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시마코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리시마코스의 동전

리시마코스(그리스어: Λυσίμαχος, 기원전 360년 - 기원전 281년)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장수로 알렉산드로스 대왕후계자였다. 기원전 306년에 왕위에 올라 트라케(트라키아)와 소 아시아, 마케도니아를 지배하였다.

생애[편집]

초기[편집]

리시마코스는 크란논 출신의 테살리아인 아가토클레스의 아들로 기원전 362/361년에 태어났다. 그는 마케도니아에서 시민권을 얻어 펠라의 궁정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아마 필리포스 2세 시대에 소마토필라케스(왕의 경호대)로 임명된 듯 하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를 원정할 당시 리시마코스는 대왕을 바로 옆에서 모시는 경호병이었다. 기원전 324년, 수사에서 그는 인디아 원정 중 공적을 인정받아 관을 수여받았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가 죽자 리시마코스는 트라케를 다스리는 장군으로 임명되었다.

후계자[편집]

기원전 315년, 리시마코스는 카산드로스, 프톨레마이오스, 셀레우코스와 함께 안티고노스에 대항하였으나, 안티고노스는 트라케인과 스키타이인들을 선동하여 리시마코스를 공격하게 하여 그의 관심을 돌려 버렸다. 기원전 309년, 그는 트라케 케르소네소스 반도와 본토 사이의 전략적 요충지에 리시마케이아 시를 건설하였다. 그는 안티고노스의 선례를 따라 왕의 칭하였다.[1]

기원전 302년 카산드로스, 프톨레마이오스, 셀레우코스가 두 번째로 협약을 맺을 당시, 리시마코스는 카산드로스에게서 군대 지원을 받아 별 저항 없이 소아시아에 진입하였다. 안티고노스가 접근하자, 그는 헤라클레이아 근처의 겨울 숙영지로 물러나서 그곳 미망인 여왕인 페르시아 공주 아마스트리스와 혼인하였다. 셀레우코스는 기원전 301년에 그와 합세하였으며, 입소스 전투에서 안티고노스는 패하고 살해되었다. 안티고노스의 옛 영토는 승자들이 나누어 가졌다. 이 가운데 리시마코스는 리디아, 이오니아, 프리기아, 소아시아의 북쪽 해안을 챙겼다.[1]

     리시마코스의 영토 그 외 후계자 왕국      카산드로스의 영토      셀레우코스의 영토      프톨레마이오스의 영토      에페이로스 그 외      카르타고      로마      그리스 식민지

셀레우코스의 세력이 위험할 정도로 커졌음을 느낀 리시마코스는 이제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와 동맹을 맺고, 그의 딸 아르시노에 2세와 결혼하였다. 리시마코스와 이혼한 아마스트리스는 헤라클레이아로 돌아갔다. 기원전 297년 안티고노스의 아들인 데메트리오스 1세는 리시마코스에 대한 적의를 새롭게 다질 때 리시마코스는 그가 그리스에 없는 틈을 타 소아시아에서 그의 도시들을 장악하였으나, 기원전 294년에 화의를 맺어 데메트리오스를 마케도니아의 군주로 인정하였다. 그는 자신의 세력권을 도나우 강 이북까지 넓히고자 하였으나, 게타이드로미카이테스(드로미헤테)에게 패하여 사로잡혔는데 우호적인 조건을 내걸고 그를 풀어주었다. 그 다음에 데메트리오스는 트라케를 위협하였으나, 보이오티아에서 갑자기 반란이 일어난데다 에페이로스의 피로스에게서 공격을 받아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기원전 288년 리시마코스와 피로스는 차례로 마케도니아를 침공하였으며 데메트리오스를 나라 밖으로 쫓아내었다. 리시마코스는 피로스에게 약 여섯 달 동안 마케도니아 왕위와 소유권을 넘겨주었다가 다시 침공하였다. 잠시 두 사람은 공동 통치를 하였으나, 기원전 285년에 리시마코스는 피로스를 추방하였다.[2]

말년[편집]

리시마코스는 국내 문제로 비참한 말년을 보냈다. 아마스트리스는 두 아들에게 살해당하였는데, 리시마코스는 이들을 배반하고 처형하였다. 그가 돌아올 때 아르시노에는 헤라클레이아를 선물로 요구하자, 이 도시를 해방시키겠다고 약속하고 청을 들어주었다. 기원전 284년에 아르시노에는 왕자 가운데 리시마코스의 장남인 아가토클레스가 왕위를 계승하길 원하여, 남매지간인 프톨레마이오스 케라우노스의 도움을 받아 리시마코스에게 음모를 꾸몄는데, 이들은 리시마코스가 왕위를 장악하기 위해 셀레우코스와 공모하였다고 그를 고발하여 처형하였다.

리시마코스의 잔학한 행위는 큰 공분을 샀다. 아시아의 여러 도시들이 반란을 일으켰으며, 그가 가장 신뢰하던 친구들도 그를 버렸다. 아가토클레스의 미방인은 셀레우코스에게 달아났으며, 셀레우코스는 즉시 리시마코스의 아시아 영토를 침공하였다. 기원전 281년에 리시마코스는 헬레스폰토스를 지나 리디아로 갔으나 코루페디온 전투에서 전사했고 며칠 뒤 리시마코스의 시신이 전장에서 발견되었는데, 새가 시신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그의 충견이 지키고 있었다.[3]

시신은 아들 알렉산드로스에게 인계되어 리시마케이아에 매장되었다.

주석[편집]

  1. Williams, Henry Smith. Historians History of the World (Volume 4), p. 450.
  2. Williams, Henry Smith. Historians History of the World (Volume 4), p. 454.
  3. Williams, Henry Smith. Historians History of the World (Volume 4), p. 505.
전 임
데메트리오스 1세
마케도니아의 왕
에페이로스의 피로스와 공동 통치
기원전 288년 - 기원전 281년
후 임
프톨레마이오스 케라우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