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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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 분류 읽는 법미역
생물 분류
계: 크로말베올라타계
문: 부등편모조문
강: 갈조식물강
목: 다시마목
과: 미역과
속: 미역속
종: 미역
(U. pinnatifida)
학명
Undaria pinnatifida
(Harvey) Suringar, 1873

미역바다에서 서식하는 미역과갈조류이다. 국으로 끓이거나 무침을 해서 식용한다. 무기질, 비타민섬유질 성분, 점질성 다당류, 아이오딘을 함유하고 있다.

중국일본, 한국 등 동북 아시아 지역에서 주로 이용되는 식품으로, 한국 기록에는 고려 시대인 12세기에도 먹었다는 기록이 보이고, 중국 기록에는 8세기에 이미 한국 사람들이 먹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등 오래전부터 식생활에 널리 사용되었다. 한국에서는 산모에게 미역국을 먹이는 풍습도 있다. 한방에서 미역은 해체(海菜)나 감곽(甘藿), 자체(紫菜), 해대(海帶) 등으로 불린다.

미역과 정어리 요리.

분포[편집]

종래에는 주로 한국, 일본, 중국의 비교적 낮은 수온의 온대성 연안지역에 자연 서식하여 왔으나, 최근 수십 년간 남태평양 동안, 북대서양 동안, 지중해, 오스트레일리아 남안에서 발견되어 빠르게 침투하는 현상이 발견되고 있다. [출처 필요] 대한민국 전 해안에 분포하나, 한류와 난류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지역에는 분포하지 않는다. 겨울에서 봄에 걸쳐서 주로 채취되며, 이 시기에 채취된 것이 가장 맛이 좋다.

이용[편집]

다시마와 함께 전복 양식의 주요 먹이로 이용되며, 주로 한국, 일본, 중국 등지에서만 식용으로 이용된다. 식이섬유와 칼륨, 칼슘, 아이오딘 등이 풍부하여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고, 산후조리, 변비와 비만 예방, 철분과 칼슘 보충에 탁월하여 일찍부터 애용되어 왔다.

역사[편집]

당나라서견(徐堅 : 659~729)과 그의 동료들이 지은 백과사전 《초학기》(初學記)에 “고래가 새끼를 낳은 뒤 미역을 뜯어 먹어 산후의 상처를 낫게 하는 것을 보고 고려(=고구려) 사람들이 산모에게 미역을 먹인다”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1] 송나라서긍이 지은 《고려도경》에서는 ˝미역은 (고려에서) 귀천이 없이 널리 즐겨 먹고 있다. 그 맛이 짜고 비린내가 나지만 오랫동안 먹으면 그저 먹을만 하다.˝라고 나와 있다.[2]

조선 헌종실학자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산부계곽변증설〉(産婦鷄藿辨證說)에는 구전 전승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3]

어떤 사람이 바다에서 헤엄치다가 막 새끼를 낳은 고래에게 먹혀 배 속에 들어갔더니 그 안에 미역이 가득 붙어 있었으며 장부(臟腑)의 악혈이 모두 물로 변해 있었다. 고래 배 속에서 겨우 빠져나와 미역이 산후 조리하는 데 효험이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렸다.

고려시대에 이미 중국에 수출했다는 기록도 있다. 《고려사》에는 “고려 11대 문종 12년(1058년)에 곽전(藿田 : 바닷가의 미역을 따는 곳)을 하사하였다”라는 기록과 “고려 26대 충선왕 재위 중(1301년)에 미역을 원나라 황태후에게 바쳤다”라는 기록도 있다.[2]

민간에서는 산후선약(産後仙藥)이라 하여 산모가 출산한 후에 바로 미역국을 먹이는데, 이를 ‘첫국밥’이라 하며, 이때 사용하는 미역은 ‘해산미역’이라 하여 넓고 긴 것을 고르며 값을 깎지 않고 사오는 풍습이 있다.[2]

동의보감》에선 “해채는 성질이 차고 맛이 짜며 독이 없다. 효능은 열이 나면서 답답한 것을 없애고 기(氣)가 뭉친 것을 치료하며 오줌을 잘 나가게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2]

최근에는 양식기술의 발달로 가공품으로 많이 이용·수출되고 있으며, 국이나 냉국 혹은 무침·볶음·쌈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식용한다.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각광받고 있다.[2]

참고 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미역의 침입 김희봉(수필가), 《미주한국일보》 2009년 8월 29일.
  2. 완도 미역 《kocca 문화컨텐츠닷컴》
  3. 미역냉국, 무더위 싹~ 《정책브리핑》 〈Weekly 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