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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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 제도(封建制度)라는 용어는 원래 고대사에서 중앙집권제도군현제도에 대응되는 말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영어인 “feudalism”의 번역어로서 사용되고 있다. 중세 봉건제의 3요소로는 은대지제도, 종사제도, 불수불입제도가 있다.

봉건의 어원[편집]

동양에서는 옛날 상나라를 멸한 주나라가 제후에게 봉지를 내릴 때, 그러한 제도를 가리켜 봉건(封建) 또는 봉방건국(封邦建國), 봉건친척(封建親戚)이라 불렀다. 이때 봉건은 봉방건국의 약어로서 방국에 봉지를 내려 나라를 이룬다는 뜻이며, 봉건친척은 봉방건국의 형태가 주로 주나라 왕실의 친척에게 봉지가 내려졌음을 알게 해준다.

그러나 강상의 선조가 여나라에 봉해졌다는 기록 등으로 볼 때 주나라 이전에도 봉토를 내리는 관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봉건 제도의 개념[편집]

학문상 통일된 개념이 없으나, 주로 3가지 개념으로 대변된다.

첫째, 법제사적 의미 둘째, 사회경제사적 의미 셋째, 사회 유형으로서 의미

법제사적 의미[편집]

주군과 기사간의 주종서약이라는 신분관계와 거기 대응하는 토지에 수수라는 불가분의 결합체제를 말한다. 토지에 수수에는 단순히 토지만이 아니라 토지에 소속된 농노등을 함께 포함한다. 서유럽에서는 대략 8세기 말엽~13세기 중엽까지 해당한다.

사회경제사적 의미[편집]

노예 제도의 붕괴 후에 성립되어 자본주의에 전에 존재하였던 주군과 기사, 농노사이의 지배·예속관계가 기초를 이룬 생산체제를 말한다. 봉건 제도에서 주군과 기사, 농노는 토지를 매개로 봉건지대를 수취 ·수납하였다. 봉건 시대에는 토지를 주군으로부터 빌려 쓰는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그 대가로는 부역과 생산물이 있었는데, 화폐로 바뀌어 가며 농민의 지위가 향상되어 갔다. 그러나, 여전히 주군의 경제외적인 지배와 공동체의 규제가 농민을 극심하게 속박하였다. 서유럽에서는 6세기말엽,7세기 초~ 18세기 시민혁명 때까지가 봉건시대에 해당된다.

사회 유형으로서 의미[편집]

국왕 또는 황제를 정점으로 계단형 질서체계를 이루고, 신분제도의 유지, 전통의 고수라는 형태로 개인 기량의 발휘와 내면적 인간적 권위의 존중 등이 억압된 사회를 말한다. 봉건사회는 일반적으로 씨족제의 붕괴 과정에 있는 사회가 보편적인 국가이념과 종교를 이용하여 새로운 정치형성을 도모해 나갈 때에 생긴 역사적 조건의 우연한 산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봉건 제도를 사회 유형으로서 필연적인 한 단계라고는 하지 않는다. 화폐경제가 발달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토지를 중심으로 주종관계라고 하는 인적 결합의 강화를 통한 통일이 국가 통치의 한 방법이었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