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그로피우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발터 아돌프 그로피우스
사망 미국 매사추세츠의 케임브리지
직업 건축가
배우자 알마 말러, 이세 프랭크
자녀 마논 그로피우스, 베아테 그로피우스

발터 아돌프 게오르크 그로피우스(독일어: Walter Adolph Georg Gropius, 1883년 5월 18일~1969년 7월 5일)은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독일건축가이다. 근대 건축의 4대거장 (르 코르뷔지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와 함께)의 한 명으로 여겨진다. 바우하우스의 창립자이며, 1919년부터 1928년까지 초대 교장을 맡았다. 하버드 대학 교수이며 인터내셔널 건축의 주창자다.

생애[편집]

독일, 데싸우에 있는 바우하우스 (1925–1926년에 건축)

발터 그로피우스는 베를린에서 발터 아돌프 그로피우스(Walter Adolph Gropius)와 마논 아우구스테 파울리네 샤른베버(Manon Auguste Pauline Scharnweber)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로피우스는 구스타프 말러의 아내이었던 알마 말러(1879-1964)와 결혼했다. 발터와 알마 사이의 딸로, 발터의 어머니 이름을 따라 지은 마논은 1916년에 태어났다. 마논은 열 여덟살에 소아마비로 세상을 떠났고, 작곡가 알반 베르크는 그녀를 기억하면서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였다.(그 곡은 "천사의 추억"에게 헌정되었다.) 그로피우스와 알마는 1920년에 이혼했다.(알마는 그때 그녀가 나중에 결혼하는 프란츠 베르펠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1923년에 그로피우스는 이세 프랭크와 결혼했고, 그들은 그로피우스가 죽는 날까지 함께 살았다. 그들 부부는 베아테 그로피우스를 입양했고, 그녀는 이름이 '아티'로 알려지기도 했다.

초기 활동[편집]

그로피우스는 그의 아버지와 큰 아버지인 마틴 그로피우스처럼 건축가가 되었다. 그로피우스는 그림을 그리지 못했고, 그가 살아있는 동안 계속해서 협력자들과 동료 해석자들에게 의존했다. 학교에서 그는 자신의 숙제를 완성시키기 위해 보조자를 고용했다.1908년 그로피우스는 실용주의 학파의 최초 구성원 중 하나이었던 페터 베렌스의 사무실에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발견했다. 이 당시 그의 직장 동료 중에는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 르 코르뷔지에, 다트리히 막스(Dietrich Marcks)등이 있었다.

1910년 그로피우스는 베렌스의 사무실을 떠났고, 동료 건축가인 아돌프 메이어와 함께 베를린에서 실제 건물을 건축했다. 그들은 이 기간 동안 건축된 중요한 모더니즘 건물들 중 하나의 명성을 함께 나누어가졌다. 독일 알펠트-안-더-라이네에 있는 "파구스 공장"이 그 건물로, 구두 제조법 중 하나인 라스트 방식으로 구두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이 건물의 유리로 만든 커튼월은, 기능을 반영한 형태라는 근대적인 원칙과 노동자 계층에 건강에 좋은 환경을 제공하려 했던 그로피우스의 관심 모두를 실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