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후작 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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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드 사드
Donatien Alphonse François de Sade
Sade (van Loo).png
사드 백작
Comte de Sade
재임 1767~1772, 1788?~1814
전임자 장 바티스트 드 사드
후임자 클로드 아르망 드 사드
사드 후작
Marquis de Sade
재임 1772~1788?
가문 사드 가(fr)
부친 장 바티스트 드 사드
모친 마리 엘레오노르 드 마예
출생 1740년 6월 2일
파리
사망 1814년 12월 2일 (74세)
생 모리스(fr)
병사
국적 프랑스 프랑스

사드 후작 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Donatien Alphonse François, marquis de Sade, 1740년 6월 2일 ~ 1814년 12월 2일) 는 "사디즘"이란 용어로 알려진 프랑스작가이며 사상가이다.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인 사드 가(fr) 출신이며, 장바티스트 프랑수아 조제프(fr)의 장남으로 파리에서 태어나 군직에 있으면서 7년 전쟁에도 참가하였다. 1763년에 결혼한 후 겨우 5개월 만에 방탕과 신성 모독의 죄로 투옥되었으며 이후 열손가락으로도 다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감옥을 전전하면서 보내게 되었다. 후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원래의 작위는 백작이었으며 실제 후작이 된 것은 1772년, 엑스 의회(fr)에서 사드 령을 후작령으로 결정함에 따라 작위 역시 후작으로 격상된 것으로, 1787년에 사드 후작 명의로 바스티유에 투옥되었다. 그러나 1789년 사드 백작이라는 이름 하에 투옥되었던 기록이 있고, 1814년 사망시에도 사드 백작 명의로 기록되었다.

'쥐스틴 또는 미덕의 패배'

1790년 프랑스 대혁명 덕으로 석방되어 정치 활동에 뛰어들어 한 지구의 위원장이 되었으나 혁명에 어느 정도 가담했는지에 대하여는 의문이다. 얼마 뒤 온건주의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테르미도르의 반동으로 겨우 단두대를 면했다. 방대한 소설·콩트·희곡을 썼으나 특히 《쥐스틴 또는 미덕의 패배》(Justine ou les Malheurs de la vertu, 1791), 《쥘리에트 이야기 또는 패덕의 승리》(Histoire de Juliette, ou les Prospérités du vice, 1797), 《신(新) 쥐스틴》(La Nouvelle Justine, 1799), 《알린과 발쿠르》(Aline et Valcour, 1795), 《소돔의 120일》(Les Cent Vingt Journées de Sodome, 바스티유 습격 과정에서 실종되었다가 1904년에 다시 발견되어 1931~1935에 걸쳐 출판됨) 등의 소설이 유명하다. 오랫동안 변태성욕의 대명사로서 또한 터무니없는 성묘사 때문에 스캔들과 검열의 표적이 되어왔고, 실제로도 일부는 익명으로 출판되었으며 사드 후작 본인은 생전에 그러한 작품들에 대해 자신의 작품임을 완강히 부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기욤 아폴리네르가 재평가한 이래 작품의 문학성과 사상성은 근년에 와서 특히 인정되었다. 이상(異常) 임에는 틀림없으나 성을 통하여 기성의 종교·사회·도덕에 철저한 비판을 가한 유물론자이며 개인주의자라 할 수 있다.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