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야마 마사오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 1914년 ~ 1996년)는 일본의 정치학자로서 일본의 정치 사상사의 권위자이다. 1937년에 동경 제국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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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생애
그는 마루야마 간지의 둘째 아들로 오사카에서 1914년에 태어났다. 그는 동경제국대학에서 군부와 관료주의에 비판적이었던 난바라 시게루의 가르침을 받았다. 1937년 동경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그는 1940년 동경제국대학의 조교로 근무하던 중 국가학회잡지에 기고를 시작하여 1944년까지 세편의 논문을 실었는데 이것이 일본정치사상사연구이다. 1944년 이등병으로 입대하여 평양에서 근무하다 각기병이 발생하여 귀국하였다. 1945년 3월 군복무를 위해 히로시마에 있었던 그는 원폭과 패전을 그 곳에서 맞은 후 대학으로 돌아왔다. 이후 그는 바로 일본의 전쟁 이전의 군국주의와 전체주의에 대한 '초국가주의의 논리와 심리'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전후 일본 사상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60년대 후반 학생들에 의해 자기기만적 전후 민주주의의 상징이라고 배척되었으며 건강이 악화된 그는 1971년에 사임하였고, 1974년에 동대학의 명예교수가 되었다.
[편집] 사상
일본의 2차대전 패전후 '초국가주의의 논리와 심리'라는 글을 세카이(世界)지에 투고한 그는 '초국가주의(ultra nationalism)' 맹렬하게 비판하고 일본제국주의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분석하였다. 그의 초국가주의 비판은 일본제국의 통치원리가 중립에 기초한 공공이익의 추구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모든 가치를 천황제를 통해 독점하는 데에 있었다는 점에 집중된다. 즉 그는 일본제국의 전체주의가 개인의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침해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국가로서의 존재이유를 망각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는 개인의 자유라든가 민주주의라든가 하는 보편적인 가치를 신봉하지 않는다. 국가가 여러 가지 특수한 가치들로부터 중립을 지켜야 함에도, 초국가주의는 가치의 독점에 집중함으로써 특정한 가치, 즉 ‘천황=지고의 선’을 보편화한 데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1] 또한 그는 전형적인 헤겔리안으로, 서유럽의 근대를 인류 역사의 절대적 가치로, 전 인류의 목표로 승화시킨다. 따라서 동양에서 유일하게 중세를 거친 일본은 동양에서 유일하게 근대도 성취하게 된다고 본다. 이러한 서구중심주의적 역사관을 뼈속까지 체화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편집] 한국어 번역서
- 일본정치사상사연구, 한국사상사연구소, 김석근 번역, 199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