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저민 브리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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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중반의 모습

벤저민 브리튼 남작(Edward Benjamin Britten, Baron Britten, OM, CH, 1913년 11월 22일~1976년 12월 4일)은 영국작곡가이다.

어린 시절[편집]

브리튼은 잉글랜드서퍽 주에 있는 로스토프트에서 치과 의사인 아버지와 아마추어 가수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을 드러내며, 5세부터 작곡과 피아노와 비올라를 배웠다. 1927년 13세부터 프랑크 브리지에게 개인 교습으로 음악 이론과 작곡을 배웠다. 그 후 브리튼은 영국 왕립음악대학(Royal College of Music)에서 본 윌리엄스존 아일런드 밑에서 3년 동안 피아노와 작곡을 배웠다. 그의 첫 번째 작품인 신포니에타(Op.1)는 널리 주목을 받았다.

음악[편집]

1939년 영국을 떠나 북아메리카를 여행하던 중 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활동했고, 1945년 전쟁이 끝나자 《전쟁 레퀴엠》을 초연했다. 브리튼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곡은 1945년에 발표한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였다. 탁월한 매력을 가진 이 곡은 영어 가사로 작곡된 오페라 중 가장 폭넓게 공연되고 있다. 1946년잉글리쉬 오페라 그룹을 결성했고, 1948년앨더버러 페스티벌을 창설했다. 브리튼은 동성애자로, 1936년 그보다 3살 연상인 테너 피터 피어스를 만난 후, 작업을 여럿 같이 하였으며, 평생 동반자로 지냈다. 브리튼은 피어스를 염두에 두고 오페라 작품을 작곡하였다. 피어스는 《피터 그라임스》에서 타이틀 롤을 맡았고, 《빌리 버드》에서는 비어 선장, 《나사의 회전》에서는 퀸트 역을 맡았다.

대표 작품[편집]

오페라[편집]

명성[편집]

브리튼은 아방가르드 음악에 반대하여 독자적인 목소리를 확립했다. W. H. 오든과 같은 문학가를 추앙했다. 특히 성악과 결부된 곡에서 그의 재능은 두각을 나타냈는데 그의 가사들은 타락한 순수성이나 사회의 이방인들에 대한 시선들을 강조하고 있다. 《빌리 버드》, 《한여름 밤의 꿈》, 《피터 그라임스》 등의 오페라가 그의 대표작이다. 또한 그의 《전쟁 레퀴엠》은 문학에 대한 그의 사랑과 문학을 음악으로 표출하여 그의 능력을 입증하는 작품이다.

서훈[편집]

참조 문헌[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