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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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부인(保道夫人 혹은 保刀夫人, ? ~ ?)은 법흥왕의 비(妃)였다. 파도부인(巴刀夫人)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는 그녀를 박씨(朴)로 기록하고 있는 반면, 《필사본 화랑세기》는 소지마립간선혜부인 김씨의 딸이라고 하였으므로 김씨(金)가 된다. 옥진의 어머니인 오도부인(묘심의 딸)과는 이부 자매이고, 흥도의 남편 기오공(홍기공의 아들)이나 문노의 아버지 비조부(호조의 아들)와는 이부 남매이다. 540년 남편 법흥왕이 붕어하고 그의 조카 진흥왕이 즉위하자 541년까지 1년간 섭정을 맡기도 하였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법흥왕과 함께 법류(法流) 혹은 묘법(妙法)이라는 법호로 영흥사(永興寺)라고 하는 절을 짓고 그곳으로 출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삼국사기》에 이러한 기록은 보이지 않으며, 《필사본 화랑세기》에는 보도부인이 법흥의 명에 따라 비구니가 되었다고 한다.[1]

가계[편집]

주석[편집]

  1. 《필사본 화랑세기》1세 위화랑 조 "法興使保道爲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