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프 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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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프 기스(Miep Gies 1909년 2월 15일 -)는 제2차 세계 대전중 《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안네 프랑크 일가의 은신을 도왔던 네덜란드 사람이다. 안네 일가의 체포시, 안네의 일기 원고가 독일비밀경찰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고 보존하였다.

목차

[편집] 생애

[편집] 안네일가와의 만남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1920년 1차 세계대전 이후 식량난이 심각했던 빈에서 네덜란드 레이덴으로 피난하여 이후 네덜란드에 거주하였고, 1922년에는 암스테르담으로 옮긴다. 1933년향신료 회사인 오펙타의 임시 비서직에 지원했다가 팩틴제조업에 종사하던 사업가이자 안네의 아버지인 오토 프랑크와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안내데스크와 고객대응의 임시직에 준하는 업무를 맡았으며, 나중에는 정규행정직으로 일했다. 그녀는 오토 프랑크의 가족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1941년에는 얀 기스와 결혼하여, 그녀의 남편도 역시 오토 프랑크의 가족과 친하게 지냈다. 그녀는 네덜란드나치당 여성연합에 가입하라는 권유를 거절해서 오스트리아로 강제송환하겠다는 위협에 시달렸다. 그녀는 네덜란드어독일어에 모두 능통해서, 프랑크가문과 잘 통했으며, 그 가정에 정기적으로 방문했다.

[편집] 은신처 사람들에 대한 협조

기스 부부와 직장동료인 빅터 퀴흘러, 요하네스 클레이만, 벱 보스퀘일등은 프랑크 일가와 헤르만 판 펠스 일가(한국어판 《안네의 일기》에서는 반 단씨 일가 또는 판 단 씨 일가로 번역되어 있다.),치과의사 뒤셀을 암스테르담 프리센그라흐트에 있는 회사사무실건물의 은신처에 1942년 7월부터 1944년 8월까지 숨겨주고 심부름을 해주면서 은신생활을 여러모로 지원했다. 실제 《안네의 일기》를 보면 미프가 은신처 사람들의 심부름을 충실하게 해주었다고 나와 있다. 법률상으로 미프와 유대인 은신을 도운 다른 네덜란드인 조력자들은 모두 총살형에 처해지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보통 4~6개월 정도의 강제노동에 처해졌다. 1944년 8월 4일, 익명의 정보원에 의하여 게슈타포는 이 은신처 건물을 급습했고, 은신자들은 전원 체포되었다. 또한, 빅터 퀴흘러와 요하네스 클레이만은 유대인 은닉죄로 체포되었다. 전후, 이 익명의 제보자를 찾기 위한 각각 독립된 세 차례의 수사가 실시되었고 창고지기등이 용의자로 지목되었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미프는 게슈타포가 은신처를 뒤질때, 《안네의 일기》로 보이는 원고들을 압수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원고들을 모아 보존했다. 미프는 안네 일가의 무사귀환을 바랐으나, 안네는 베르겐 베르젠의 수용소에서 병사했으며, 안네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만이 소련군에 의해 해방된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다. 미프는 자신이 보존하고 있던 안네일기의 원고를 오토 프랑크에게 건네 주었다. 오토 프랑크는 1947년에 이 원고에 의거하여 안네의 일기를 출판했다.

[편집] 전후의 생애

미프 자신은 오토 프랑크에게 안네의 일기 원고를 건네줄 때까지 원고의 내용을 읽어보지 않았는데, 후에 그녀는 만약에 자신이 전쟁중에 그 원고를 읽었었다면,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유대인은닉을 도운 죄)가 될 수 있으므로 파괴했을 거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그녀는 오토 프랑크의 설득에 의해 안네의 일기 제 2판을 읽었다.

안네의 일기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서, 기스 부부는 네덜란드에서 명사가 되었으며, 다른 조력자들과 함께 라울 발렌베리 상 수상, 이스라엘 정부가 수여하는 열방의 의인(Righteous Among the Nations)에 선정되었다. 1995년에는 독일연방정부공로훈장과 야드바셈상을 수상하였으며, 네덜란드베아트리스 여왕으로부터 작위를 받았다.

슬하에 아들(폴 기스) 하나를 두고 있다. 현재도 그녀는 노르트홀란트 주에 거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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