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트농 후작부인 프랑소와즈 도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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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rre Mignard - Françoise d'Aubigné, marquise de Maintenon (1694).jpg

맹트농 후작부인 프랑소와즈 도비네(Françoise d'Aubigné, Marquise de Maintenon, 1635년 11월 27일 ~ 1719년 4월 15일)은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정부이다.

생애[편집]

위그노 집안 출신인 프랑수아즈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친척의 손에 자랐다. 그녀는 1651년 25세 연상의 희극 시인 폴 스카롱과 결혼했고, 그의 살롱을 주도하면서 당대의 지식인들, 귀부인들과 교류했다. 그 가운데에는 루이 14세의 또다른 애첩이었던 몽테스팡 후작 부인도 있었다. 1660년 남편이 죽고 난 뒤,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한 프랑수아즈는 루이 14세의 서자들이었던 몽테스팡 부인의 아이들을 돌보는 가정교사가 되었다. 프랑수아즈는 점차 궁정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1674년 루이 14세는 그녀에게 맹트농 후작 부인의 지위를 내려주었다. 프랑수아즈에 대한 루이 14세의 총애가 날로 더해가는 것과는 달리 몽테스팡 부인은 몰락의 길을 걸었고, 마침내 궁정을 떠나게 되었다. 이후 프랑수즈는 왕비 오스트리아의 마리 테레즈와 사별한 루이 14세와 결혼했고, 신분의 차이 때문에 이 결혼은 공표되지 않았다. 그 후 종교적인 영향력을 미쳐 궁정에 다소 엄격한 분위기를 주었다. 1714년 루이 14세가 죽고 난 뒤에는 프랑수아즈도 궁에서 물러났고 어린 루이 15세를 대신해 섭정을 맡고 있었던 오를레앙 공은 그녀에게 48,000 리브르에 달하는 연금을 지급했다. 그리고, 생-시르에 은퇴해 가난한 귀족의 딸들을 교육하는 학교를 세웠다. [1]

주석[편집]

  1. 페르낭 브로델 (1995). 〈제6장 기술의 보급: 혁명과 지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Ⅰ-2 일상생활의 구조 下》, 주경철 옮김, 서울: 까치, 620~621쪽. ISBN 89-7291-084-8 “…일찍 고아가 되고 가난했으나 스카롱이라는 시인과 결혼한 후 귀부인들과 교제하게 되었다. 남편이 죽은 후 왕실의 가정교사를 하다가 루이 14세의 연인이 되었으며, 마리아-테레지아가 사망한 후에는 국왕과 비밀리에 결혼했다. 그 후 종교적인 영향력을 미쳐 궁정에 다소 엄격한 분위기를 주었으며, 국왕 사후에는 생-시르에 은퇴해 가난한 귀족의 딸들을 교육하는 학교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