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다이라 이에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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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다이라 이에키요(일본어: 松平家清, 1566년 ~ 1611년 2월 3일)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서 에도 시대 전기에 걸쳐 도쿠가와 씨(徳川氏)의 가신으로 활약한 무장으로, 다케노야 마쓰다이라 가의 6대 당주이다. 통칭은 요지로(与二郎).

5대 당주 마쓰다이라 기요무네(松平清宗)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후코즈 마쓰다이라 가 요시카게(好景)의 딸이다. 정실은 히사마쓰 도시카쓰(久松俊勝)의 딸로, 이에야스와는 아버지가 다른 남매간인 덴케이인(天桂院)이다. 이에키요의 딸들은, 겐로쿠 아코 사건(元禄赤穂事件)으로 유명한 아사노 나가노리(浅野長矩)의 증조부인 아사노 나가시게(浅野長重), 혼다 야스노리(本多康紀), 후코즈의 마쓰다이라 다다토시(松平忠利)에게 시집갔다.

생애[편집]

다케노야 마쓰다이라 가의 무장으로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게 사관하여, 성인식 때에는 조부 이래의 돌림자인 「기요(清)」의 앞에, 이에야스로부터 「이에(家)」 한 자를 받아서 이에키요라고 칭했다. 1590년(덴쇼 18년), 이에야스가 간토로 이봉되었기 때문에, 그때까지의 공을 인정받아 무사시 국 하치만야마(八幡山)에 1만 석의 영지를 받았다. 이 구니가에(国替え)의 도중에 정실 덴케이인이 여아를 출산했지만, 결국 죽는다.

1600년(게이쵸 5년)의 세키가하라 전투 때에는 오와리 국 기요스 성(清洲城)의 수비를 책임졌다. 전후, 이에야스로부터 그 공적을 인정받아, 미카와 국 요시다 3만 석의 영지를 받아서, 요시다 번의 초대 번주가 되었다.

1611년 2월 3일(게이쵸 15년 12월 21일)에 45세로 죽는다. 뒤는 적남 다다키요가 이었다.

법명은 엽운전상청보원(葉雲全霜清宝院)이며, 묘소는 아이치 현 가마고리 시의 전영사(全栄寺, 후에 류타이잔龍台山 덴케이인으로 개칭)에 있다.


전 임
마쓰다이라 기요무네
제6대 다케노야 마쓰다이라 가 당주
1600년 ~ 1610년
후 임
마쓰다이라 다다키요
전 임
-
제1대 요시다 번 번주 (다케노야 마쓰다이라 가문)
1600년 ~ 1610년
후 임
마쓰다이라 다다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