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벳 언더그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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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벳 언더그라운드
The Velvet Underground

1966년의 벨벳 언더그라운드. 왼쪽 위에서 시계 방향으로: 루 리드, 스털링 모리슨, 존 케일, 모린 터커, 니코.
기본 정보
장르
활동 시기1964–73, 1990, 1992, 1993, 1996
레이블
관련 활동
웹사이트www.velvetundergroundmusic.com
이전 구성원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는 뉴욕주 뉴욕 시에서 결성된 미국의 익스페리멘탈 록, 아방 가르드, 프로토 펑크, 얼터너티브/인디 록, 컨템포러리 록 밴드이다. 멤버는 루 리드(보컬, 기타), 존 케일(베이스, 비올라), 스털링 모리슨(기타), 모린 터커(드럼) 등이다. 한 때 두그 율, 니코, 앵거스 맥라이즈(봉고)가 멤버였다. 앤디 워홀이 프로듀싱을 맡고 흔히 바나나 앨범으로 불리는 《The Velvet Underground & Nico》 앨범이 유명하다. 리드는 1970년 8월 밴드를 떠나 솔로 아티스트로 성공의 길을 걸어갔고, 밴드는 두그 율에 의해 1973년까지 명맥을 이어갔다.[5]

비록 상업적 성공은 경험하지 못했지만, 밴드는 많은 평론가들에 의해 1960년대에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그룹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1960년대 중후반 활동하며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록 음악을 구현했고, 펑크 록, 뉴 웨이브, 아트 록, 칼리지 록, 얼터너티브 록 등에 영향을 끼쳤다. 1996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2004년 《롤링 스톤》이 뽑은 역대 최고의 아티스트 100선에서 19위에 올랐다.[6]

역사[편집]

1964–66[편집]

뉴욕의 시라큐즈 대학을 졸업한 루 리드는 픽 윅 레코드 회사에 취직하여 음악을 만드는 일을 했다. 비트닉 문화와 델모어 슈와츠의 시, 재즈 음악에 매력을 느끼게 되면서 픽 윅 레코드에서의 일에 싫증을 느낀 그는 1964년 그가 썼던 〈The Ostrich〉라는 곡을 계기로 만나게 된 존 케일과 함께 '프리머티브스(The Primitives)'라는 이름으로 그룹을 결성했다.[7] 곧이어 팀은 스털링 모리슨앵거스 맥라이즈를 영입했다. 그해 '워록스(The Warlocks)', '폴링 스파이크스(The Falling Spikes)' 등을 거쳐, 미국 언론인 마이클 리의 1963년 책 《더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의 제목이 느낌과 어감이 좋다는 이유로 벨벳 언더그라운드로 팀 이름을 바꿨다.[7] 주로 봉고를 연주하던 타악기 연주자 앵거스 맥라이즈는 공연의 리허설에 나타나지 않는 등의 태도로 밴드의 신뢰를 잃어 스털링 모리슨의 친구 여동생이던 모린 터커로 교체된다.[6][7]

적나라하고 퇴폐적이며 난해한 가사, 쓸쓸하고 우울한 목소리, 거친 사운드로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음악을 만들어낸 이들은 연주하던 클럽에서 쫓겨나기 일쑤여서 궁핍했다. 당시 뉴욕 언더그라운드의 대표적인 클럽이던 맥스 캔사스 시티에서 데뷔한 벨벳은 그곳의 단골이던 현대 미술가이자 영화 제작자인 앤디 워홀을 만났다.[7] 그는 벨벳의 음악에 주목하여 그들의 매니저로 나섰다.[5][7] 1966년 앤디 워홀의 멀티미디어 쇼 ‘익스플로딩 플라스틱 인에비터블’의 음악을 맡았고, 앤디 워홀의 권유로 데뷔 음반 녹음 작업에 독일 모델 니코(보컬)를 합류시켰다.[6]

1967–1996[편집]

앤디 워홀의 후원에 의해 1967년 첫 번째 앨범 《The Velvet Underground & Nico》는 탄생되었다. 단 하루 만에 녹음된 이 앨범은 음악도 대중들에게 낯선 데다 녹음 상태마저 거칠어 외면을 받고 말았다.[5] 후원자 앤디 워홀은 1967년 말이 되자 밴드의 활동에 흥미를 잃었고, 그러자 루 리드는 보스턴의 사업가 스티브 세스닉을 찾아갔다. 새 매니저는 리드에게 좀더 상업적인 방향을 추구하도록 요구했고, 이는 베이스와 오르간을 담당하는 존 케일의 심기를 상하게 했다.[8] 1968년 1월, 니코를 제외시킨 채 전위적인 두 번째 음반 《White Light/White Heat》를 출시했고,[9] 영국의 글램 록 뮤지션 데이비드 보위가 리메이크했던 〈White Light/White Heat〉, 〈Here She Comes Now〉 등의 대표곡을 남겼다. 그해 2월 존 케일이 루 리드와의 음악적 견해차로 팀을 탈퇴했고, 더그 율(베이스, 오르간, 보컬)이 팀에 가입했다.[6]

그룹은 1969년에 셀프 타이틀인 3집 앨범 《The Velvet Underground》을 발표했다. 이 음반은 비교적 편안한 분위기에서 만들어졌고, 가사와 사운드의 극단적인 면이 줄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존 케일이 밴드를 떠난 때문이기도 하고, LA의 녹음 스튜디오로 가는 도중 공항에서 평소에 사용하던 장비를 도난당했기 때문이기도 하다.[10] 1970년 4집 음반 《Loaded》를 발표했다. 《Loaded》의 발매 직전 루 리드가 팀을 탈퇴했고, 이후 더그 율이 주축이 되어 팀을 이끌어갔다. 1973년 팀은 해체되었고, 1990년, 1992부터 1994년, 1996년 일시적으로 재결성되었다.[6]

음반 목록[편집]

구성원[편집]

각주[편집]

  1. Bannister, Matthew (2007). 《White Boys, White Noise: Masculinities and 1980s Indie Guitar Rock》. Ashgate Publishing, Ltd. ISBN 978-0-7546-8803-7. 
  2. “Proto-Punk”. 《AllMusic. 2016년 9월 25일에 확인함. 
  3. Rosenberg, Stuart (2009). 《Rock and Roll and the American Landscape: The Birth of an Industry and the Expansion of the Popular Culture, 1955-1969》. iUniverse. ISBN 978-1-4401-6458-3. 
  4. Christgau, Robert (1977년 10월 24일). “Avant-Punk: A Cult Explodes . . . and a Movement Is Born”. 《Village Voice》. 
  5. “벨벳 언더그라운드”. 《네이버 기관단체사전》. 굿모닝미디어. 2016년 12월 29일에 확인함. 
  6.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 《두산백과》. 2016년 12월 29일에 확인함. 
  7. 한유선 (2000년 1월).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 )”. 《이즘》. 2016년 12월 2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6년 12월 29일에 확인함. 
  8.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 - White Light/White Heat”. 
  9. “벨벳 언더그라운드 & 니코”. 《네이버캐스트》.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0.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 - The Velvet Underground”.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