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루아의 캐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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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서린 | |
|---|---|
| 잉글랜드 왕비 | |
| 재위 | 1420년 6월 2일 ~ 1422년 8월 31일 |
| 전임자 | 나바라의 조안 |
| 후임자 | 앙주의 마거릿 |
| 배우자 | 헨리 5세 오웬 튜더 |
| 왕가 | 혼전:발루아 왕가 혼후:튜더 왕가 |
| 부친 | 샤를 6세 |
| 모친 | 바이에른의 이자보 |
| 출생 | 1401년 10월 27일 |
| 사망 | 1437년 1월 3일 (35세) |
| 매장지 | |
발루아의 캐서린(Catherine of Valois, 1401년 10월 27일 ~ 1437년 1월 3일은 영국의 군주 헨리 5세의 왕비이다. 샤를 6세와 바이에른의 이자보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딸로 발루아의 이자벨의 동생이자 샤를 7세의 누나이다.
생애 [편집]
헨리 5세의 아버지인 헨리 4세는 일찌감치 캐서린을 자신의 아들과 결혼시킬 마음을 먹고 있었으나 이를 성사시키지 못하고 죽었다. 프랑스 왕실 또한 캐서린의 언니 발루아의 이자벨의 전례가 있었기 때문에 이 결혼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1415년 아쟁쿠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영국은 프랑스에 대한 압박 조치로서 캐서린과의 결혼 및 프랑스 왕위계승권을 요구했다. 캐서린의 어머니 이자보가 이 조건을 받아들이며서 1420년 6월 2일 헨리 5세와 캐서린은 트루아의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이듬해 2월 23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관식을 치렀다. 그 해 말, 윈저성에서 아들 헨리 6세가 태어났지만 남편인 헨리 5세가 1422년 8월 급사하는 비운을 겪었다. 캐서린은 이후 오웬 튜더와의 사이에서 리치먼드 백작 에드먼드를 비롯한 3남 1녀의 자식을 얻었다. 캐서린은 1437년 딸 마거릿을 낳고 죽었으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그녀가 두 번째 남편 오웬 튜더와의 사이에서 낳은 에드먼드 튜더는 이후 튜더 왕조를 연 헨리 7세의 아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