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차라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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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차라 전투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의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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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차라 전투 시 양군 배치도 (파란색이 프랑스, 빨간색이 동맹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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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전국 | |||
| 지휘관 | |||
| 사보이 공작 외젠 | 방돔 공작 | ||
| 병력 | |||
| 25,000명 | 30,000~36,000명 | ||
| 피해 상황 | |||
| 2,000명 | 4,000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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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르피 – 키아리 – 크레모나 – 루차라 – 카디스 – 프리들링겐 – 비고 만 – 에케렌 – 회흐슈테트 – 셸렌베르크 – 블렌하임 – 말라가 – 엘릭스하임 – 카사노 – 칼치나토 – 라미예 – 토리노 – Castiglione – 알만사 – 툴롱 – 오우데나르데 – 릴 – 말플라크 – 알메나라 – 사라고사 – 브리우에가 – 비야비시오사 – 부섕 – 드냉 – 바르셀로나 |
루차라 전투는 이탈리아 루차라 근처에서 1702년 8월 15일 벌어진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의 전투 중 하나이다.
[편집] 서막
1702년 여름 구아스탈라를 점령한 방돔 공작 루이 조제프 드 부르봉(Louis Joseph, duc de Vendôme) 휘하의 프랑스군은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 보르고포르테(Borgoforte)를 포위할 목적으로 공격했다. 이 와중에 프랑스군은 포 강의 강둑 오른쪽에 있는 루차라 근처에 진영을 설치했다.
사보이 공작 외젠(Prince Eugene of Savoy)이 이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만토바를 공격하던 중이었다. 그는 공성을 포기하고 사용가능한 모든 부대를 조직하여 방돔을 방해하려 하였다.
루차라 근처에 도착한 외젠은 그의 사령부를 리바(Riva)의 마을 근처 북쪽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사령부를 설치했다.
[편집] 전투
방돔은 오른쪽에 오스트리아군과 대치하고 왼쪽에는 포 강이 있어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고, 계속 방어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세를 살펴보면 개방된 평야에 여러 수로들, 울타리와 큰 관목들이 널려있었다.
오스트리아군은 다운(Daun), 보데몽(Vaudemont), 헤센-다름슈타트의 게오르그 공작(Prince George of Hesse-Darmstad)과 구이도 슈타렘베르크(Guido Starhemberg)와 같은 숙련된 장군들과 병사들이 있었다.
8월 15일 아침, 외젠은 자신의 군대가 충분히 쉴때까지 기다리다 그들을 급박하게 소집하여 전선에 도착하였다. 약 오후 5시쯤, 그의 계획은 강쪽으로 적을 분산시켜 그들을 포위하는 것이었다. 그는 몇번 공격을 계속했으나 프랑스군의 강한 저항으로 효율적인 결과를 얻지못했다.
전투는 어두워질때까지 계속되었다.
이 전투이후에 양군은 프랑스군이 1702년의 전역을 끝내기 위해 11월 4일 먼저 철군할 때까지 대치상태를 계속하게 되었다.
[편집] 외부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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