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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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중 미국의 반일선전 포스터. 일본인의 고정관념을 과장되게 표현하였다.

반일감정(反日感情, 영어: Anti-Japan sentiment)이란 일본이나 일본인에 대해 느끼는 반감을 말한다.

이러한 반일 감정은 러일 전쟁제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일본의 식민 지배하에 있었거나 대립되었던 국가들(미국, 중국, 러시아, 한국)에서 주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 정부에 국한된 반감에서부터 일본 문화 또는 일본인 자체에 대한 반감 등 정도가 다양하며 고조되면 일본인이나 일본인 관련 소유물에 대한 폭력 행위도 일어난다.

국가별 반일 감정[편집]

한국[편집]

한국에서의 반일 감정은 역사적 요인에 기초하였다. 삼국 시대 이후로 한국은 왜구의 침략을 자주 받았으며 한국인이 갖고 있는 반일 감정의 결정적 요인이 된 두 가지 사건이 있다.

  1. 조선시대 중엽 1592년에서 1598년까지 약 7년간에 걸쳐서 전 국토가 전쟁터가 된 임진왜란을 겪었다. 그 이전까지 조선 이전의 왕조에서 바라본 일본은 그저 왜구라 하여 재물이나 조금 약탈해가는 무리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았으며 이를 일본과 무역을 시작하고 일본에 곡물원조를 조금 해주면 완화될 것이라 믿었을 뿐 반일감정은 없었다.[출처 필요] 한국의 반일감정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임진왜란을 시작점으로 하였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잘 무마시켰기 때문에 조선과 일본은 250년 동안 별다른 마찰이 없었다.
  2. 조선시대 말 청일 전쟁을미사변 이후로 일본으로부터 내정 간섭을 당하면서 끝내 1910년 한일 합병으로 35년 동안 나라를 빼앗겼다. 한일합병의 주역들은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로 바로 모리 가문과 시마즈 가문 등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서군쪽 다이묘들의 후손들이었다. 이들은 친조선정책을 추구하던 도쿠가와 가문[출처 필요]을 뒤엎고 다시 조선을 침략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3. 일본의 역사적 잘못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임진왜란 당시 길을 빌려달라는 명목을 세우고 조선의 문화재 등(특히 도자기)을 약탈하였고 조선 백성들을 붙잡아 귀와 코를 베었으며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에는 731부대를 조직하여 대한민국,중국 외 기타 국가의 국민들에게 생체실험을 강행하였다.

위의 두 가지 사건은 한국인에게 잊지 못할 역사적 교훈으로 남아 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서 겪은 숱한 박해와 일본이 미국과의 태평양 전쟁을 시작하면서 벌인 민족말살정책을 비롯한 한국인 남성의 강제 징용[1], 여성의 위안부 차출 등은 1945년 광복이 된 후 60년이 지난 현재까지 미해결 문제로 남아있다. 더군다나 예전 일본 제국주의에 희생된 사람들이 아직 생존해 있으므로 이들이 가진 반일 감정은 단순히 교과서 상의 역사적 기록으로 보기는 어렵다. 반일 감정을 가지는 한국인은 일본인을 '쪽발이', '원숭이'와 같은 비하 명칭을 쓰는 경우도 있다.

일본의 침략식민행위를 대하는 일본인들의 태도와 관련 있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역사교과서'[2] 문제 위에 '과거사'에 대한 일본 우파 정치인들의 공공연한 망언이 겹쳐지며 일본 스스로 심심찮게 '반일감정'을 자극해왔다.[3]

미국[편집]

러일 전쟁(1904~1905)부터 일본이 원자폭탄 투하를 받던 날(2차 세계대전 일본 항복)까지 40년 동안 미국 선교사들은 배일감정(排日感情)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자 미정부는 미국내 일본국민을 네바다주 수용소에 수용하고 일본인 가계를 습격하는등 반일 감정이 가장 심하였다. 때문에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는 행정조치를 발동하여, 태평양 전쟁 기간 동안 자국내의 일본 국적 소유자들을 특정한 수용소에 수용하여야만 했다. 또 미국인들의 보복을 피하기 위해 일본계와 아시아계가 자원하여 미군에 입대해 일본군과의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다.

중국[편집]

1937년에 터진 중일전쟁과 난징 대학살 사건으로 인해 중국인들의 반일감정이 이어졌다.

최근 일본의 실효 지배하에 있는 섬인 센카쿠 열도(중국명 다오위다오)의 소유권을 놓고 심한 대립을 드러내고 있다. 일본 측은 이 섬을 일본 고유의 영토라 주장하고 있으나 중국 측은 청일 전쟁 당시 일본에게 빼앗겼다고 주장하며 섬 주위에 순시척을 파견했으며 중국인 몇 명이 이 섬에 상륙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일본 정부는 순시선을 파견하는 등의 대응조치를 취하였고 현재까지 그 분쟁이 이어져오고 있다.

반일 감정에서 비롯된 멸칭[편집]

중국[편집]

  • 르번구이쯔(日本鬼子) - 일본마귀란 의미로 일본인을 비하하는 말로 사용된다.
  • 샤오르번(小日本) - 작고 하찮은 일본이란 의미로 쓰인다.

미국[편집]

  • (Jap) - "일본의"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 '재퍼니즈'(Japanese)의 약어지만 2차 대전 이후에는 일본인에 대한 경멸적 용어로도 자주 쓰인다.

한국[편집]

  • 쪽발이 - 갈라진 일본 고유의 버선의 모양을 돼지의 발(족발)에 빗댄 비속어이다.
  • 왜구 - 13~16세기의 일본의 해적집단을 말하며 한반도를 수차례 침략한 일본을 해적떼와 같다는 의미로 비꼬는 표현이다.
  • 왜놈 - 왜국의 남자라는 의미로 일본이 7세기 중반에 국호를 일본이라 칭하기 전까지 쓰였던 왜라는 호칭에서 비롯됐다.
  • 원숭이 - 일본원숭이가 실제로 일본에 서식하는 것에 착안하여 사용하는 비속어. 간혹 경우에 따라 바나나도 같이 엮이기도 한다. 다른 경우로 일본 내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별명이 원숭이인 것을 착안해 원숭이라고 비하하기도 했다.
  • 성진국 - 일본의 지나친 성(性) 문화를 비꼬는 말. 선진국에서 변형되었다.

같이 보기[편집]

주석과 인용[편집]

  1. 강제징용 (强制徵用) 역사 용어: 일제 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조선 사람을 강제로 동원하여 부리던 일
  2. 배수경. "日역사왜곡교과서 또 통과될듯.. 이번엔 지유샤판", 《아시아경제》, 2009년 4월 9일 작성. 2009년 4월 23일 확인.
  3. 정대성. "독일 언론이 보는 반일감정과 역사교과서", 2005년 4월 16일 작성. 2009년 4월 18일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