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브랜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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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브랜다이스
Brandeisl.jpg
미국연방 대법원 대법관
임기 1916년 6월 1일 ~ 1939년 2월 13일
전임 조지프 러커 라마 (Joseph Rucker Lamar)
후임 윌리엄 O. 더글러스 (William O. Douglas)

대통령 우드로 윌슨
기본정보
국적 미국 미국
출생지 미국 미국 켄터키 주 루이빌
학력 하버드 로스쿨 LL.B.
종교 유대교

루이스 브랜다이스(영어: Brandeis, Louis Dembitz, 1856년 11월 13일 ~ 1941년 10월 5일)는 미국변호사이자 미국 최초의 유대인 출신 연방대법원 대법관이다. 경제적 민주주의를 주장하였고 진보적인 사고를 가졌다.

어린시절[편집]

브랜다이스는 켄터키 주 루이빌에서 태어났다. 루이빌 남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드레스덴에 있는 안넨 레알슐레(실업학교)에서 2년간 공부한 후, 18세의 어린나이로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하여 1877년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 후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서 1년가량 로펌에서 일한후 보스턴으로 옮겨 유명한 변호사로 노동입법을 위해 활동하였다. 1916년 1월 28일 우드로 윌슨 대통령에 의해 연방대법관 후보로 지명되었고 반유대주의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준되어 그해 6월 5일에 취임했다.

브랜다이스 브리프[편집]

뮬러 대 오리건 주(Müller v. Oregon) 사건에서 당시 변호사이던 브랜다이스는 에서 광범위한 관련사실자료와 비교법적 자료를 준비서면으로 제출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그 후 사회과학적 자료를 재판에 사용하는 관행이 시작되었다.

대법관[편집]

가장 중요한 판결은 이리철도회사 대 톰킨스 판결‎(Erie Railroad Company v. Tompkins, 304 U.S. 64, 1938)인데 그는 2개 주 이상의 주민간 소송에서 연방법원은 판례법이든 제정법이든 해당 주법을 적용해야지, 지난 100여 년간 해왔던 것처럼 '연방 보통법'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그는 1939년 2월 13일에 은퇴했다.

기타[편집]

브랜다이스는 시온주의의 열렬한 지지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