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미국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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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전국 | |||
| 지휘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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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718명 | 3만 2000명 | ||
| 피해 상황 | |||
| 1,733명 전사 4,152명 부상 |
11,550명 전사 민간인 800명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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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미국 전쟁은 1846년과 1848년 사이 멕시코와 미국 사이에 발생한 군사 분쟁이다. 맥락에 따라서 멕시코 전쟁, 미국 침략 전쟁, 그리고 당시 미국 대통령인 제임스 포크에서 따서 포크의 전쟁로 불리기도 한다.
목차 |
[편집] 배경
전쟁의 기원은 텍사스 혁명의 시발점에서 멕시코와 미국이 각각 텍사스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 것에 있다. 텍사스는 멕시코와 싸워 독립을 쟁취한 지 오래지 않았으며 멕시코는 텍사스를 반란 지방으로 인식해 독립을 인정치 않고 있었다. 전쟁의 근본 이유는 미국의 서진 확장 경향과 최근 멕시코 독립 전쟁을 통해 독립한 멕시코의 정치적 불안정이였다. 미국은 멕시코와 협상을 하는 것이 어려운 시점이였으며 멕시코는 북부 지방을 관리하는 것이 어려운 시기였다. 텍사스는 전쟁을 지지했다. 미국 내부에서 휘그당이 거세게 전쟁에 반대했다. 멕시코에서 전쟁은 방어 전략상 필요 수순으로 여겨졌다.
전쟁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멕시코가 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를 미국에 팔아넘기게 된 것이었다. 미국 정계는 새로 획득한 주에서 노예 제도와 관련하여 격렬한 논쟁을 벌여 1850년의 타협을 보았다. 멕시코에서는 정치적 혼란기가 계속되어 전쟁은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또한 이 전쟁은 유럽의 1848년의 혁명과 거의 때를 같이하고 있어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다.
[편집] 역사적 맥락
멕시코-미국 전쟁 이전 이미 미국의 산악인들과 무역상들은 산타 페 길과 캘리포니아 길(California Trail)을 통해 이 땅에 자주 접촉하고 있었다. 미국 상선들은 활발하게 무역을 하고 있었다. 이 지역은 30년간 멕시코 공화국의 영토였으며 그 이전에는 에스파냐 제국의 영역이었다.
미국이 루이지애나 주를 구입한 이후 에스파냐 제국의 토지 제공에 힘입어 미국의 백인 정착자들이 서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멕시코가 독립 전쟁 이후 이 영토를 거느리게 된 이후로도 서향 이민은 계속되었다. 멕시코 정부는 자국의 국교인 로마 가톨릭이 아니라 개신교를 믿는 이들 정착자들과 불편한 관계를 형성했다. 멕시코가 전국적으로 노예 제도를 폐지 했을 때에 일부 백인 이민자들은 법의 이행을 거부했다. 멕시코 중앙 정부의 간섭과 하나되어 텍사스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멕시코 독립 전쟁으로 인하여 약화되고, 재정 능력을 상실한 맥시코 정부는 수도에서 몇천 킬로미터씩이나 떨어진 북방 지방을 제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텍사스는 산타 안나가 지도하는 멕시코 군대를 물리치고 1836년 독립을 달성하였다.
[편집] 전쟁 과정
그 뒤 텍사스 공화국은 연방에 가입해 미국의 한 주가 되고 미국과 멕시코의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 등지의 문제로 인해 갈등이 생겼다. 그리고 1846년 리오그란데에서 미군의 도발로 충돌이 일어나 미군 16명이 멕시코군에게 살해당하자 이 사건으로 1846년 5월 미국이 멕시코에 선전 포고를 하면서 전쟁이 일어났다. 미군은 멕시코군이 4배나 되는 대군으로 멕시코군을 격파하여 뉴멕시코의 수도 산타페를 점령했고 1847년 3월에는 역사상 최초의 수륙양용 군사작전을 수행해 멕시코 베라크루스에 생륙했다. 멕시코 사령관은 항복하고 1847년 9월 14일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는 미군에게 함락되었다. 결국 1848년 1월 멕시코는 평화 협정을 요청해 1848년 2월 2일 멕시코 과달루페 이달고에서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을 맺어 전쟁은 종결되었다.
[편집] 결과 및 영향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으로 미국은 겨우 1,825만 달러를 지급하고 멕시코로부터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와이오밍 주 등을 할양 받아 한반도 넓이의 15배에 달하는 300평방킬로미터의 영토를 넓혔다. 미국은 겨우 멕시코인들에게 진 빚 325만 달러를 떠맡도록 하였고 군사비 지출도 9,800만 달러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 직전 일부 미국 여론들은 전쟁을 반대했는데 지식인 헨리 D. 소로는 전쟁세를 내는 대신 감옥에 가는 것으로 항의했고 랠리 에메슨은 미국의 폭력을 부끄러워하며 멕시코가 미국에게 독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남북전쟁의 전쟁 영웅 율리시스 그랜트 역시 이를 두고두고 한탄했다고 전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