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다다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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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다다나리
(李忠成)
Tadanari Lee.jpg
개인 정보
로마자 표기 Tadanari Lee
국적 일본 일본
출생 1985년 12월 19일(1985-12-19) (27세)

일본 일본 도쿄 도 니시토쿄 시

182cm
포지션 공격수
클럽 정보
현 소속팀 600px-Colori di Southampton.png 사우샘프턴
등번호 19
청소년 클럽
1998-2000
2001-2003
일본 요코가와 무사시노 FC 주니어 유스
600px Rosso e Blu con T Blu bordata di Bianco.png FC 도쿄 유스
클럽1
연도 클럽 출장수 (골)
2004
2005-2009
2009-2012
2012-
600px Rosso e Blu con T Blu bordata di Bianco.png FC 도쿄
600px Giallo con sole Arancione e R nera.png 가시와 레이솔
600px Viola con tre frecce Bianche.png 산프레체 히로시마
600px-Colori di Southampton.png 사우샘프턴
00000 00(0)
00108 0(24)
000670(25)
국가대표팀2
2004
2008
2010-
대한민국 대한민국 U-19
일본 일본 U-22
일본 일본
01 00(0)
012 0(4)
05 00(1)

1성인 클럽 출장수와 골은 정규 리그 기록만 세며,
2010년 12월 17일 기준입니다.
2국가대표팀의 출장수와 골은
2011년 6월 1일 기준입니다.

리 다다나리(일본어: 李忠成 (りただなり), 1985년 12월 19일, 도쿄 도 ~ )는 일본으로 귀화한 재일 한국인 4세 출신 축구 선수로, 한국어 이름은 이충성(李忠成, Lee Chung-Sung), 일본식 통명은 오야마 다다나리(大山忠成)이다.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포지션은 공격수이며 현재 프리미어리그사우샘프턴 FC 소속이다.

2004년 대한민국 U-19 축구 국가대표팀 예비 후보로 뽑혔고 이충성은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보다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동하고 싶었기 때문에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동하였던 한국인 선수의 권유로 파주의 훈련소에 들어오게 되었다.

일본에서 살아가면서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았고 마음 속에서 한국을 의지할 대상으로 삼았었으나 파주에서 청소년 대표팀 동료들 몇 명의 텃세로 "반(半)쪽바리"라는 마음 아픈 소리를 듣고 이제까지 일본에서 재일 한국인으로 살아가면서 한국 국적을 유지하던 마음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 부상까지 겹쳐 부진하였지만 점차 실력을 발휘하였다. 2006년 일본 올림픽대표팀(U-23) 감독이 귀화를 권유하자 2007년 일본어 이름인 리 다다나리로 개명하고 일본으로 귀화하였다. 2008년에는 일본 올림픽 대표팀(U-23)의 일원이었으며 FC 도쿄 시절 같은 팀 동료였던 오장은 선수와 절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가시와 레이솔에서 뛸 때는 같은 팀의 홍명보가 달았던 20번을, 산프레체 히로시마로 이적하였을때는 같은 팀의 노정윤이 달았던 9번을 달아 화제가 되었다. 일본오스트레일리아2011년 AFC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연장전 후반 4분에 결승골(이 골은 그의 A매치 첫 골이기도 하다)을 넣어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우승컵을 안겼다.

목차

생애 [편집]

1985년 12월 19일 대한민국 국적의 재일 교포 4세로 태어났다. 재일 교포 3세인 이충성의 아버지는 원래 실업구단인 요코하마 트라이스타 SC 소속의 축구 선수였던 경력을 가지고 있다. 도쿄 조선 제9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어릴 때 현지 코믹 네요 FC에 재학을 하고 있을 당시 팀 동료로 이치카와 마사히코가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요코가와(현 요코가와 무사시노 FC) 주니어 유스팀의 시험을 통과하였기 때문에, 6학년에서 같은 팀 연습에 참가하게 되었다.[1]

2004년 박성화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U-19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뽑혔고, 부상으로 부진했지만 점차 실력을 발휘하였다. 2007년 일본어 이름인 리 다다나리(Lee Tadanari)로 개명하고 일본으로 귀화하였다.[2]

2011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AFC 아시안컵에서 자케로니 감독이 이끄는 일본 대표팀에 처음으로 발탁되었다. 2011년 1월 9일 조별 예선 1차전 요르단과의 후반전에 교체 출전하여 A매치 첫 출전을 하였지만, 그다지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하였다. 1월 29일 킹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오스트레일리아와 결승전에서는 연장 전반 8분부터 마에다 료이치와 교체투입되어 연장 후반 4분 대표팀의 첫 골이자 결승골을 넣어서 일본 대표팀이 2011년 아시안컵 우승을 달성하는데 기여하였다.[3]

2012년 1월 프리미어리그사우스햄튼으로 이적하였다. 이적 후 2골을 넣었으나 오른쪽 발가락 골절 부상 후 수술을 받아 시즌아웃 되었으며,[4] 부상에서 회복한 이후에는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참조 [편집]

  1. SPECIAL INTERVIEW 이충성 큰 벽을 넘어 도쿄도 축구 협회 홍보지 2008 Vol.8
  2. 이충성 선수가 일본 국적 취득 - 가시와 레이솔 공식 사이트, 2007년 2월 9일
  3. 우승 결정골 이충성, "축구선수로 이 자리에 있다", 조이뉴스24, 2011년 1월 30일
  4. 일본 국가대표 이충성, 부상으로 시즌 아웃, 스포츠서울, 2012년 4월 2일

같이 보기 [편집]

바깥 고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