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브랜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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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다이스

루이스 브랜다이스(영어: Brandeis, Louis Dembitz, 1856년 11월 13일 ~ 1941년 10월 5일)는 미국변호사이자 미국 최초의 유대인 출신 연방대법관이다. 경제적 민주주의를 주장하였고 진보적인 사고를 가졌다.

어린시절[편집]

브랜다이스는 켄터키 주 루이빌에서 태어났다. 루이빌 공립학교와 독일 드레스덴에 있는 안넨 레알슐레(실업학교)를 졸업한 후,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하여 1877년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 후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서 1년가량 로펌에서 일한후 보스턴으로 옮겨 유명한 변호사로 노동입법을 위해 활동하였다. 1916년 1월 28일 윌슨대통령에 의해 연방대법관 후보로 지명되었고 반유대주의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준되어 그해 6월 5일에 취임했다.

브랜다이스 브리프[편집]

Müller v. Oregon 사건에서 당시 변호사이던 브랜다이스는 에서 광범위한 관련사실자료와 비교법적 자료를 준비서면으로 제출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그 후 사회과학적 자료를 재판에 사용하는 관행이 시작되었다.

대법관[편집]

가장 중요한 판결은 이리철도회사 대 톰킨스 판결(Erie Railroad Company v. Tompkins, 304 U.S. 64, 1938)인데 그는 2개 주 이상의 주민간 소송에서 연방법원은 판례법이든 제정법이든 해당 주법을 적용해야지, 지난 100여 년간 해왔던 것처럼 '연방 보통법'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그는 1939년 2월 13일에 은퇴했다.

기타[편집]

브랜다이스는 시온주의의 열렬한 지지자였다.