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피르미아누스 락탄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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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또는 카일리우스) 피르미아누스 락탄티우스(Lucius Caecilius Firmianus Lactantius, 240년? ~ 320년?)는 초기 기독교의 신학자이자 저술가였다.

락탄티우스는 북아프리카 출신으로주로 로마제국 동방의 여러도시를 다니면서 수사학을 가르쳤다. 그는 주로 그리스 이교 철학자들의 논리에 대항하여 교육받은 이교도들을 대상으로 기독교의 교리를 묵시론적으로 설명하는 글을 주로 저술했다.

그의 저술 《신의 기관 Divinae Institutiones》은 초기 기독교 사상의 체계화된 저작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의 사후 이단성이 있는 것으로 분류되었는데,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에 의해 재발견되어 그의 신학보다는 현학적인 스타일의 수사학적인 라틴문학으로 더 각광을 받았다. 이 책 4.28에서 종교(religion)에 대하여 어원적으로 re+lig('묶다')로 이해하여 다시 묶다. '하나님과 다시 결합하다'로 정의한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니코메데이아(지금의 터키 이즈미트)의 수사학 교사로 임명했지만, 황제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하자 305년경 교사직을 사임하고 서방으로 돌아갔다. 그 뒤 317년 은둔생활을 끝내고 트리어에서 콘스탄티누스 1세의 아들 크리스푸스를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