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박윤선(1905년 12월 11일 ~ 1988년 6월 30일)은 평안북도 철산 출신의 신학자이다. 박윤선은 숭실대학교에서 공부한 후 미국의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수학한 후 화란 유학(1953. 10 - 1954. 3)을 하였다. 박윤선은 1979년 신구약주석을 완간하였다.

박윤선과 칼뱅[편집]

한국에서의 칼뱅 연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은 박윤선이었다. 비록 직접적으로 칼뱅 연구에만 전념하지는 않았으나 칼뱅 연구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인물은 박윤선(1905-1988)이다. 평양신학교를 거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칼뱅주의 신학을 공부한 박윤선은 강의와 저술, 그리고 주석발간을 통해 한국교회에 칼뱅칼뱅주의 신학을 소개하고 체계화하는데 기여하였다. 뿐만 아니라 고려신학교(1946-1960), 총신대학교( 1963-1974, 1979-1980),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1980-1988)에서 교수하면서 칼뱅칼뱅주의를 가르쳤고, 칼뱅 연구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점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박윤선은 화란 유학(1953. 10 - 1954. 3)을 통해 화란의 칼뱅주의 신학을 접하고 이를 한국에 소개한 실제적인 첫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C. Hodge), 메이첸(G. Machen), 워필드(B. B. Warfield) 등 미국의 칼뱅주의자들만이 아니라 카이퍼(A. Kuyper), 바빙크(H. Bavinck), 스킬더(K. Schilder), 크레이다너스(G. Grijdanus) 등 화란의 칼뱅주의자들의 신학과 전통을 한국교회에 소개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노력을 고려한다면 한국에서의 칼뱅 연구에 끼친 박윤선의 기여를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박윤선은 1979년 신구약주석을 완간하였는데, 6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주석을 집필하였다고 했다. 그 첫 세 가지 원칙은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한다, 칼뱅주의 입장에서 해석한다, 그리고 칼뱅주의 신학자들의 저서를 최대한 참고한다는 것이었다. 이것만 보더라도 그의 칼뱅주의에 대한 확신과 애정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저술과 설교, 삶에서 일관되게 칼뱅주의 신학에 충실하였던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