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브라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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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브라유

루이 브라유(Louis Braille, 1809년 1월 4일 - 1852년 1월 6일)는 점자를 창안한 사람이다. 위로 돋아있는 1개에서 6개의 점을 손가락을 이용하여 읽고 쓸 수 있는 문자 체제인 점자를 고안했다. 이 업적을 기려 소행성 9969번이 9969 브라유로 이름 붙여졌다.

생애[편집]

점자로 적힌 Louis Braille

성장[편집]

루이 브라유는 프랑스 파리에서 동쪽으로 58 km 떨어진 Coupvray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시몽-르네 브라유(Simon-René Braille)는 마구와 안장을 제작하는 분이었으며,형제로는 누나가 있었다. 브라유가 3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의 작업장에서 송곳으로 왼쪽 눈을 다쳤다. 이 사고로 왼쪽 눈이 멀었고, 오른쪽 눈도 감염으로 인해 시력을 잃었다. 4살이 되었을 때 완전히 시력을 잃게 되었다. 부모의 지원에 힘입어 브라유는 읽고 쓰기를 배울 수 있도록 계속 학교를 다녔으며,마을 로마 가톨릭 교회 신부에게 기초적인 교육을 받기도 했다.에서도 루이 브라유의 부모와 누나는 브라유가 일상생활을 자신의 힘으로 하도록 했다.당시 시각장애인들은 길거리에서 구걸한다던지 하는 의존적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립시각장애학교[편집]

10살 때 브라유는 파리의 왕립시각장애학교(Institution Royale des Jeunes Aveugles)의 장학금을 지원받게 되었다. 이 장학금은 그에게 다른 맹인들처럼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삶을 벗어나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그러나 학교에서의 삶은 그리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로 연명해야 했으며, 학생 신분으로 구타와 구금의 체벌을 당해야 했다. 브라유는 능숙한 첼로오르간 연주자가 되어 프랑스 전역에서 오르간 연주를 하기도 했다.

교사생활[편집]

루이는 자신이 공부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기초적 기술과 산술을 가르쳤다. 또한 발랑탱 아우이(Valentin Haüy)가 창안한 돋음 문자를 손으로 느껴 읽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이 돋음 문자는 종이를 구리선에 눌러서 만든 것으로 학생들은 쓰는 법을 익힐 수는 없었다.

점자[편집]

영감이 된 바비에르 문자[편집]

1821년, 전직 군인샤를 바비에르(Charles Barbier)가 학교를 방문하여 그가 창안한 12개 점으로 된 "밤 문자"를 소개했다. 이는 전장에서 소리내어 말하지 않고 비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병사들이 익히기에는 까다로웠지만 브라유는 금세 익힐 수 있었다.

점자 창안[편집]

브라유는 곧 아버지의 송곳을 이용하여 그의 점자 체제를 창안하였다. 바비에르의 문자가 12개의 점으로 발음과 대응하는 데 반해 브라유의 점자는 6개의 점으로 글자와 대응하는 것이 차이이다. 여섯 점으로 된 체제는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고 한번에 모든 점의 위치를 읽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아우이의 체제와 달리 읽고 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브라유는 수학음악도 표현할 수 있도록 점자를 확장하여 1827년 책으로 출간하였다.

별세[편집]

브라유는 그의 모교에서 존경받는 선생님이 되었다. 하지만 그가 창안한 점자는 그가 살아 있는 동안 학교에서 가르치는 데 채택되지 않았다. 그는 늘 건강 문제로 시달렸으며, 1852년 파리에서 결핵으로 43세의 나이로 숨졌다. 100년 후 그의 유해는 1952년 파리의 팡테옹에 옮겨져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