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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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호크
Robert James Lee 'Bob' Hawke
BobHawke(cropped).jpg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레일리아제23대 연방 총리
임기 1983년 3월 11일~1991년 12월 20일
전임: 맬컴 프레이저(제22대)
후임: 폴 키팅(제24대)

출생일 1929년 12월 9일(1929-12-09) (85세)
출생지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주 보더타운
정당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
배우자 하젤 호크
블란츠 드 알푸겟
자녀 3명(현재 2명 생존)
웹사이트 밥 호크 재단 공식 홈페이지

로버트 제임스 리 '밥' 호크(Robert James Lee 'Bob' Hawke, 1929년 12월 9일 ~ )는 제23대 오스트레일리아 총리이자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의 당의장(1983~1991)이다.

성장 과정[편집]

빅토리아 주와 인접한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주의 접경마을 보더타운(Bordertown)에서 태어났으며, 서호주퍼스에서 자랐다.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대학교에서 법학사, 경제학사를 취득했다. '로즈 장학생'으로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인문학을 수학하였으며, 그 출발 직전(1947년)에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원이 되었다.

1956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국립 대학교에서 법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노조 및 정치 활동[편집]

1969년부터 10년 동안 자국내에서 가장 큰 '오스트레일리아 직종별 노동조합'(ACTU)의장을 지냈으며, 이 과정에서 독일을 모델로 하여, 일부 전통적 좌파 조합원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조합과 강령의 현대화를 주도했다. 재임기간 동안 베트남 전쟁에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으나 기타 사안에서는 미국과의 협력을 강조하였다. 1980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빅토리아 주 멜버른 시 지역의 Wills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하였다. 특유의 지도력으로 그해에 범야권의 지도자(Leader of the Opposition)가 되었다.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1985)

총리 재임 업적[편집]

1983년 3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온 보수정권을 끝내고 취임하였다. '오일 쇼크', 초고금리(1982년 존 하워드 재무장관 재임당시 사상 최고의 22%)와 더불어 개혁의 지체로 침체되어 있던 오스트레일리아에 그의 행정부 출범과 함께 새로운 개혁정책들이 등장했다. 노동당의 전통적 정책기조와 아울러 주변의 예상을 깨고, 재무장관(이자 그의 총리직 후임자) 폴 키팅의 주도로 대규모 부실은행들을 민간에 팔았고, 전격적 제 개편을 이끌어내는 등 경제정책에서 신자유주의적인 요소들을 흡수한, 강력한 개혁정책을 폈다. 미국영국보다 앞섰으며, 이는 이웃 뉴질랜드데이비드 롱이 노동당 행정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반면, 경제개혁으로 얻어낸 이득을 곧바로 사회복지에 환원, 전임 보수정권이 추진하지 못한 '메디케어'(Medicare, 건강보험 개편)를 도입했으며, 에이즈예방을 비롯한 각종 보건복지정책과 더불어 어보리진(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과의 화해 및 협력을 추진하는 등 많은 사회적 성과를 이끌어냈다. 환경 보호에도 적극적이어서, 당시에 유행했던 무분별한 과 (수력)발전소건설들을 저지시켰다. 국제적으로는 남태평양에서 자행한 프랑스의 핵실험에 반대하던 이웃 뉴질랜드를 도왔으나, 국내의 많은 반발에도 불구, 자국내 미군 주둔부대의 철수 요구를 무시하고 '협력 강화'를 명분으로 잔류하도록 조치했다.

현재[편집]

2008년 2월 13일, 연방정부 최초의 토착민 박해 사과문 발표날,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호크

그러나 1990년대 초반에 시작된 경제 불황의 고비 앞에서 당의 지도력이 흔들렸고, 1990년 총선을 간발의 차이로 승리한 이후에는 총리직을 폴 키팅에게 넘기고 1991년 말에 사퇴하였다.

2004년 2월 27일에 그는 대한민국 참여정부 1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주제발표를 했으며, 당시 탄핵 직전의 노무현 대통령과 장시간 동안 회담하였다. 주간지 한겨레21기사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은 밥 호크 당의장의 재임시절 업적에 관해 상당한 관심을 나타냈다. 열린우리당의 이후 행보에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쳤다.[1]

주석 및 참고자료[편집]

  1. 열린우리당 '제3의 길'로 가나, 오마이뉴스, 2004년 4월 27일작성

외부 연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