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특목
| 청나라의 추존황제 | |
| 재위 | 1405년 ~ 1433년 |
|---|---|
| 별명 | 맹가첩목아 (猛哥帖木兒) |
| 이전 황제 | 시조 |
| 다음 황제 | 순황제 |
맹특목(猛哥帖木耳/孟特穆, Möngke Temür (1370년~1433년))는 오도리만호부(斡朶里萬戶府)의 만호이자 제1대 건주좌위지휘사(建州左衛指揮使)(재위 1405년 ~ 1433년)이며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의 6대조로 성은 맹가(猛哥), 휘는 첩목아(帖木耳)이다. 후에 청 태조에 의해 추숭되어 추존된 시호는 택왕(澤王)이었고, 순치 5년(1648년), 순치제에 의해 다시 추존되어 [1] 묘호는 조조(肇祖), 시호는 원황제(原皇帝)이다. 애신각라맹특목(愛新覺羅孟特穆)라고도 한다.
목차 |
생애 [편집]
시조 포고리옹순(布庫里雍順)의 첫 정착지는 삼성(三姓, 하얼빈 동북쪽 송화강 언덕)이었다. 원나라는 이곳에 3개의 만호부를 설치하고 여진인에게 관작을 주어 다스리게 하였다. 포고리옹순은 백두산 북쪽 아타리성(俄朶里城/鄂多理城, 악다리성)으로 옮겨 살았고 국호(國號)를 만주라 하였다. 원나라가 설치한 만호부 중 오도리만호부(斡朶里萬戶府)의 만호직을 누르하치의 선조가 세습하였으며, 맹가첩목아는 만호직을 세습하였다.
맹특목은 몽골 제부족의 잦은 침략을 피해 후리가이만호부(元良哈萬戶府)의 만호인 꾸룬아하추(古論阿哈出)와 함께 남하하였다. 꾸룬아하추는 혼하 상류의 풍주(風州, 길림성 해룡현)에 거주하였고 맹특목은 더 남하하여 조선의 회령지방에 거주 하였다.
1388년 명나라는 여진족의 몽골과의 결합을 우려하여 건주여진의 세 종족 오도리, 후리가이, 투오웬에게 여진족에게 관직을 하사하고 위소(衛所)체제에 편입시켰으며, 조공과 마시(馬市여진과의 교역을 위해서 국경에 열던 무역장소)의 경제적 이익을 제공했다.
1403년 명나라 정부는 본격적으로 송화강,흑룡강 지역의 여진족을 감시하기 위해 각 여진부족의 우두머리들에게 명나라 관직과 작위을 제수하여 이곳을 다스리고자 하였다. 1403년 풍주(風州:길림성 해룡현)에 거주하던 후리가이부의 꾸룬아하추는 명나라에 귀부하여 건주위지휘사(建州衛指揮使)라는 관직을 제수받고 이 지역을 통치 하였다. 이로부터 명나라는 꾸룬아하추와 맹특목의 세력을 합쳐 건주여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조선은 1392년 7월, 조선 태조 이성계가 조선 국왕으로 즉위하자 여진족을 초무하고자 하였다. 조선 태조는 태종이방원을 경흥(慶興)으로 보내 고조부 목조(穆祖)와 그 부인을 모신 덕안릉(德安陵)을 수축했다. 조선왕조를 세운 시조의 뿌리가 함경도에 있음을 현창하고, 그를 바탕으로 주변의 여진족들을 확실히 장악하려는 의도였다. 1395년 마침내 맹특목은 한양으로 와서 조선 태조에게 토산물을 바치고 머리를 조아렸다.[2] 조선은 태조가 맹특목에게 경성등처만호(鏡城等處萬戶)의 직사(職事)를 제수하였으며 태종은 상장군(上將軍)의 직사(職事)을 제수하였으나[3] 맹특목은 1411년 회령을 떠나 풍주로 이동하여 후리가이부와 합류 하였고, 이듬해인 1412년에 명나라에 귀부 하였다. 명나라는 이에 건주위에서 좌위(左衛)를 분리하여 그에게 건주좌위지휘사(建州左衛指揮使)를 제수 하였으며, 중국의 성 동(童)을 하사하였다.
1433년 개원천호(開原千戶)였던 호륜여진의 우적합부(兀狄哈部)의 추장인 양무타우(楊木塔兀)를 수령으로 하는 7성야인반란이 일어나게되어, 명나라에서는 요동첨사 배준을 회령으로 파견하여 이를 진압케 하였고, 맹특목에게도 협공 지원토록 하였다. 이 싸움에서 맹특목과 그의 장자인 권두(權豆)는 전사하였고, 차자인 충선은 포로로 잡혀갔다.
가족 [편집]
아들들 [편집]
동생 [편집]
- 범찰(凡察)
주석 [편집]
- ↑ 〈다산시문집〉, 제 15권 서(敍) 대청 세계략(大淸世系略).. 한국고전변역원. 2008년 12월 13일에 읽어봄.
- ↑ 〈조선왕조실록〉, 태조 8권, 4년(1395 을해 / 명 홍무(洪武) 28년) 윤9월 8일(기사) 1번째기사.. 국사편찬위원회. 2008년 12월 13일에 읽어봄.
- ↑ 〈조선왕조실록〉, 세조 16권, 5년(1459 기묘 / 명 천순(天順) 3년) 4월 16일(정묘) 1번째기사... 국사편찬위원회. 2008년 12월 13일에 읽어봄.
| 전 임 없음 |
제1대 건주좌위지휘사(建州左衛指揮使) 1405년 - 1433년 |
후 임 범찰(凡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