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넬 조스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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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넬 조스팽
Lionel Josp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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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프랑스제165대 총리
프랑스 제5공화국의 제16대 총리
임기 1997년 6월 2일~2002년 5월 6일
대통령 자크 시라크
전임: 알랭 쥐페(제164대)
후임: 장 피에르 라파랭(제166대)

출생일 1937년 7월 12일(1937-07-12) (76세)
출생지 프랑스 프랑스 오드센 뫼동
정당 사회당
종교 개신교
배우자 실비안 아가친스키

리오넬 조스팽(프랑스어: Lionel Jospin, 1937년 7월 12일 ~ )은 프랑스의 정치인이다. 1997년 ~ 2002년 총리를 지냈으며, 두 차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다.

파리 부근의 뫼동에서 태어났다. 국립행정학교(ENA)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외무부에서 근무했다. 학창 시절부터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고, 1971년 새로 개편된 사회당에 입당했다. 그 후 사회당 간부로 활동했고, 프랑수아 미테랑 제 1서기(당 대표)의 측근이 되었다. 1981년 미테랑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그 뒤를 이어 제1 서기가 되어 1988년까지 사회당을 이끌었다. 1988년 미테랑 대통령이 두 번째로 집권하면서 몇몇 부처의 장관을 맡았으나, 정부와의 견해 대립으로 미테랑 대통령과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했으며, 결국 1992년 피에르 베레고부아 총리가 이끄는 새 내각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1993년 선거 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1995년 미테랑 대통령 퇴임 무렵 사회당 지도부의 부패 스캔들로 논란이 커지자 조스팽은 정계에 복귀하였으며,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였다. 부패에 연루되지 않았던 그는 다시 사회당 제 1서기가 되었으며, 어렵지 않게 사회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다. 4월 23일 1차 투표에서 23%의 득표율로 공화국연합자크 시라크 후보를 제치고 가장 많은 표를 얻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5월 7일 2차 투표에서는 득표율 47%를 기록, 52%의 표를 얻은 시라크에게 패했다.

1997년 시라크 대통령은 조기 총선을 결정했으며, 총선에서 사회당은 의석 수를 크게 늘리며 선전했다. 이에 사회당은 공산당 등과 좌파 연정을 구성, 조스팽은 총리로 임명되었고, 이에 따라 동거 정부가 들어섰다. 그가 이끄는 내각에서는 노동 관련 정책을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했으며, 이에 따라 주35시간 근무제를 도입하였다. 좌파 계열이면서도 공기업 민영화, 온건적인 재정정책 등 우파적인 정책도 추진하며 시라크 대통령과의 마찰을 줄였다.

2002년 조스팽은 다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4월 21일 1차 투표에서 시라크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민 전선장 마리 르 펜 후보에게도 뒤져 3위에 머물러 2차 투표에도 나가지 못했다. 5월 5일 2차 투표에서 시라크 대통령이 압도적인 차이로 승리하자 그 다음날 조스팽은 총리직을 사퇴하고 정계 은퇴하였다. 곧이어 치러진 총선에서 사회당은 의석을 크게 잃었고 사회당 내각은 붕괴되었다.

그는 2007년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하기 위해 2006년 정계 복귀를 선언하고 후보 경선에 나섰으나, 세골렌 루아얄에게 밀리자 사퇴하였다.

전 임
프랑수아 미테랑
사회당 제1서기
1981년 ~ 1987년
후 임
피에르 모루아
전 임
앙리 에마뉘엘리
사회당 제1서기
1995년 ~ 1997년
후 임
프랑수아 올랑드
전 임
프랑수아 미테랑
사회당 대통령 후보
1995년 (패배), 2002년 (패배)
후 임
세골렌 루아얄
전 임
알랭 쥐페
프랑스의 총리
1997년 ~ 2002년
후 임
장피에르 라파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