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Gong0453/연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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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호(孔柄淏 1960년 5월 10일~)는 대한민국의 자유주의경제학자이자 작가이자 강연자이다.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라이스대학교(Rice University)에서 1987년에 경제학박사를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10년 후, 한국》《공병호의 자기경영노트》《대한민국 기업흥망사》《부자의 생각 빈자의 생각》》《사장학》등이 있으면 경제, 경영, 자기계발, 서양 고전철학, 성경 등 포괄적인 분야에서 100여권의 책을 집필하였으며, 한국의 대표적인 강연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초창기에는 경제과 경영 분야에 대해 집필 하였으면 돌아가신 구본형 선생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자기계발서 작가 1세대에 속하였다. 두 사람을 묶어서 미디어에서 '공구세트'라 부르기도 했다.

50대에 들어서는 서양고전 철학에 대한 저서《공병호의 고전강독 1,2,3,4》을 집필하였고 2014년에는 《공병호의 성경공부》, 《공병호가 만난 하나님》, 《공병호가 만난 예수님》으로 성경까지 집필의 지평을 확대해 왔다.


약력[편집]

출생[편집]

공병호는 1960년 5월 10일, 경남 통영(統營)에서 네 명의 누나들과 두 명의 형에 이어 7남매의 막내로 났다. 그는 자신이 난 곳을 이렇게 묘사한다.

"우리 가족이 살았던 집은 지금은 퇴락한 구시가지가 되고 말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수산업을 하던 선주들이 주로 살았던 중심지로 바닷가에 인접한 항남동이었다. 지명처럼 항구의 남쪽에 위치한 그곳의 좁은 골목골목에는 일본인들이 남긴 적산가옥들이 즐비했다." (<나는 탁월함에 미쳤다>, 2011, p.79)


수산업을 하였던 아버지 공태종(孔泰鍾•1924년생)과 어머니 이정순(李貞順•1925년생)에 대한 공병호의 회상은 이렇다.

"내 아버지나 어머니는 '더 이상 열심히 살 수 없다'는 문장으로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근면하게 살았다. 특히 어머니의 손은 가사와 어장 일 때문에 마치 머슴의 손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거칠었고,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항상 그 손이 먼저 떠오른다. 아버지를 생각할 때면 근면과 성실과 도전이란 세 단어를,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근면과 희생과 헌신이라는 세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내가 평생을 반듯하게, 열심히 살아가려 노력하는 이유는 부모님의 보여준 '희생'과 '헌신'이란 두 단어를 늘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p.80)


5막 인생[편집]

공병호는 자신이 걸어왔고 지금도 걸어가고 있는 삶을 연극의 5막에 비유해서 설명한다.

  • 인생 1막(학창 시절): 부모 슬하를 떠나 중학교 2학년 때 부산으로 전학을 가고 고려대학교를 졸업(1983년)하고 미국의 라이스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마무리(1987년)한 시기.

사춘기를 극심하게 앓은 점이나 안목이나 시야가 부족해서 공부 이후의 진로 선택에서 현명하지 못한 결정에 대해 아쉬워한다. 훗날 어린 시절의 자신에 대해 이런 글을 남긴 적이 있다.

"그냥 앉아서 기다리지 않고 무언가를 스스로 찾고, 그것이 자신의 판단 기준으로 봤을 때 올바르다고 생각되면 관철되도록 힘껏 노력하는 것도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함없ㄴ느 내 특성 중 하나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후천적인 교육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이 부모 혹은 그 선대로부터 무엇을 물려받았는지도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삶은 처음부터 불공평한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타고나는 것 자체만큼 불공평한 것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나는 탁월함에 미쳤다»(2011), pp.96~97)


  • 인생 2막(연구원 생활): 직장을 잡고 한국 사회를 더 번영되고 더 자유로운 곳으로 만들어 보려는 생각을 갖고 이를 추진하였던 시기.

재단법인 자유기업센터(1997년)와 재단법인 자유경제원(구 자유기업원, 2001년)의 설립을 주도하였고 자유주의 경제학자로서의 지적 토대를 확실히 구축하게 된다. 그는 '올바른 생각'이 번영된 국가를 낳는 다는 믿음을 가져왔고 재단법인 자유기업원(재단법인 자유기업센터)이 1997년에 설립되는데 산파역을 맡았다. 이 조직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한국에서 자유주의자들의 네트워크가 구축될 수 있었다.

이때 쓴 «시장경제란 무엇인가»(1997년) «시장경제와 그 적들»(1998년) «기업가»(1999년) «시장경제와 민주주의»(1999년) 등과 같은 책들이 자유주의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잘 정리한 책이다.


  • 인생 3막(기업 CEO 생활): 40대에 불어닥친 정체성 위기로 전혀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기업체에 뛰어들어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을 한 시기.

짧지만 굳게 뛰었고 세상 기준으로 결실을 얻지 못하고 실패한 상태로 물러나게 되었지만 훗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정확하게 찾아낸 시기라고 그는 말한다.

닷컴의 열풍이 몰아치던 시점에 마침 그는 40대를 막 들어서는 시점이었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최선인가?"라는 의문에 휩싸인 채 그는 벤처기업의 CEO로 변신하고 만다. 평생동안 자유주의 운동에 매진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사람의 갑작스런 변신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40대에 접어들 무렵에 겪었던 '정체성 위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내 유전자 속에는 공익을 위해서 평생 동안 헌신할 수만은 없는 특성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그런 기억은 유년기부터 시작해서 40대의 어느 날까지 수없이 많이 끄집어 낼 수 있다. 일례로 연구소의 소장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에도 나는 내 이름 석 자를 분명히 내세울 수 있는 활동들을 좋아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어느 연구소의 누구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내가 누구인가가 가려지는 지점이 있다면, 그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과 아울러 심리적 불편함을 느끼곤 햇다."(p.32)


변신하게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가 공익을 위한 활동을 계속함으로써 두 아들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만큼 좋은 교육을 제공할 수 없었다는 점도 역할을 한다. 그의 회의감은 이랬다.

"자본주의에서는 자신의 능력으로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이 주인이고 나머지는 조연일 수 밖에 없다. 내가 그것에 만족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그 귀한 시간과 에너지를 조연이 되는 일에 투입하고도 과연 후회하지 않을까?"(그가 내린 결론은 앞으로 후회할 것이기 때문에 공익을 위한 활동을 중단하는 결정이었다.)(p.48)


  • 인생 4막(개인 연구소 설립): 공병호경영연구소를 중심으로 집필과 강연으로 자기경영과 사회 평론에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 나가는 시기.

전직 실패에 굴하지 않고 공병호경영연구소(2001년)를 설립하여 자기경영, 자기계발, 성공학, 사장학, 미래 전망 등의 주제에 관한 활발한 집필활동과 강연 활동으로서 새로운 삶을 개척한다. 그는 전직에 실패하고 난 다음 자신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나의 40대 초반은 그동안 쌓아왔던 신뢰나 명성의 대부분을 날려버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40년 동안 힘들게 노력하여 착실히 모은 돈을 잘못된 투자 결정으로 탕진한 것과 꼭같은 일이 나에게 일어나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라는 새로운 과제가 내 앞에 주어졌다."(p.280)


2000년대 한국 사회의 자기계발에 대한 논문으로 연세대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서동진은 그의 박사학위 논문 «자유의 의지 자기 계발의 의지: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에서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탄생»(돌베게, 2009)에서 구본형과 공병호를 이렇게 평가한다.

"우리는 자기계발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공병호와 구본형의 주요 저작들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이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거의 매년 끊임없이 자기계발 담론을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주요한 텍스트를 쏟아냈고 각기 스스로를 '1인 기업가'로 부르며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화한 자기계발 테크닉을 상품으로 판매한다. (...) 두 명이 자기계발 분야의 한국판 '구루'로 추앙받고 인기를 누리게 된 것은 바로 그들의 스타일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공병호식 혹은 구본형식의 자기계발 담론의 담론적 스타일이 있는 것이다. 구본형은 조잡하고 유치하기는 것이기는 하지만 숱한 문화예술가들의 말이나 저술을 인용, 참조하고 나열한다. (...) 이런 점에서 구본형과 공병호는 서로 차이를 보인다. 공병호가 쓴 글 가운데 상당 부분이 그렇듯이, 그는 이른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공공연하게 옹호하는 이념적인 지식인으로서 경제질서나 정부정책 같은 거시적인 대상을 분석하면서 이를 자기계발 텍스트와 결합한다. (...) 어쨌든 두 저자는 서로 다른 스타일로 1990년대 후반 이후 한국 사회의 자기계발 담론을 대표했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자기계발에 관련한 수많은 동호회나 소모임 등에서 이들의 주장은 엄청난 권위를 누리고 숭배받는다."(pp.263~264, 282~284)


  • 인생 5막(절대진리를 향한 여행길): 서양 고전철학 공부를 시작으로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는 시기.

세월은 정말 많은 것을 바꾸어 놓듯이 공병호의 삶에서도 큰 변화를 가져온다. 그는 50대 접어들어서 소크라테스,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되는 서양 고전철학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공병호의 고전강독» 4권이 시리즈로 출판된다. 그의 절대진리를 향한 여행은 여타 고대 그리스 철학자, 로마 철학, 중세 철학 등으로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였다. 그가 2011년 9월 28일 <동아일보>에 기고한 "죽기 전에 이것만은..."이란 칼럼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나에게 누군가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을 묻는다면) 내가 가진 시간과 에너지의 절반을 고전 읽기와 쓰기에 투자하는 일명 '그레이트 펄슨' 프로젝트를 더 힘차게 추진해 나가려 한다. '딱 한 번 살다 저 세상으로 간다면, 좋은 음악과 좋은 그림을 감상하는 것처럼 천재들이 남긴 걸출한 고전을 탐구하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것이 내가 가진 소박한 바람이다. 50세를 넘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인류가 남긴 위대한 고전 읽기 작업을 시작하리라 계획하였던 것을 지난해부터 실행에 옮기게 되었는데 가을부터 결과물을 내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계속될 것 같은 고전 읽기 작업이 중단되고 2014년에는 3권의 성경에 관한 책들이 나오게 되었다. 고전을 통해 절대진리를 찾아나섰던 그의 지적 순례에서 그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세상을 바꾸는 체인저로서[편집]

사람은 집안이나 시대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다. 시골에서 나서 197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 가운데는 유독 운동권 출신들이 많다. 그것은 그들에게 공익을 위한 활동 그러니까 나라를 위해 도움이 되는 활동의 가치를 높게 부여하는 시대 분위기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공병호 역시 대학 시절에 운동권에 뛰어들지는 않았지만(체질적으로 그는 개인주의자의 성향이 강하였기 때문에 집단 활동에 뛰어들 수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30대는 '올바른 생각'을 한국 사회에 확산함으로써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더 부강하고 시민들 개개인이 더 자유롭고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활동을 생각하게 된다. 이처럼 사람들의 생각을 올바르게 만드는 활동을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 재단법인 자유기업센터(현 재단법인 자유경제원)이다. 이 조직을 만드는데 산파역을 담당했던 그는 이렇게 말한다.


  • 우리 모두는 지적 기업가

'우리 모두는 지적 기업가이다.'(We are all intellectual entrepreneurs) 젊은 날 만났던 하이에크의 명문장 가운데 하나다. 나는 가장 저렴한 비용을 자유주의 정신을 한국 사회에 확산시키고자 했다. 그래서 자유주의 정신을 공유하고 있는 지식인들에게 활동의 장을 제공함과 아울러 한국 사회가 번영의 길로 달려가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 연구소를 염두에 두었다. 한마디로 월급을 받는 연구자들로 구성된 조직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일당백을 할 수 있는 지적 기업가들이 운영하는 연구소로 만들 생각이었다. 소수의 인력과 적은 예산으로 운영되지만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직이 되겠다는 각오로 재단법인 자유기업센터가 만들어진 것이다."(p.269)


자유기업원 원장을 지냈던 김정호 박사(현 프리덤팩토리 CEO)는 «자유기업원 10년사»(2007년)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공 박사는 뛰어난 기업가였다. 새로운 조직을 만들자마자 결과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큰 예산을 들인 일은 주옥같은 자유주의의 명저들을 한국 사회에 소개하는 일이었다. 하이에크, 미제스, 에인랜드, 커즈너, 노스, 뷰캐넌 같은 자유주의자들의 저작물들을 한국어로 번역했고, '자유주의 시리지'라는 시리즈명으로 출간했다. (...) 공 박사의 새로운 일이 김진현 원장이 했던 사업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비슷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규모와 속도 면에서 굉장한 도약을 이룬 사업이었다."


  • 자유주의의 확산

그러면 공 박사는 자유주의(선택의 자유, 법의 지배, 작은 정부, 자유 기업, 개인적 책임을 강조하는 자유주의는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해 가능한 정부에 의한 사회적 선택들 줄이고 개인에 의한 개인적 선택을 높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하는 사상이나 믿음)라는 사상의 세례를 어떻게 받았을까? 본래 그가 태생적으로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사업 하는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태생적 자유주의의 성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그가 연구원 시절에 만났던 하이에크와 미제스의 글들은 큰 영향력을 주었을 것이다. 훗날 그는 하이에크의 논문 "인간가치의 3가지 근원"(«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1990년, 문예출판사)나 «치명적 자만»이나 미제스의 «자유주의» 등과 같은 저서들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한 바가 있다.(참고: 현재 재단법인 자유경제원이 발간하고 있는 자유주의 시리즈는 50권이 넘어섰으면 잘 알려진 자유주의 고전들 가운데 많은 책들이 우리 말로 번역되어 있다.)


  • 사회의 변화에 대한 생각

더 나은 사회 만들기를 위한 그의 활동은 2000년 1월까지 지속되지만 이후에 그의 활동엔 무게 중심은 개인으로 옮겨가면서 개인의 자기경영과 성공학에 대해 더 큰 비중을 두게 된다. 이따금 사회평론 서적들을 펴내기는 하지만 현저히 줄어들게 되는데 이런 변화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는 사회의 변화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식을 낳아서 키우면 잔소리를 하고 타이르기도 하면서 아이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충분히 바뀔 수는 있지요. 하지만 한 사회를 바꾸는 일은 무척 힘든 일입니다.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뜻있는 지식인들의 활동에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데 '한계적인 도움'은 될 수 있어요. 그러나 어떤 사회라도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은 충분한 비용을 치룬 다음에 배우게 됩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한국 사회도 큰 비용을 치룬 다음에 배우게 될 것으로 봅니다. 때로는 큰 비용을 치룬 다음에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됩니다. 제가 2001년 이후 저의 활동 방향을 크게 튼 것은 이런 부분도 한 가지 이유입니다.

결국 수많은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는 충분한 비용을 지불한 다음에서야 배우게 된다는 것이지요."


저술가로서[편집]

  • 책 쓰기에 대한 생각

사람마다 공부를 방법이 다른데, 어떤 사람은 읽으면서 배우고, 어떤 사람은 직접 해 보면서 배우고, 또 어떤 사람은 설명하면서 잘 배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가장 잘 배우는 방법은 '책 쓰기'라고 한다. 그러니까 어떤 주제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주제에 대해 잘 알고 싶으면 책을 쓴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다양한 주제에 대해 책 쓰기를 계속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알기 때문에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알고 싶기 때문에 쓴다. 제가 경제 경영 자기계발 서양고전철학 그리고 성경으로 그가 집필 영역을 확대해 온 이유는 모르는 것을 더 잘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 책 쓰기 영역

연구원이나 대학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는 자유롭게 책의 주제를 선택한다. 그는 어떤 계획에 따라 책 쓰기를 행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유는 자신이 알고 싶은 주제가 계속해서 변하기 때문에 계획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1년 정도는 계획을 세우지만 그 이상의 기간에 대해서는 상황 변화에 따라 자신의 심경 변화에 따라 책쓰기의 주제가 얼마든지 변변한다고 말한다.

30대에 그의 관심은 시장경제, 기업의 흥망, 기업가정신, 자유주의, 재벌 연구 등에 초점을 맞추었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1999년), 기업가(1998년), 시장경제와 그 적들(1997년), 시장경제란 무엇인가(1997년), 한국기업흥망사(1993년) 등이 그런 책이다.


40대에 그의 관심은 한국의 번영, 자기경영, 성공학, 자녀교육 등으로 변화한다. 자기경영노트(2001), 1인 기업가로 홀로서기(2002년), 10년 후 한국(2004년), 10년 후 세계(2005년), 부자의 생각 빈자의 생각(2005년), 사장학(2009년) 등이 그런 책이다.


50대 중반까지 그의 관심은 서양고전철학, 자기계발, 사회평론 등을 거쳐 마침내 성경공부까지 도달한다. 공병호의 고전강독1,2,3,4(2011년), 진화심리학을 통해 본 5년 후 대한민국(2013년), 대한민국 기업흥망사(2011년), 일취월장(2011년), 공병호의 성경공부(2014년) 등이 그런 책이다.


  • 가벼운 글쓰기

그는 수시로 짧은 글을 쓴다. 단상, 관찰, 드라마, 대화, 영화, 신문 등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글의 소재를 만나게 되면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공개 학습 노트'라고 부른다. 떠오른 아이디어를 흘린다는 표현으로 가볍게 글을 써는 일을 그는 자신의 취미 활동이자 즐거움을 누리는 활동이라고 부른다.

강연자로서[편집]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편집]

경력[편집]

〈학력〉

  • 1983. 2 고려대학교 졸업 경제학과
  • 1983. 8 美 라이스대학교 대학원 입학
  • 1987. 5 동 대학교 대학원 졸업 경제학박사(Ph.D.)

〈전직〉

  • 1988. 4 ~ 1990. 5 국토개발연구원 책임연구원
  • 1992. 10 ~ 1993. 3 일본 나고야대 경제학부 객원연구원
  • 1990. 6 ~ 1997. 3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산업연구실장
  • 1997. 4 ~ 1999. 12 재단법인 자유기업센터 초대소장
  • 2000. 1 ~ 2000. 2 재단법인 자유기업원(현 자유경제원) 초대원장
  • 2000. 3 ~ 2001. 2 ㈜인티즌 대표이사
  • 2001. 3 ~ 2001. 7 ㈜코아정보시스템 대표이사
  • 2002. 4 ~ 2012. 6 교보생명주식회사 사외이사
  • 2008. 2 ~ 2010. 2 S&TC 사외이사


〈현직〉

  • 1998. 8 ~ 현재 몽페를랭(Mont Pelerin)소사이어티 정회원
  • 2012. 5 ~ 현재 포니정(Pony Chung) 재단 이사
  • 2001.10 ~ 현재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저서[편집]

2014년

  • 07월 공병호가 만난 예수님
  • 04월 공병호가 만난 하나님
  • 01월 공병호의 성경공부

2013년

  • 11월 공병호의 인생사전
  • 06월 군대간 아들에게
  • 01월 진화심리학을 통해 본 5년 후 대한민국

2012년

  • 11월 공병호의 고전강독 4: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희망의 정치를 묻다
  • 08월 공병호의 고전강독 3: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진정한 행복을 묻다
  • 06월 운명을 바꾸는 공병호의 공부법
  • 03월 공병호의 고전강독 2: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게 다시 정의를 묻다
  • 03월 공병호의 고전강독 1: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게 최고의 인생을 묻다

2011년

  • 10월 습관은 배신하지 않는다
  • 07월 일취월장
  • 03월 나는 탁월함에 미쳤다
  • 01월 대한민국 기업흥망사

2010년

  • 10월 우문현답
  • 08월 모바일혁명
  • 05월 인생강독
  • 03월 대한민국 성장통[1]

2009년

  • 12월 내공
  • 08월 서른셋 태봉씨, 출세를 향해 뛰다
  • 06월 벽을 넘는 기술
  • 03월 소울메이트
  • 02월 사장학

2008년

  • 11월 3년 후, 세계는 그리고 한국은
  • 09월 인생의 기술
  • 05월 미래 인재의 조건
  • 08월 우리 아이 10년 프로젝트
  • 03월 다이아몬드(고정욱 공저)
  • 01월 오아시스(고정욱 공저)

2007년

  • 10월 한국 10년의 선택
  • 07월 공병호의 변화경영
  • 07월 공병호의 창조경영
  • 04월 에스프레소, 그 행복한 사치
  • 04월 어린이 생각 계획표

2006년

  • 12월 인생은 경제학이다.
  • 12월 영어만은 꼭 유산으로 물려주자
  • 10월 희망리더십
  • 07월 공병호의 초콜릿
  • 02월 10년 법칙
  • 12둴 지식플러스 머니머니 경제사
  • 10월 열두 살에 처음 만난 경제사 교과서

2005년

  • 12월 부자의 생각 빈자의 생각
  • 06월 한국 번영의 길
  • 01월 10년 후, 세계
  • 12월 공병호의 10대를 위한 자기경영노트
  • 07월 10년 후 성공하는 아이, 이렇게 키워라

2004년

  • 12월 기록하는 리더가 되라
  • 11월 성찰
  • 06월 10년 후, 한국
  • 05월 나를 혁명하는 13가지 황금률
  • 05월 이런 간부를 사표를 써라
  • 05월 핵심만 골라 읽는 실용독서의 기술
  • 02월 주말경쟁력을 높여라
  • 03월 어린이를 위한 협상의 법칙

2003년

  • 12월 3040, 희망에 베팅하라
  • 11월 두뇌가동율을 높여라
  • 08월 공병호의 독서노트: 창업자편
  • 06월 공병호의 독서노트: 경영법칙편
  • 04월 공병호의 독서노트: 미국편
  • 03월 공병호의 독서노트: 창의력편
  • 07월 내 꿈을 이루는 아이 & 남의 꿈을 쫓는 아이
  • 06월 키라의 어드벤처 고대편 1,2,3,
  • 05월 대화를 잘 하는 아이 & 대화를 못하는 아이
  • 02월 친구가 따르는 아이 & 친구를 따라가는 아이

2002년

  • 08월 공병호의 자기경영 실천프로그램
  • 06월 황금의 씨앗을 뿌려라
  • 01월 1인 기업가로 홀로서기

2001년

  • 12월 공병호의 자기경영노트

1993년~1999년

  • 1999년 02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 1998년 03월, 기업가
  • 1997년 01월, 시장경제와 그 적들
  • 1997년 05월, 시장경제란 무엇인가
  • 1996년 12월, 갈등하는 본능(김정호 공저)
  • 1995년 07월, 한국경제의 권력이동
  • 1994년 06월, 한국기업에 맞는 리스트척처링(김은자 공저)
  • 1993년 11월, 한국기업흥망사
  • 1992년 09월, 재벌 비난받아야 하는 가

수상 및 인정[편집]

  • 1995년 제7회 자유경제문화상 수상: 한국경제의 권력이동
  • 1996년 제8회 자유경제문화상 수상: 시장경제란 무엇인가
  • 1997년 제9회 자유경제문화상 수상: 시장경제와 그 적들


  •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교양도서: 한국기업흥망사
  •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교양도서> 대한민국 성장통
  •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교양도서> 사장학


  • 한국을 대표하는 '경영 대가(guru)' 4위, 매경이코노미 창간 30주년 기념 조사, 2009. 7.8
 "30대 경영대가 중에서 조직에 속하지 않은 유일한 인물"
  • 한국을 대표하는 '명강사' 대상 수상, 한국HRD협회, 2009. 2. 19
  • 한국을 대표하는 '경영 구루(guru)' 8위, 매경이코노미 창간 29주년 기념 조사, 2008. 7. 2
  • '가장 만나고 싶은 전문가 1위,공병호' 토털브랜딩코리아(주)갤럽 베스트사이트(주) 공동 선정, 2006. 11.1

주석[편집]

바깥고리[편집]

공병호

[분류: 통영] [분류: 1960년대] [분류: 대한민국 저술가] [분류: 대한민국 강연자] [분류: 대한민국 경제학자] [분류: 대한민국 자유주의자] [분류: 대한민국 보수 논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