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바로스 하이렛딘 파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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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바로스 하이렛딘 파샤
1470년대? ~ 1546년 7월 4일

하이렛딘의 초상
별명 붉은 수염
하이레딘 레이스
유형 바르바리 해적(커세어)
탄생지 그리스 레스보스 섬
사망지 오스만 제국 이스탄불
소속 오스만 제국
활동기간 1500년 ~ 1545년
계급 제독
활동근거지 지중해
참여전투 프레베자 해전

바르바로스 하이렛딘 파샤의 해적기

바르바로스 하이레딘 파샤(터키어: Barbaros Hayreddin Paşa 또는 하이르 앗딘 Khair ad-din, ? ~ 1546년 7월 4일)은 알제코르세어오스만 제국해군 제독이다. 일명 바르바로사(붉은 수염)라고도 불린다.

생애[편집]

성장 배경[편집]

그리스레스보스 섬 태생으로, 정확한 출생년도는 알 수 없으나 1470년대로 추정된다. 오스만 제국의 봉건기사였던 스파히(sipahi) 출신의 아버지 야쿠브 아가와 그리스 출신 과부 카테리나 사이에서 출생했다. 하이렛딘의 본래 이름은 히지르(hizir)로, 형제로는 이샤크, 우르지, 일랴스, 히지르였다. 누이도 두 사람 있었다고 하나 자세히 알려진 기록은 없다. 아버지는 스파히에서 은퇴한 뒤 배를 이용한 운송업을 경영했는데, 형제 중 이샤크는 재정을 담당하고, 우르지와 일랴스는 운송을 담당하고 배를 탔다.

해적으로의 입신[편집]

가장 먼저 바다에서 명성을 떨친 것은 형 우르지였다. 그는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지중해북아프리카를 상대로 선원으로의 경험을 쌓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우르지와 일랴스가 트리폴리에서 돌아오던 중, 성 요한 기사단(로도스 기사단)의 습격을 받아 일랴스는 사망하고 우르지는 포로로 잡혔다. 우르지는 갤리선의 노를 젓는 노예가 되어 이집트로 팔려갔으며, 이후 3년 뒤에야 우르지는 비로소 풀려날 수 있었다. 이때 히지르는 알렉산드리아로 찾아와 형과 재회했다. 이후 우르지는 본격적으로 해적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소규모의 세력으로 로마 교황청제노바 공화국의 배들을 약탈하여 명성을 쌓았다. 우르지의 수염은 선명한 붉은 색이었기에 붉은 수염, 즉 바르바롯사라고 불리게 되고 이것은 훗날 하이렛딘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알제의 지배자[편집]

당시 북아프리카의 왕조들은 쇠약해져 있었고, 에스파냐기독교 국가들의 공세 앞에서 무력해져 있었다. 해적은 북아프리카 왕조들에게 군사력이자 동시에 수입원이었고, 튀니지 하프시드 왕조술탄골렛타의 항구를 사용해줄 수 있게 하는 조건으로 우르지와 동맹을 맺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르지와 튀니지의 술탄은 갈등을 겪었고, 결국 우르지는 튀니지를 떠나 알제로 가게 된다. 여기에서 우르지는 지야드 왕조의 술탄과 손을 잡고 에스파냐 군대를 몰아냈으며, 그런 와중 한 팔을 잃는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이베리아 반도에서 기독교인들에게 쫓겨난 무어인들을 북아프리카로 이주시켜 무슬림들에게 바바(아버지)라는 별명을 얻으며 흠모의 대상이 되었다. 이같은 지지를 바탕으로, 우르지는 1516년 쿠데타를 일으켜 스스로 알제의 술탄이 되었다.

오스만의 해군제독[편집]

틀렘센에서 에스파냐에 포섭된 토착 베두인과 에스파냐의 병사들이 포위해서 공격했고, 우르지는 분전하던 와중에 사망했다. 형의 자리를 이어받은 히지르는 이름을 하이렛딘(알라의 선물이란 뜻)으로 바꾸고, 알제의 지배자 자리를 물려받았다. 카를 5세에스파냐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하이렛딘은 스스로 알제를 오스만 제국의 셀림 1세에게 바치며 귀순했고, 이로써 예니체리 2000명과 대포 등 원조를 받았다. 이후 쉴레이만 1세가 술탄에 오른 뒤인 1533년, 이스탄불에 직접 찾아갔고, 쉴레이만은 하이렛딘을 해군제독 카푸단(Kaptan-ı Derya)에 임명했으며 북아프리카의 지도자로 천명했다. 이후 하이레딘은 알제로 돌아가지 않았으며, 당시 뒤떨어져 있던 오스만 제국의 해군 체제를 일신했다.

프레베자 해전[편집]

1538년, 하이렛딘은 프레베자 해전에서 제노바 출신 해군 제독 안드레아 도리아가 이끄는 신성 동맹에서 승리했다. 1년 뒤 신성 로마 제국의 카를 5세는 알제를 직접 정벌했으나, 때마침 찾아온 악천후로 큰 타격을 입고, 연이어 알제를 수비중이던 핫산 아가의 반격에 패배하고 물러섰다. 이후 30여 년 뒤 레판토 해전까지 오스만제국은 지중해의 패권을 유지했으며, 사실상 해상을 장악했다.

그리고 1546년, 하이렛딘은 이스탄불에서 천수를 다하고 사망했으며, 무라디 시난 레이스가 그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