 등판하여 1이닝을 무실점으로 호투해 최고령 세이브 기록을 경신했다. 7월 21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경기(세이부 돔)에서 8회에 1이닝을 무실점에 막아냈고 직후에 팀이 역전승을 거두면서 44세 4개월에 승리 투수가 되는 등 우완 투수 최고령 승리 기록을 달성했다.[34]

2015년[편집]

플레이 스타일[편집]

스리쿼터에서 슬라이더포심을 주무기로 삼진을 빼앗고 2010년까지 메이저 리그 통산 탈삼진률은 11.0을 기록했다.[35] 그 밖에도 커브투심변화구로 하며[36] 이전에는 포크볼도 던졌지만 2009년에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할 당시에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에서는 자신있는 공 밖에 통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실투 확률이 있는 포크볼을 사용하지 않고 포심과 투심, 슬라이더, 커브만 던지게 됐다고 한다.[9]

메이저 리그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요인으로서 변화구 가운데 하나인 우타자의 바깥쪽으로 날카롭게 빠지는 슬라이더가 메이저 리그의 바깥으로 넓은 스트라이크 존에 적합했던 점을 들 수 있다.[37] 더욱이 좌타자에게 백 도어(바깥의 볼존에서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는 슬라이더)도 큰 무기가 되면서 일본에서는 볼로 판정받았던 코스에서 스트라이크를 처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좌우에 관계없이 우위로 대전을 진행시킬 수 있게 됐고[5][38] 2007년까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감독을 맡았던 그래디 리틀은 “새미(메이저 리그 시절에 사이토를 이렇게 불렀다)를 마무리 투수로 갖고 있었다는 것은 은행에 저금이 아주 많은 것과 같다. 그런 슬라이더가 있는 한, 무너질 리가 없다”고 높이 평가했다.[5] 또한 일본 시절에 비해서 10km/h에 가까운 구속이 늘어나면서 2007년에는 평균 구속 93.2mph(약 150km/h)과 최고 속도 99mph(약 159km/h)를 기록했다.[5] 더 나아가 40세를 넘어서면서 평균 구속 91.8mph(약 147.8km/h)과 최고 속도 95mph(약 153km/h)를 기록했고, 2010년에는 스탠딩탈삼진률에서 양대 리그 1위인 33.5%를 기록했다.[12] 가와카미 겐신은 “40세에 저런 공을 던지다니 정말 대단하다”고 감탄했다.[39]

에피소드[편집]

메이저 리그를 배경으로 한 NHK의 TV 애니메이션 《메이저》의 제6시리즈에서 야구 감수를 맡았다.

상세 정보[편집]

출신 학교[편집]

선수 경력[편집]

NPB
MLB

수상·타이틀 경력[편집]

타이틀[편집]

NPB

수상[편집]

NPB
  • 월간 MVP : 1회(1996년 4월)
  • 컴백상 : 1회(1998년)
  • 일본 시리즈 우수 선수상 : 1회(1998년)
  • 우수 JCB·MEP상 : 2회(1994년, 1996년)
  • JA 전농 Go·Go상 : 1회(최다 탈삼진상 : 1994년 5월)
MLB
  • 구원 최다 탈삼진 : 1회(2006년)
  • DHL Delivery Man of the Year Award : 1회(2007년 8월)

개인 기록[편집]

첫 기록(NPB)[편집]

기록 달성 경력(NPB)[편집]

기타(NPB)[편집]

MLB[편집]

  • 올스타전 출장 : 1회(2007년)
  • 신인 세이브수 구단 역대 1위(24세이브,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6년 9월 28일)
  • 첫 세이브 기회부터의 구원 성공률 메이저 리그 역대 1위(2007년 6월 26일)

등번호[편집]

  • 11(1992년 ~ 2005년)
  • 44(2006년 ~ 2008년, 2013년 ~ )
  • 24(2009년)
  • 40(2010년 ~ 2011년)
  • 48(2012년)

연도별 투수 성적[편집]

연도 소속











상대
타자
투구
이닝





고의
사구
몸에
맞는 볼







평균
자책점
WHIP
1992년 다이요
요코하마
6 2 0 0 0 0 2 0 -- .000 76 16.0 18 2 10 0 0 21 2 0 16 15 8.44 1.75
1993년 29 23 2 0 0 8 10 0 -- .444 627 149.0 127 15 61 1 6 125 7 0 66 63 3.81 1.26
1994년 28 27 7 3 1 9 12 0 -- .429 769 181.0 175 5 69 4 8 169 2 0 70 63 3.13 1.35
1995년 26 26 2 0 0 8 9 0 -- .471 682 162.0 166 13 45 1 6 132 1 0 79 71 3.94 1.30
1996년 28 27 11 2 0 10 10 0 -- .500 801 196.2 157 31 63 1 11 206 4 1 80 72 3.29 1.12
1998년 34 18 1 0 0 13 5 1 -- .722 572 143.2 131 9 23 1 2 101 2 0 49 47 2.94 1.07
1999년 26 26 5 2 2 14 3 0 -- .824 754 184.2 178 32 31 0 6 125 1 1 83 81 3.95 1.13
2000년 19 19 1 1 0 6 10 0 -- .375 493 115.2 123 17 36 1 3 97 1 0 74 71 5.52 1.37
2001년 50 0 0 0 0 7 1 27 -- .875 251 64.2 51 6 14 3 0 60 0 0 12 12 1.67 1.01
2002년 39 0 0 0 0 1 2 20 -- .333 197 47.2 37 5 15 3 4 46 0 0 17 13 2.45 1.09
2003년 17 17 1 0 0 6 7 0 -- .462 439 103.1 103 16 22 1 9 72 1 0 59 48 4.18 1.21
2004년 16 7 0 0 0 2 5 0 -- .286 211 44.1 64 12 13 0 2 37 1 1 41 38 7.71 1.74
2005년 21 16 0 0 0 3 4 0 1 .429 457 106.0 111 12 29 1 7 93 2 0 50 45 3.82 1.33
2006년 LAD 72 0 0 0 0 6 2 24 7 .750 303 78.1 48 3 23 3 2 107 2 0 19 18 2.07 0.91
2007년 63 0 0 0 0 2 1 39 1 .667 234 64.1 33 5 13 0 3 78 0 0 10 10 1.40 0.72
2008년 45 0 0 0 0 4 4 18 0 .500 197 47.0 40 1 16 3 2 60 1 0 14 13 2.49 1.19
2009년 BOS 56 0 0 0 0 3 3 2 3 .600 240 55.2 50 6 25 2 5 52 1 0 16 15 2.43 1.35
2010년 ATL 56 0 0 0 0 2 3 1 17 .400 221 54.0 41 4 17 2 0 69 2 0 20 17 2.83 1.07
2011년 MIL 30 0 0 0 0 4 2 0 10 .667 108 26.2 21 2 9 2 1 23 2 0 6 6 2.03 1.13
2012년 ARI 16 0 0 0 0 0 0 0 2 ---- 60 12.0 17 4 5 1 1 11 1 0 14 9 6.75 1.83
2013년 라쿠텐 30 0 0 0 0 3 0 4 4 1.000 111 26.2 25 1 10 0 1 25 2 0 7 7 2.36 1.31
2014년 31 0 0 0 0 1 1 3 9 .500 134 31.1 27 2 15 2 2 21 2 0 9 9 2.59 1.34
NPB : 15년 400 208 30 8 3 91 81 55 14 .529 6574 1572.2 1493 178 456 19 67 1330 28 3 712 655 3.75 1.24
MLB : 7년 338 0 0 0 0 21 15 84 40 .583 1363 338.0 250 25 108 13 14 400 9 0 99 88 2.34 1.06
  • 2014년 기준,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 다이요(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는 1993년에 요코하마(요코하마 베이스타스)로 구단명을 변경

주석[편집]

  1. 정확한 성의 표기는 ‘斎藤’(사이토)이지만 본인은 블로그에서는 ‘斉藤’(동음)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많다.
  2. September 18, 2006 San Diego Padres at Los Angeles Dodgers Play by Play and Box Score - Baseball-Reference.com.
  3. ‘MLB 30 팀 리포트 - 시즌 총괄편’, 《월간 슬러거》(2007년 1월호), 일본 스포츠 기획 출판사, p.83, 잡지 15509-1
  4. Baseball Awards Voting for 2006 - Baseball-Reference
  5. ‘사이토 다카시 - 징크스를 아랑곳 하지 않고’, 《월간 슬러거》(2007년 12월호), 일본 스포츠 기획 출판사, p.50 ~ 53, 잡지 15509-12
  6. Busy Red Sox add reliever Saito Ex-LA closer joins Penny, Smoltz, Baldelli as Boston signees - mlb.com., 2009년 1월 11일
  7. Red Sox sign free agent righthanded pitcher Takashi Saito to one-year contract with option for 2010 - Redsox.com., 2009년 1월 11일
  8. Smoltz says he's determined, focused - ESPN.com., 2009년 1월 13일
  9. 斎藤勲章「日米100勝&100セーブ!」’ - 스포츠 닛폰, 2009년 6월 13일
  10. NHK-BS1 메이저 리그 하이라이트에서 인용.
  11. ‘2010-11 MLB 투수 백서 아라카르트’ , 《월간 슬러거》(2011년 2월호), 일본 스포츠 기획 출판사, p.45, 잡지 15509-2
  12. ‘2010 직구/구원 투수 부문별 베스트 5’, 《월간 슬러거》(2011년 2월호), 일본 스포츠 기획 출판사, p.11, 잡지15509-2
  13. 斎藤「薬でも注射でも使って戻りたい」 - 닛칸 스포츠, 2010년 9월 18일
  14. Saito signing is official - JSOnline, 2011년 1월 6일
  15. 41歳斎藤1回0封PO初勝利 - 닛칸 스포츠, 2011년 10월 4일
  16. 斎藤ブ軍29年ぶり地区S突破 - 닛칸 스포츠, 2011년 10월 9일
  17. 斎藤「プホルス・キラー」だ - 닛칸 스포츠, 2011년 10월 15일
  18. 斎藤は通算7戦連続無失点 - 닛칸 스포츠, 2011년 10월 18일
  19. 斎藤涙の終戦「凄く悔しい」 - 닛칸 스포츠, 2011년 10월 18일
  20. 41歳斎藤に6球団以上が興味=代理人「彼はワインと同じ」’ - 지지 통신, 2011년 12월 8일
  21. 斎藤隆、ダイヤモンドバックスに移籍 - 로이터, 2011년 12월 16일
  22. 斎藤残念「開幕前なので慎重に」 - 닛칸 스포츠, 2012년 4월 5일
  23. 斎藤は右肩の炎症「長くなりそう」 - 닛칸 스포츠, 2012년 7월 2일
  24. 斎藤が再びDL入り 左太もも裏痛める - 닛칸 스포츠, 2012년 8월 15일
  25. 斎藤終戦も「引退思い浮かばない」 - 닛칸 스포츠, 2012년 10월 4일
  26. 사이토 다카시 선수와의 계약 합의에 관해서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공식 홈페이지, 2012년 12월 29일
  27. 「今までの会見とは全く違った興奮」斎藤隆選手の入団会見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공식 홈페이지, 2013년 1월 9일
  28. 楽天・斎藤、復帰初登板で2768日ぶり勝利!’ - 산케이 스포츠, 2013년 5월 6일
  29. 2013년 5월 6일(월) - 라쿠텐 vs 오릭스(7차전) 경기 결과 - 일본 야구 기구 홈페이지, 2013년 5월 6일
  30. 2013년 8월 24일(토) - 라쿠텐 vs 지바 롯데(18차전) 경기 결과 - 일본 야구 기구 홈페이지, 2013년 8월 24일
  31. 楽天 斎藤 日本3986日ぶりセーブ 緊急登板もあせりなし - 스포츠 닛폰, 2013년 8월 25일
  32. 斎藤 PS史上最年長勝利投手、短期決戦強い!3戦3勝 - 스포츠 닛폰, 2013년 10월 22일
  33. 楽天の斎藤 最年長セーブ記録更新 - NHK News WEB - 2014년 7월 2일
  34. 楽天44歳斎藤が右投手最年長勝利更新’ - 데일리 스포츠, 2014년 7월 22일
  35. ‘2010-11 MLB 투수 백서 : 주요 250 투수 피칭 분석 / 구원투수편’, 《월간 슬러거》(2011년 2월호), 일본 스포츠 기획 출판사, p.37, 잡지 15509-2
  36. 도모나리 나치, 무라카미 마사노리 《메이저 리그 - 완전 데이터 선수 명감 2010》(고사이도 출판, 2010년), p.283. ISBN 978-4-331-51439-9
  37. 도모나리 나치, 무라카미 마사노리 《메이저 리그 - 완전 데이터 선수 명감 2007》(고사이도 출판, 2007년), p.406. ISBN 978-4-331-51213-5
  38. 도모나리 나치, 무라카미 마사노리 《메이저 리그 - 완전 데이터 선수 명감 2008》(고사이도 출판, 2008년), p.438. ISBN 978-4-331-51300-2
  39. 衰えない40歳の速球、斎藤、4試合連続無失点’ - 산케이 신문, 2010년 7월 7일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